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팎으로 어수선한 삼성전자가 인수를 통해 분위기 전환에 나섰다.
삼성전자는 14일 이사회를 통해 미국 자동차 전자장비(전장) 기업 '하만(Harman)'을 인수하기로 의결했다고 밝혔다. 인수가격은 주당 112달러, 인수 총액 80억 달러(약 9조 4000억 원)이다.
커넥티드카용 전장시장이 연평균 9%의 고속성장을 하고 있는 가운데 삼성전자의 하만 인수는 미래 먹거리 창출이라는 점에서 이재용 부회장이 전면에 나선 새 삼성전자의 승부수로 볼 수 있다.
실제 하만은 전장사업 매출 비중이 65%에 이른다. 현재 프리미엄 인포테인먼트 시장 점유율 1위(24%), 텔레매틱스 시장 2위(10%), 카오디오 시장 1위(41%)에 올라 있다. 매출이 70억 달러, 영업이익이 7억 달러(직전 12개월 기준)에 달한다.
이번 삼성전자의 하만 인수는 국내 기업의 해외기업 M&A(인수합병) 사상 최대 규모로 알려졌다. 그런 만큼 관련 업계에서는 비상한 관심을 보이고 있다. 또 이번 인수는 최근 삼성전자에 쏟아지고 있는 곱지 못한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리는 효과도 거둘 것으로 보고 있다.
지난 7월 이건희 회장의 성매매 의혹으로 곤욕을 치른 삼성전자는 후반기 기대를 걸었던 갤럭시 노트7의 폭발 사태에 이은 2차례 리콜과 단종으로 대외 이미지가 크게 실추됐다. 노트7의 폭발에 따른 발화 원인 규명이 늦어지고 있는 가운데 2번에 걸쳐 내놓은 보상안은 소비자들의 불만을 고조시켰다.
최근에는 최순실 국정농단에 삼성전자가 연루됐다는 의혹이 일었다. 최씨가 기획한 미르·K스포츠 두 재단에 삼성전자가 204억 원을 출연한 것은 물론 최씨의 딸 정유라의 승마 훈련비를 위해 35억 원을 부담했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박상진 삼성전자 사장은 물론 이재용 부회장까지 검찰의 소환에 응해야 했다. 더불어 삼성전자는 지난 2008년 삼성 비자금 수사 이후 8년만에 본사에 대한 압수수색까지 당하는 굴욕을 치렀다.
업계에서는 "한국에서 기업을 운영하기 위해 정치적인 비즈니스가 필수인 만큼 어쩔 수 없는 부분"이라는 동정론도 있지만 "아무리 돈이 많아도 초일류 기업을 표방하는 기업인 삼성이 어떻게 그럴 수 있나"라며 최순실 게이트의 연결고리인 삼성전자에 대한 비판 여론도 만만치 않다. 지난해 5월 이재용 부회장의 경영권 확보를 위해 옛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을 합병하는 과정에서 국민연금의 지원을 받았다는 의심까지 다시 나돌고 있는 상황이다.
하만 인수는 삼성전자의 주위를 환기시킬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한 것으로 보인다. 특히 지난달 임시주주총회에서 삼성전자 사내이사가 되면서 경영 전면에 나선 이 부회장의 본격 행보 시동이라는 점에서도 새롭게 주목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지난달 인공지능(AI) 시장 진입을 위해 비브랩스를 인수한 것과 함께 이재용의 항로를 예측할 수 있다는 점에서도 흥미를 모을 전망이다.
삼성전자의 하만 인수는 스마트폰 사업에 쏠려 있는 의존도를 분산시키려는 의지로도 읽히고 있다. 최근 노트7 사태로 봉착한 위기 의식이 하만에 대한 과감한 투자로 이어졌을 것으로 보고 있다. 수익 구조에 다양한 변화를 줘 위험 부담을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한편 하만은 JBL를 비롯해 하만카돈(Harman Kardon), 마크레빈슨(Mark Levinson), AKG 등 프리미엄 오디오 브랜드, 카오디오에서는 뱅앤올룹슨(B&O), 바우어앤윌킨스(B&W) 등의 브랜드를 보유하고 있다. /letmeout@osen.co.kr
[사진] 하만 홈페이지 캡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