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레이 힐만 SK 신임 감독은 미국(캔자스시티)과 일본(니혼햄)에서 모두 감독 생활을 해본 지도자다. 화려한 경력이다. 그러나 숨은 재주는 육성이다. 오히려 육성 파트에서 보낸 시간이 적지 않은 편이다.
1988년 클리블랜드의 스카우트직으로 프런트 업무를 보기도 했던 힐만 감독은 1990년부터는 메이저리그(MLB) 최고 명문팀인 뉴욕 양키스 팜 시스템으로 자리를 옮겨 오랜 기간 일했다. 1999년부터 2001년까지는 당시 구단 산하 트리플A팀이었던 콜럼버스에서 감독직을 했다. 2002년에는 텍사스 유소년 시스템에서 총괄 책임자로 일했다. 10년 넘게 팜 시스템을 만져온 것이다.
SK가 힐만 감독을 영입한 것은 다양한 아이디어로 팀 경기력에 활기를 제공하는 목적이 첫 번째다. 그러나 팀의 육성 시스템에도 조언을 기대하고 있다. 부수적인 효과처럼 보이지만 SK의 사정에서는 꼭 그렇지 않다. 3년 전부터 육성을 화두로 내걸고 전사적으로 움직이고 있는 SK다. 힐만 감독의 노하우는 이런 SK의 흐름에 좋은 자극제가 될 수 있다. 한 관계자는 “그런 전반적인 노하우를 사기 위해 2년간 160만 달러를 투자하는 것이라고 봐도 된다”고 했다.
SK의 유망주 캠프가 열리고 있는 가고시마를 찾아 5일 동안 선수들을 지켜본 힐만 감독은 즐거운 표정이었다. 이 선수들이 SK의 미래라는 것에 대해 관심을 기울였고, 또한 좋은 기량을 가지고 있다며 높은 평가를 내렸다. 힐만 감독은 2003년 니혼햄 부임 당시에도 팀의 육성 파트에 많은 조언을 해 지금의 니혼햄 시스템을 만드는 데 결정적인 공을 세운 지도자다. 그런 힐만 감독의 눈에도 현재 SK의 팜 시스템이 그렇게 떨어지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힐만 감독은 MLB 팀들을 거치며 다양한 팀들의 육성 시스템을 흡수했다. 스스로 “야구계에 오랜 시간 머물면서 축복받은 보직과 경험을 얻었다”라고 말할 정도다. 다만 아무래도 양키스에 재직한 시절이 길었던 만큼 양키스 시스템의 순차적 도입을 기대하는 시각도 있다. 양키스는 전형적인 부자 팀 이미지가 강하지만, 세인트루이스와 더불어 팜 시스템의 선구적인 팀이었다. 이런 시스템을 경험하고 운영해봤던 힐만 감독의 가세가 큰 가치를 가진 이유다.
특히 힐만 감독이 조직에 몸담았던 1990년에서 2000년 사이는 특급 스타들이 팜 시스템에서 많이 올라온 시기로 뽑힌다. 데릭 지터, 마리아노 리베라, 앤디 페티트, 호르헤 포사다, 버니 윌리엄스 등 훌륭한 선수들이 팜 시스템에서 성장해 팀의 주축으로 자리 잡은 시기로 기억된다. 현재 양키스의 단장인 브라이언 캐시먼과는 부단장 시절 만나 육성 시스템에 대한 폭넓은 의견을 공유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런 경력을 가진 힐만 감독도 기민하게 움직이고 있다. 11일 취임식에 앞서 퓨처스팀(2군) 코칭스태프와 별도의 미팅을 가졌다. 이 자리에서 자신의 육성 철학을 설명하고, 또한 코치들에게 많은 것을 물으며 정보를 얻었다. 힐만 감독은 “육성이라는 개념은 2군 뿐만 아니라 1군도 포함되는 것이다”라고 전제하면서 “아직 다 파악이 되지는 않았지만 단 한 가지만 명확하게 전달하고 싶었다. 2군 지도자들은 선수들에게 ‘헷갈리는’ 메시지를 주면 안 된다. 일정한 방향으로, 꾸준하게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성과가 나지 않는다며 이것저것 바꾸게 하거나, 당장의 성적을 위해 선수의 재능과 맞지 않는 옷을 입히지는 말라는 일종의 조언이자 경고인 셈이다. 힐만 감독은 자신부터 적극적인 개입을 시사했다. 2군 코칭스태프의 권한을 침범하지는 않겠지만 언제든지 토론을 통해 노하우를 공유할 수 있다는 생각이다. 힐만 감독은 “내가 모든 것을 바꿀 수는 없다. 하지만 그간 쌓은 노하우나 지식 등을 긍정적인 방향에서 주입하는 일은 하고 싶다”고 강조했다.
가고시마 캠프에서도 수비 훈련의 방법이 조금 바뀐다든지, 힐만 감독이 강조하는 ‘세밀함’에 중점을 둔 훈련이 이어지고 있다. 코치들이 적극적으로 감독에게 의견을 개진하고, 또 더 나은 훈련 방법을 물어본 결과다. 힐만 감독도 코치들의 이런 자세에 대만족을 표하며 일본을 떠났다. 힐만 감독은 “대대적인 시스템 도입은 어렵겠지만 이런 부분에서도 구단이 큰 기대감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알고 있다. 노하우든, 시스템이든 믿음을 가지고 잘 헤쳐 나가겠다”고 각오를 드러냈다.
구단도 지원 폭을 넓힌다는 생각이다. 감독 하나만 움직인다고 되는 문제는 아니기 때문이다. 실무 인력이 더 필요할 수도 있고, 장비 하나라도 더 지원해야 할 수도 있다. 민경삼 SK 단장은 “감독의 노하우를 좀 더 잘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필요한 부분에서는 지원을 할 생각이다. 확실한 철학을 가지고 있는 감독이다. 구단도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SK의 진짜 개혁이 출발점에 섰다. /skullboy@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