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정치권은 비정상적인 일들로 대혼란이다. 시즌이 끝난 프로야구도 정치권과 닮은 비정상적인 일들이 연이어 터지고 있다. 승부조작 파문의 끝자락에 두산 베어스는 진야곱의 불법 스포츠 도박 사이트 베팅 사실을 은폐한 의혹을 받고 있다. 뒤늦게 사실을 인정하면서 유체이탈 사과, 변명으로 일관하고 있다.
# 통보 시점- 거짓말과 은폐 의혹
두산은 지난 9일 오후 보도자료를 통해 "지난 8월 KBO의 ‘부정행위 자진 신고 및 제보 기간’에 모든 소속 선수를 대상으로 개별 면담을 진행했고, 해당 선수가 이 면담을 통해 불법 스포츠도박 사이트에서 배팅을 했던 점을 시인했으며 구단은 이 사실을 곧바로 KBO에 알렸다"고 밝혔다.
그러나 KBO는 "8월 자진 신고 기간에 두산으로부터 진야곱의 불법 베팅 사실을 통보받은 적 없다"고 밝혔다. "9월말 경찰에서 진야곱의 연락처를 물어왔다. 몰라서 두산 관계자 연락처를 알려줬다. 이후 구단 관계자에 물어서 진야곱이 참고인 조사를 받은 사실을 알았다"고 설명했다.
그러자 두산측은 9일 밤 "진야곱과 면담을 진행한 담당자가 전화로 KBO에 통보했다고 주장하지만, KBO에서 못 받았다고 한다. 의사 소통 과정에서 착오가 생긴 것 같다"고 이상한 변명을 했다. 착오 문제가 아니다. 두산은 "연락했다", KBO는 "연락받지 못했다". 누군가 거짓말을 하는 것이다.
KBO는 더 이상 진실 공방을 확대시킬 의도가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그러면서 "9월말에서야 진야곱의 불법 베팅을 인지한 것은 분명하다"고 못 박았다.
KIA는 7월 23일 유창식이 승부조작을 자진신고하자 KBO에 통보했다. KBO는 곧바로 내부 보고를 통해 '유창식의 승부조작 자진신고'를 24일 발표했다.
만약 두산이 KBO에 진야곱 사건을 통보했는데, KBO가 자진신고 내용을 밝히지 않으면 며칠 뒤에 KBO에 문의했어야 했다. 자진신고 마감(8월12일) 이후 KBO가 '유창식 외에는 자진신고자가 없다'고 발표했을 때라도 서로 사실 관계를 재확인해야 했다. 은폐할 의도가 아니었다면.
# 도덕적 해이- 불법 도박 알고도 출전 강행
두산이 8월 자진신고를 했다는 주장이 사실이라고 해도 문제점은 더 있다. 도덕성에 심각한 사안이다. 두산측의 주장대로 따르면 8월 면담을 통해 진야곱의 불법 도박을 인지하고서도 계속 1군 경기에 출장시켰다.
진야곱은 8월4일 1군 엔트리에서 말소됐다가 8월14일 재등록됐다. 이후 9월29일 1군에서 뛰고 다음날 엔트리에서 말소됐다. 진야곱은 재등록 후 8월과 9월 모두 17경기에 출장했다. 불펜이 약한 두산의 중간 계투로 뛰며 1승3홀드 방어율 1.65을 기록했다. 9월에는 11경기 9⅔이닝 무실점 평균자책점 0이었다. 두산은 진야곱이 등판한 17경기에서 11승6패를 기록했고 정규 시즌 1위를 확정했다.
진야곱은 9월말 경찰의 참고인 조사를 받고도 이후 2경기를 더 뛰고 9월30일에서야 1군 엔트리에서 말소됐다. 두산은 진야곱의 불법 도박 사실을 알고서도, 이후 참고인 조사를 받고서도 경기에 출장시킨 것이다.
지난해 삼성의 도박 의혹을 받은 선수들이나 올해 승부조작 의혹(결국 무혐의)을 받은 이재학(NC)이 갖은 비난에 일정 기간 1군 엔트리에서 말소된 것과는 아주 대조적이다.
두산은 보도자료에서 "해당 선수는 경찰에 출두해 참고인 조사를 받았으며, 구단은 이 선수를 한국시리즈 엔트리에서 제외한 바 있다"고 했다. 불법 도박을 인정한 선수를 정규시즌에 뛰게 한 사정에 대해서는 아무런 설명이 없었다.
