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h! 시네마]‘형’, 코미디 가장한 최루극& 가족 앞세운 국민화합극
OSEN 강서정 기자
발행 2016.11.16 11: 30

[OSEN=유진모의 취중한담] 조정석과 도경수를 투톱으로 내세운 영화 ‘형’(권수경 감독, CJ엔터테인먼트 배급)은 재미있고 값어치도 갖췄다. 코미디라 여기고 웃다보면 어느새 눈물 콧물이 흥건해질 정도로 울컥한다. 다만 ‘럭키’가 가벼운 코미디로 흥행에 크게 성공한 배경이 사회상에 밀접하게 연계되는 것과는 방향이 좀 다른 게 흥행의 변수다.
20살의 유도 국가대표 선수 고두영(도경수)은 경기 도중 불의의 사고로 장님이 된다. 18살 때 가출해 어느새 사기전과 10범이 돼 복역 중인 33살의 형 고두식(조정석)은 그런 동생을 돌보겠다는 가짜눈물로 1년간의 가석방 판결을 얻어 집으로 돌아온다.
이들은 이복형제다. 두식은 어릴 때 어머니를 병으로 떠나보냈고, 아버지는 당시의 간호원을 새 아내로 맞아들여 두영이 태어난 것. 계모는 두식의 도시락에 계란프라이를 빼놓지 않는가 하면 점심시간에 직접 학교로 찾아와 즉석에서 냄비국수를 끓여줄 정도로 성심성의껏 보살펴줬고, 이에 보답하듯 두식은 두영을 거리감 없이 끔찍이 돌봐줬다.

그렇게 사춘기를 맞은 두식은 동네 아줌마로부터 계모가 생모의 병간호를 하며 아버지와 눈이 맞았다는 말을 듣는 순간 달라진다. 계란 프라이는 집 앞마당의 감나무 아래 파묻고 등교하며 반항하더니 결국 18살 때 집을 뛰쳐나갔고, 공교롭게도 두영은 18살 되던 해 혼자서 부모의 장례식을 치렀다.
두식은 두영을 ‘개새(끼)’라 불렀고, 두영은 두식을 ‘야’라고 했다. 이렇게 서로 죽일 듯이 서로를 미워하는 형제 사이에 두영의 예전 코치 이수현(박신혜)이 끼어든다. 차라리 죽는 게 더 낫다며 희망을 포기한 두영에게 수현은 패럴림픽 금메달에 도전하자고 제안하지만 두영은 “20년 간 살아온 이 집에서 한 발짝 떼는 것도 힘든데”라며 더욱 좌절한다.
두식은 동네 마트에서 수상한 청년 대창을 만난다. 목사가 되고 싶지만 돈과 ‘빽’이 없어 신학대학을 휴학한 채 중국집에서 배달 아르바이트를 하는 ‘취준생’이었다. 일촉즉발 같은 두식과 두영의 사이에 수현과 대창이 끼어들면서부터 일부러 억누르고 애써 잊고자 했던 우애가 다시 수면 위로 고개를 쳐들기 시작한다.
그 과정에서 등장하는 갈등 혹은 오해는 가족의 해체 혹은 진정한 의미다. 두영은 “왜 가족을 버리고 집을 나갔냐”고 항의하고, 두식은 “집 나간 놈은 행복한 줄 아냐”고 항변한다. 그렇게 두영에 대한 거부감과 상대적 박탈감에서 벗어난 두식은 “네가 홍길동이냐, 형을 형이라 못 부르게?”라며 어깨를 감싸 안아준다.
두식은 두영을 운동장으로 끌고 나가 “달리라”며 패럴림픽 참가를 강권한다. 두영은 “무섭다”고 말하고, 두식은 “너 놀리는 새끼 있으면 내가 혼내줄 거야”라고 믿음을 준다.
처음부터 스피디한 전개가 깔끔하다. 두식은 두영에게 물리도록 라면만 끓여주고 자기는 햄을 구워 밥에 얹어 먹는다. 두영이 “햄 냄새가 난다”고 말하자 두식은 “햄은 무슨 햄, 네 존재가 햄이지”라고 속이는 등 곳곳에 포진한 아기자기한 유머가 참으로 순수하고 부드러워 좋다.
대사엔 ‘새끼’ ‘놈’ ‘씨발’ 등의 상소리가 넘치지만 결코 저질스럽거나 천박하지 않고 시종일관 아름답고 눈물겨우며 가슴이 벅찬 시퀀스 일색에 유머는 일정 수준을 웃돈다. 뭣보다 조정석과 도경수의 매력이 ‘빵빵’ 터지는 게 이 영화의 가장 큰 미덕이자 재미다. 형제가 화합한 뒤 삼바춤을 추는 장면은 ‘검사외전’의 강동원의 ‘붐바스틱’ 춤에 못지않게 여성 관객의 눈에 호강을 선사할 것으로 보인다.
중반까지 코미디의 향연이라면 후반은 오열의 해일이다. 세상에서 자신이 제일 불행하고, 가장 많은 것을 빼앗겼다는 피해의식 탓에 되는대로 살았던 두식이 삶의 참의미가 뭔지 깨달았을 때 그 소중한 ‘가족’과 헤어져야만 한다는 것을 알고는 180도 달라진다. 그런 그와 두영을 인간미로 감싸는 사람은 수현과 대창이다.
두식과 두영은 어쩌면 보수와 진보의 진정한 의미도 모른 채 이념이란 대척점에 스스로를 가둔 채 갈라선 대한민국 국민이란 이복형제일 수도 있다. 두식이 자신의 것을 빼앗아갔다고 오해하는 대상인 두영이 그렇다고 ‘정유라’는 아니지 않은가? 시대가 어느 땐데 케케묵은 지역감정의 망령에 사로잡힌 채 성골(부모 모두 왕족)과 진골(한쪽만 왕족), 혹은 반상이란 말도 안 되는 계급체계를 자행하는지 묻고 있는 듯하다.
두영이 무조건 부모를 거스르고 자신에게 적대적인 두식이 서운했던 이유는 결코 생소하지 않다. 그 역시 이복동생(서자)이란 이유로 사랑하는 형을 잃어야만 했던 피해자이기 때문이다. 같은 피해자끼리 오해하고 그래서 반목하고 갈등하고 미워해야만 했던 이유는 남 말하기 좋아한(사돈 남 말한) 한 동네 아줌마였다. 그녀는 어쩌면 무심코 개구리한테 돌은 던지는 무책임한 철부지거나 아니면 자신의 이익을 위해 혹세무민하는 정치인이었을지도 모른다.
유도 경기 때 두영이 상대방 외국선수에게 “너 형 있어? 난 형 있어!”라고 처절하게 울부짖는 장면은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이다. 안정된 유도 국가대표 코치직을 내던지고 장애인선수에게로 가는 수현과 ‘스펙’의 희생양 대창의 의미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오 브라더스’의 재미와 ‘집으로’의 가족애가 넘쳐나지만 왠지 박신혜의 존재감은 별로 돋보이지 않는 게 옥에 티다. 12살 이상 관람 가. 24일 개봉. /ybacchus@naver.com
[칼럼니스트]
[사진] ‘형’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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