[김태우의 SK랩북] ‘정수성 바람’ SK, 주루 대개혁 시작됐다
OSEN 김태우 기자
발행 2016.11.23 13: 00

“단순히 공을 보고 움직이는 것이 아니다. 공이 오기 전부터 모든 상황을 미리 생각해야 한다. 내가 도와주겠지만, 말하지 않아도 너희와 내 생각이 일치해야 한다”
SK의 유망주 캠프가 열리고 있는 일본 가고시마현 사쓰마센다이시 종합 운동장. 고요한 경기장에 정수성(38) SK 신임 작전 및 주루 코치의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렸다. 3루 베이스에서 상황 판단 훈련을 하는 선수들은 귀를 쫑긋 세웠다. 때로는 잘못된 판단에 혼나기도 하지만, 좋은 플레이에는 정 코치가 직접 “OK! 잘했어!”라고 칭찬하며 활발한 훈련이 이뤄지고 있었다. 선수들끼리도 박수를 치며 서로의 상황 판단을 배웠다.
정 코치에 대한 구단과 팬들의 기대가 결코 허튼 것이 아님을 보여주는 캠프 분위기다. 2016년 시즌 뒤 SK의 러브콜을 받고 입단한 정 코치는 이번 가고시마 캠프에서 트레이 힐만 신임 감독 못지않은 주목을 받는 지도자다. 현역 시절부터 빠른 발과 기민한 작전 수행으로 알토란같은 활약을 했고 친정팀격인 넥센의 주루코치로 화려한 성과를 낸 경력이 있는 까닭이다. 넥센은 정 코치의 지도를 받으며 리그를 대표하는 ‘스피드 야구’로 무장했다.

정 코치의 말대로 넥센은 사실 단독 도루를 장담할 만한 빠른 선수가 많지 않다. 정 코치도 “올해 단독 도루를 믿고 지시할 만한 선수는 서건창과 김하성 뿐이었다”고 말한다. 그러나 모든 상황을 꿰차고 있는 염경엽 감독의 세밀함과 정 코치의 분석력 및 눈썰미가 만나 과감한 기동력 야구를 할 수 있었다. 물리적인 한계를 벤치가 이겨낸 대표적인 사례로 뽑힌다. 지금 SK 상황과 무관하지 않다는 점에서 더 의미가 있다.
SK는 지난해 작전 및 주루에서 리그 바닥의 성적을 냈다. 선수들의 기동력은 왕조 시절과는 달리 현저하게 떨어져 있었다. 20도루 이상을 장담할 만한 선수가 없었다. 여기에 선수들의 ‘창의성’마저 실종됐다는 혹평을 받았다. 한 베이스 더 가는 창의적인 베이스러닝은 기대하기 어려웠다. 가뜩이나 떨어지는 출루율에 기계적인 주루 플레이까지 속출하니 득점 루트가 제대로 개척되지 못했다. SK가 포스트시즌에 진출하지 못한 숨겨진, 혹은 가장 결정적인 이유였다.
SK는 이 문제를 풀고자 ‘해결사’로 정 코치를 영입했다. 정 코치는 SK 외에도 타 팀의 영입 제의를 받았으나 가장 발 빠르고 적극적으로 움직인 SK를 선택했다. 정 코치는 “현대부터 넥센까지 20년을 몸담았으니, 어쨌든 나도 새로운 도전이다. 다만 변화를 줘야 할 시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또 외국인 감독님과 함께 한다는 자체가 앞으로 지도자를 하는 데 있어서 좋은 경험이 될 것”이라면서 “시작은 누구나 어렵지만, 앞으로 시간을 두고 겪다 보면 좋아질 것 같다”고 팀 분위기에 만족감을 드러냈다.
