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숫자는 솔직하다] FA 100억 시대, 현실과 불편한 진실
OSEN 김태우 기자
발행 2016.11.22 06: 01

시장은 수요와 공급이 만나 가격이 형성된다. 공급이 적은 시장일수록 가격 책정에는 ‘웃돈’이 붙는다. 그런데 한 번 형성된 ‘웃돈’이 좀처럼 꺼지지 않는 시장도 있다. 특정 시기 공급이 많아지거나, 수요가 적어져도 기준선 이하로는 잘 내려가지 않는다. 프로스포츠 자유계약선수(FA) 시장이 그렇다.
특히 꾸준히 성장하는 리그일수록 그렇다. 최근 KBO 리그가 대표적이다. 웃돈이 붙은 가격은 리그의 ‘기준’이 돼 그 다음해 적용된다. 그러면 그 기준으로 또 한 번 웃돈이 붙는다. 지속적으로 성장하는 리그라는 가정 하에, 그렇게 선수들의 몸값은 일반적인 상식의 상승폭을 웃돌게 된다. 메이저리그(MLB)도 마찬가지다. 지난해 상위 125명의 평균 연봉은 1580만 달렸지만, 올해는 1720만 달러까지 뛰었다.
올해 KBO 리그 FA 시장의 광풍을 예감하는 것도 이런 독특한 시장 상황과 연관이 있다. 2014년 겨울 최정(SK)이 4년 총액 86억 원, 윤석민(KIA)이 4년 총액 90억 원으로 FA 시장의 신기원을 열었고, 지난해에는 박석민(NC)이 4년 총액 96억 원의 신기록을 다시 썼다. 박석민이 최정보다 나은 선수라기보다는, 최정의 연봉을 기준으로 ‘에스컬레이터’를 탄 데다 타 팀 선수를 영입하면서 프리미엄까지 붙은 결과였다.

그렇다면 올해 FA 선수들의 가치는 어느 정도가 될까. 논란이 있지만 지난해 선수들을 기준으로 다시 한 번 계단을 타고 오를 가능성이 높은 것은 확실하다. KBO 공식기록업체인 ‘스포츠투아이’의 집계에 따르면, 지난해 FA 계약을 맺은 선수 중 대체선수대비 승리기여도(WAR)에서 1을 넘긴 선수는 총 8명이었다. 이 선수들의 총액을 대입시켜 다시 평균적으로 계산해 봤을 때(야수 6명), 1WAR이 KBO 리그에서 가지는 가치는 최소 약 4억 원 정도다. 극단적 타고투저 리그에서 상대적으로 불이익을 보는 투수들까지 합치면 6억 원 정도가 된다.
최형우의 올해 WAR은 7.55였다. 올해 성적만 기준으로, 그리고 순수히 ‘현재 시장가 기준’으로 본다면 연간 30억 원 정도의 성과를 낸 셈이다. 4년 기준이면 120억 원이다. 희소가치가 더 높을 수밖에 없는 투수 포지션인 양현종(WAR 5)의 몸값도 ‘현재 시장가’라면 100억 이상이라는 계산이 나온다. 양현종보다 커리어에서 밀릴 것이 없는 김광현 또한 100억 원을 넘길 자격이 있다는 소리다.
적은 연봉을 받는 선수들이 좋은 성적을 내는 경우도 많지만, 새롭게 계약하는 선수들은 당연히 이전에 계약한 ‘FA 선수’들을 기준으로 협상에 임하게 된다. 기대치에 못 미치는 성적을 낸 FA 선수들의 계약도 엄연한 전례인 만큼 협상 전략으로 쓰인다. 여기에 특급 선수들은 원 소속구단에서의 필요성이 절대적이다. 구단의 상징이라는 프리미엄도 얹는다. 해외 진출 이슈까지 있는 선수들은 상대적으로 쥐고 있는 카드가 더 많다. 해가 될 것이 없다.
물론 구단이 전체 예산의 절반을 모기업 지원에 의존, 자생조차 하지 못하는 현재 KBO 리그의 상황에서 이렇게 치솟는 몸값이 합리적인 것인지는 의심의 여지가 많다. 또한 나이를 하나둘씩 먹어가는 향후 4년간 올해와 같은 활약을 보여줄 것이라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다. 하지만 그런 동일한 상황에서도 지난해 FA 시장은 타올랐다. 때문에 “시장이 비정상적으로 돌아가고 있다”는 한탄은 여기저기서 들린다. 그러나 누가 잘못했든, 시장가가 이미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치솟았다는 건 분명하다.
또 하나의 변수는 팬심이다. 한 구단 관계자는 “‘저 선수가 무슨 그 금액이냐’라고 비판하는 팬들이 많다. 100억 시대에 대한 거부감을 느끼는 팬들도 많은 것으로 안다. 하지만 막상 응원팀의 핵심 선수들이 그 금액을 받고 팀을 떠나면 당장 구단이 큰 비난을 감수해야 한다. 어쩔 수 없이 우리가 생각한 합리적인 수준보다는 더 많은 금액을 책정해야 한다”며 고충을 털어놨다.
담합이 아니라면 타 팀의 선수를 노리는 팀들이 계속 나올 것이며, 그때마다 시장가가 올라간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올해 각 구단들은 모기업으로부터 예산을 따내는 데 적잖은 어려움을 겪었다. 가뜩이나 경제 사정이 어려워 모기업 임직원들의 연봉이 동결되고 보너스가 줄어드는 가운데 시선이 곱지 않았던 것으로 전해졌다. 곧 현실이 될 100억 시대가 보여주는, 혹은 숫자가 보여주지 못하는 또 하나의 단면이다. /skullboy@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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