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후(18·넥센)는 휘문고 시절 고교를 대표하는 최고의 야수 중 하나로 손꼽혔다. 그 결과 넥센의 1차 지명을 받고 화려하게 프로에 입단했다. 그 자체만으로도 관심을 받을 법한데, 이정후는 더 큰 스포트라이트를 받는다. 바로 KBO 리그의 전설적인 선수인 이종범(46)의 아들이기 때문이다.
개인적 성과가 충분함에도 불구하고 때로는 ‘이종범의 아들’이라는 꼬리표가 더 무거울 때도 있다. 모든 2세 선수들이 갖는 부담감이기도 하다. 속상하거나 힘든 점이 있지는 않을까. 넥센의 가고시마 마무리캠프에서 만난 이정후는 이에 대해 “어쩔 수 없는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크게 신경 쓰지는 않는다. 아버지 이름에 대한 부담감은 없다”라고 살며시 미소 짓는다. 이제는 ‘이종범의 아들’이 아닌, ‘야구선수 이정후’로 당당히 자신을 알리겠다는 각오로 똘똘 뭉쳐있다.
이정후는 넥센의 마무리캠프에서 구슬땀을 쏟고 있다. 1차 지명을 받았다고는 하지만 아직 고등학교 졸업장도 받지 못한 신예 중의 신예다. 넥센의 마무리캠프가 어린 선수들 위주로 짜여졌다고 해도 신인은 이정후와 김혜성 둘 뿐이다. 환경 자체가 어려울 수밖에 없다.
이정후도 “처음에는 무서울 줄 알았다. 아버지께서 캠프 출발 전에 '선배들을 잘 따라라'라고 하셨는데 그 이유를 느끼겠더라”고 솔직하게 말했다. 그러나 이정후는 “물론 지금도 어렵기는 마찬가지다. 하지만 모든 선배님들이 잘 챙겨주셔서 크게 문제될 점은 없다”고 고마움을 드러냈다.
오히려 설렘이 가득한 캠프다. 이정후는 “고등학교 때는 시키는 것만 했다. 프로는 스스로 부족한 점을 알아서 보완해야 한다고 하더라. 좀 더 체계적일 것이라는 이야기는 듣고 왔는데 실제 그렇다. 체계적인 시스템이 좋은 효과를 발휘하는 것 같고, 내가 생각하는 것과도 맞는 것 같다. 프로의 분위기를 배우는 것은 물론 부족한 부분을 보완하는 데 이번 캠프의 중점을 두고 있다”고 어른스럽게 이야기했다.
타격도 타격이지만 일단 수비가 가장 문제라는 것이 이정후의 생각이다. 이정후는 아마추어 시절 내야는 물론 외야도 본 경험이 있었다. 하지만 캠프에서는 오로지 내야에만 전념 중이다. 때로는 3루, 때로는 유격수, 때로는 2루를 보며 다양한 포지션에서의 적응도를 쌓고 있다. 넥센에는 확고한 주전 내야수들이 있어 다소 어려운 환경일 수도 있지만 이정후는 “열심히 해서 경쟁에서 이겨야 한다. 코치님께서 잘 가르쳐주시고 있어 많이 배우려고 노력한다”며 각오를 다졌다.
이처럼 기대감 속에 캠프를 마쳐가고 있는 이정후다. 이정후는 “형들하는 것을 보고 따라하는 것만으로도 도움이 된다. 훈련이 늘어지면 지치고 집중력이 떨어지는데 지금은 집중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는 선에서 딱 끝난다”라고 설명하면서 “내일은 무엇을 배울까, 내가 얼마나 좋아질까 하는 기대감이 있다. 캠프를 거치면서 많이 좋아진 것 같다. 코치님들도 ‘실수한 것을 생각하지 마라’고 격려를 많이 해주신다. 좀 더 적극적으로 훈련할 수 있는 계기가 되는 것 같다”고 만족해했다.
이정후의 오프시즌 목표는 ‘힘 기르기’다. 장정석 넥센 감독은 “고등학생 아닌가. 성인의 몸으로 만드는 데는 좀 더 시간이 필요할 것”이라고 내다본다. 그래서 이정후도 오후 일과의 거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웨이트트레이닝 삼매경이다. 이는 이정후의 근본적인 목표와도 연관되어 있다. 이정후는 ‘어떤 유형의 선수가 되고 싶은가’라는 질문에 “홈런도 많이 치고, 도루도 많이 할 수 있는 선수”라고 답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부족한 근력을 더 길러야 한다는 생각이다.
피는 속이지 못한다고, ‘호타준족’의 이상향은 어디서 많이 본 유형이기는 하다. 그러나 이정후는 아버지의 길을 따라가는 것이 아닌, 자신만의 길을 닦아오며 이 자리까지 왔다. 인터뷰 내내 다부진 각오에서 기대감을 찾을 수 있는 이유다. 바람의 손자가 당당한 첫 발걸음을 뗐다. /skullboy@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