그렇다면 정 코치가 외부에서 바라본 SK 주루 및 작전의 문제점은 무엇이었을까. 정 코치는 “‘베스트 라인업 들어가는 선수 중에 도루 능력이 정말 뛰어난 선수가 누가 있을까’라는 생각을 곰곰이 해봤다. 그런데 평균 신장이 180㎝가 넘더라(웃음). 공격적인 베이스러닝을 하기 위한 좋은 라인업은 아니다. 올해 좋지 못했던 결과는 전임 베이스 코치님이나 코칭스태프의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한다”라면서도 “선수들의 주루 능력 자체가 나쁘다고 이야기하는 게 아니라 잘 되는 팀과 비교를 하면 조금 떨어진다고 본다”고 냉정하게 이야기했다.
트레이 힐만 감독의 부임 후 내년 팀의 라인업이 어떻게 변할지는 알 수 없다. 그래도 정의윤 최정 박정권 이재원 등 팀의 뼈대를 이루는 선수들의 기동력은 상대적으로 떨어진다. 타순 곳곳에서 정체 현상이다. 정 코치도 이런 한계를 지적한 것이다. 그러나 정 코치가 있던 넥센은 전형적인 거포 요원인 박병호도 20개의 도루를 한 팀이다. 꼭 물리적인 발걸음만 가지고 베이스러닝을 하는 것은 아님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례다. 정 코치도 이를 강조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생각을 바꿔야 한다고 말한다.
정 코치는 “물론 가고시마 캠프는 어린 선수들 위주지만 기본적으로 어떻게 움직이고, 준비를 해야 하는지에 대한 명확한 기준점이 없더라”라면서 “예를 들자면 3루에 있을 때는 상대방 수비수의 능력·수비 범위·어깨 능력·캐치 능력을 모두 알고 있어야 한다. 반대로 우리 팀 타자가 당겨치는 타자인지, 밀어치는 타자인지도 파악해야 한다. 이처럼 모든 것을 머릿속에 두고 준비를 해야 한다. 그리고 나서 아웃카운트, 우완이냐 좌완이냐에 따른 리드폭 차이도 생각해야 한다. 이를 종합하는 것이 디테일이다”고 전문적으로 설명을 이어나갔다.
SK 선수들은 이렇게 생각하는 점이 다소 부족하다는 게 정 코치의 설명이다. 그래서 어린 선수들부터 차분히 가르치고 있다. 정 코치는 “처음부터 잘하면 내가 있어야 할 이유 없지 않겠는가”라고 웃으면서 “전체적으로 이번 캠프에서 한 번 하고 나면, 스프링캠프에 가면 지금보다 훨씬 더 잘할 것이다. 기술적인 부분도 있지만 심리적인 부분도 짚어야 한다”라면서 선수들에게 ‘생각하는 주루’를 강조해 주문했다.
정 코치는 수많은 작전 매뉴얼을 갖춘 주루 전문가로 유명하다. 정 코치는 넥센 시절 15개 가까운 화려한 작전 매뉴얼을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물론 넥센과 SK의 토양은 다르다. 이는 꼭 정 코치뿐만 아니라 구단도 인정하고, 팬들도 인정한다. 모든 매뉴얼을 다 쓸 수는 없을 것이다. 힐만 감독이 세밀함을 중시한다고 해도 어쨌든 미국 감독이다. 염경엽 감독만큼이나 작전에 많이 개입하지는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정 코치의 역량이 상대적으로 빛을 발하지 못할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러나 정 코치는 오히려 경기 중에서의 화려한 작전보다 팀의 토양을 다지는 작업에 더 보람을 느끼는 눈치다. 정 코치는 “감독님이 어떤 작전을 내실지는 경기에 들어가서 봐야 한다. 나는 내 자리에서 선수들의 주루 플레이를 돕고 최선을 다하는 것이 임무”라면서도 “수비, 주루, 번트든 모든 분야에서 매뉴얼이 있어야 한다. 실수를 줄일 수 있는 방법, 한 베이스를 더 갈 수 있는 방법을 선수들과 함께 만들어가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주루 전문가의 대개혁이 시작됐다. /SK 담당기자 skullboy@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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