# 유체이탈 사과, 거듭된 변명
경기북부지방경찰청은 지난 7일 프로야구 승부조작 수사 결과를 발표했다. 160만원을 H선수에게 대리 베팅한 혐의의 G선수는 이재학(NC)이라고 공개적으로 밝혔지만, 600만원을 불법 스포츠도박 사이트에서 베팅한 H선수는 이름을 공개하지 않았다.
OSEN은 9일 오전 경찰이 밝힌 리스트의 H선수는 진야곱이라고 공개했다. 공소시효는 만료됐지만, 같은 혐의의 이재학은 이름이 공개되고 진야곱은 밝혀지지 않은 점, 법적인 징계는 모면해도 KBO의 징계는 논의해야 된다는 점에서 이름을 밝혔다.
그러자 두산은 9일 오후 보도자료를 배포하며 "승부조작 수사 결과에 구단 선수가 연루됐음을 밝힌다"고 뒤늦게 사과문을 발표했다. 그런데 진야곱의 이름은 보도자료 어디에도 언급하지 않았다. 자체 징계를 하겠다는데, 누구를 징계하겠다는 건지 그냥 '해당 선수'로 지칭했다. 허울 뿐인 사과 보도자료였다.
진야곱이 이름을 쏙 뺀 두산의 보도자료에 대해 타 구단 관계자는 "역시 두산을 보고 많이 배워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런 식으로 일처리를 할 수 있다는 걸 이제 알았다"고 탄복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국민들의 공감을 전혀 받지 못한 대통령의 사과문과 다를 바 없다"는 반응도 있었다.
KBO측의 '8월 진야곱 자진신고는 없었다'는 보도가 나가자, 두산측은 9일 밤 담당 기자들에게만 전화로 또 한 차례 변명에 나섰다. 두산측의 이야기다. “면담 당시 초점이 승부조작에 맞춰져 있었는데 진야곱의 불법 베팅 문제를 크게 생각하지 못했다. 경찰에 출두해 조사를 받은 뒤에 심각성을 인지해 말소했고, 한국시리즈 엔트리에도 포함시키지 않았다.”
진실을 정확하게 밝히지 못한 변명에 이어 이를 덮으려는 어설픈 변명이 뒤따르는 악순환이었다. 7월22일 KBO는 '부정행위 및 품위손상행위 재발방지를 위한 대책 마련'을 언론과 각 구단에 알렸고, 야구장 라커룸에 관련 사항들을 포스터로 붙이는 등 경각심을 일깨웠다. 당시 보도자료에 담긴 내용 일부다.
"승부조작이나 도박 등 부정행위 처벌규정 및 신고자 포상제도 고지문을 덕아웃 및 라커룸에 게시하고, 선수단 윤리강령을 제정하여 도박, 금품 및 향응수수, 인종차별, 가정폭력, 성폭력, 음주운전 등에 대한 심각성을 선수들이 상시 인식하게 할 예정이다."
또 8월 6일에는 KBO와 프로야구선수협회는 공동으로 '선수 여러분께 드리는 말씀'이라는 제목으로 승부조작 자진신고 호소문을 각 구장 덕아웃에 배포했다. 불법 스포츠 베팅을 처벌받는다는 포스터도 같이 붙였다.
당시 야구계 전체가 승부조작 등 불법 행위에 대해 엄청난 비난과 충격에 휩싸여 있을 때였다. 어떻게 두산 관계자들은 "불법 베팅의 문제를 크게 생각하지 못했다"라고 말할 수 있는지 정말 충격적이다. 구단을 운영하는 책임자들의 생각이 정말 저렇다면 그게 더 큰 문제가 아닐까.
한국시리즈 2연패의 성적은 빛날지 몰라도 진야곱 사태에 대한 두산의 일처리와 문제 의식, 해결 방식은 너무나 안일하다. 제대로 된 사과가 무엇인지 모르는 건지, 진실을 제대로 밝히기 꺼리는지. 그들에게 책 한 권을 추천한다.
저명한 언어학자인 바티스텔라 교수가 쓴 '공개 사과의 기술', 다음은 책의 일부 내용이다.
“사람들은 자신을 변호하며 사과하려 할 때 딜레마에 빠진다. 사과는 후회의 감정을 전달하지만, 변호는 그런 감정을 경감한다. 자기변호는 시간이 지나면서 변하고, 그 때문에 본래의 사과를 확장하거나 바꿔야 할 수도 있다. 그처럼 지속적인 수정은 본래의 사과를 진실하지 않거나 불완전한 것으로 만든다. 분명한 피해에 대해 사과하기를 거부하고 핑계만 대는 것도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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