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연아(26)도 저렇게 불이익을 당하는데...’
‘최순실 게이트’를 두고 연예인들이 잇따라 시국선언에 동참하고 있다. 하지만 체육계에서는 자신의 정치적 성향을 드러내는 소신 발언을 유독 찾아보기 힘들다. 체육계에 암묵적으로 전해지는 불문율 때문이다. 스포츠 스타들이 정치성향을 드러낼 경우 득보다 실이 많다는 지적이다. 간혹 현역에서 은퇴 후 정치권에서 제2의 인생을 개척하려는 스포츠 스타들은 있다.
▲ ‘독도남’ 박종우의 ‘잃어버린 동메달’ 사건
IOC(국제올림픽위원회)나 FIFA(국제축구연맹) 등 국제스포츠단체에서는 운동경기 중 선수가 정치적 성향을 드러내는 행동을 하는 것을 엄격하고 금지하고 있다. 이를 어길 경우 징계를 피할 수 없게 된다.
한국은 2012년 런던올림픽 남자축구 동메달 결정전에서 숙적 일본에 2-0 승리를 거둬 사상 첫 메달을 획득했다. 문제는 경기 후였다. 박종우가 관중으로부터 '독도는 우리 땅'이라고 적힌 종이를 받아들고 그라운드를 뛰어다닌 것. 마침 한일 양국이 독도와 위안부 등 민감한 외교문제로 대치하고 있던 상황이었다. 국민들은 통쾌함을 느꼈지만, 외교문제가 발생했다.
IOC는 박종우가 정치적 표현을 금지하는 IOC 헌장 제50조를 위반한 것으로 간주하고 국제축구연맹(FIFA)에 징계심의를 요청함과 동시에 동메달 수여를 보류했다. FIFA는 상벌위원회를 개최해서 박종우에게 2경기 출장정지를 내리고 약 410만 원의 벌금을 부과했다. 박종우의 행동을 막지 못한 대한축구협회에도 경고조치를 내렸다. 결국 대한체육회가 나서 법정투쟁을 벌였고, 박종우는 6개월 뒤에 겨우 동메달을 받을 수 있었다.
국제대회뿐 아니라 국내대회의 상황도 비슷하다. 체육인들은 ‘괜히 민감한 정치문제에 관련되어 좋을 것 없다’는 인식을 갖고 있다. 많은 운동선수들이 지방자치단체가 운영하는 실업팀에 소속돼 있다. 자칫 정부의 정책에 반하는 발언을 했다가 팀 예산이 삭감당하는 등 불이익이 있을 수 있다. 스포츠인들이 정치적 발언에 소극적일 수밖에 없는 이유다.
▲ ‘피겨여왕’ 김연아도 최순실의 피해자
‘피겨여왕’ 김연아도 정치적 희생양이 됐다. 최순실의 측근으로 알려진 차은택은 지난 2014년 11월 ‘늘품체조’ 프로젝트로 정부예산을 따냈다. 차은택은 정아름 트레이너에게 체조를 개발하도록 했다. 이어 차은택은 손연재, 양학선 등 국가대표 체조선수들이 시연회에 참여하도록 요구했다. 김연아 역시 시연회 초청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데 김연아는 평창올림픽 홍보일정이 바쁘고, 자신의 이미지와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시연회 참가를 거절했다. 이후 ‘김연아가 대한체육회에 찍혔다’는 소문이 공공연히 나돌았다. 실제로 김연아는 2015년 대한체육회가 선정한 스포츠영웅에서 제외됐다. 김연아는 인터넷 투표에서 82.3%의 지지를 받아 압도적인 1위에 올랐다. 그러나 대한체육회는 스포츠 영웅은 50세 이상 선수를 대상으로 한다는 이유를 만들어 노골적으로 김연아를 제외했다. 논란이 커지자 대한체육회는 2016년 뒤늦게 김연아를 스포츠 영웅에 포함시켰다.
김연아는 세계 피겨스케이팅 역사상 역대 최고의 선수로 거론되는 대선수다. 이런 ‘피겨여왕’조차 정권에 반하는 행동을 했을 때 엄청난 불이익을 피할 수 없었다. 그나마 김연아는 이미 은퇴한 상황이라 받는 불이익이 적다고 볼 수 있다. 평범한 선수들은 자신의 선수생명까지 위협받을 수 있는 정치적 소신발언을 더욱 기피할 수밖에 없다.
▲ 김영주, 이에리사, 문대성, 이만기 등 정치 지망생
현역 때는 소신발언을 꺼리지만, 은퇴 후 스포츠에서 인기와 경력을 바탕으로 정치에 본격적으로 뛰어드는 사례들은 있다. 선거 때만 되면 정치권에서 스포츠 스타 출신에게 정계 진출을 권유하기도 한다. 서로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지면 '국회의원' 배지를 달게 된다.
농구선수 출신인 김영주는 2004년 17대 총선에서 열린우리당 비례대표로 국회의원이 됐고, 19대와 20대 총선에서는 서울 영등포갑 지역구에서 연거푸 당선됐다.
탁구선수 출신으로 태릉선수촌장을 역임한 이에리사는 2012년 새누리당 비례대표 의원으로 출마해 19대 국회의원으로 당선됐다. 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대전 중구에서 출마했으나 낙선했다.
올림픽 태권도 금메달리스트 문대성은 2012년 새누리당 공천을 받아 부산 사하구 을에서 출마해 당선됐으나, 논문 표절 의혹 등으로 정치 생명은 짧아졌다. 20대 총선에서는 불출마를 선언했다. 민속씨름 천하장사 출신 이만기 인제대 교수는 20대 국회의원에 도전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다. / jasonseo34@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