챔피언답지 못한 대처였다. 두산 베어스가 구설수를 자초했다.
지난 8일 경기북부경찰청에서 발표한 승부조작 수사 결과 두산의 한 선수가 2011년 불법 스포츠도박 사이트에서 베팅한 것이 드러났다. 이 선수가 진야곱이라는 것도 공개됐는데, 이미 만으로 5년이 넘게 흘러 공소시효는 지났지만 도의적인 책임까지 면할 수는 없었다.
이에 두산은 9일 공식 입장을 냈다. “지난 8월 KBO의 ‘부정행위 자진 신고 및 제보 기간’에 모든 소속 선수를 대상으로 개별 면담을 진행했고, 해당 선수가 이 면담을 통해 불법 스포츠도박 사이트에서 배팅을 했던 점을 시인했으며 구단은 이 사실을 곧바로 KBO에 알렸다”는 것이 두산 측 의견이다.
그러나 KBO에 문의한 결과 이야기가 엇갈렸다. KBO의 정금조 운영부장은 “(두산이 8월에 자진 신고를 했다는 사실을) 들은 적이 없다. 진야곱에 대한 이야기를 처음 들은 것은 9월 중순경이다. 경찰청에서 연락이 와서 진야곱의 연락처를 물었는데 몰라서 두산 관계자 연락처를 일러줬다. 그리고 구단 관계자에게는 무슨 일이 있으면 KBO로 연락을 해달라고 했다”고 설명했다.
두산의 김승호 운영팀장과는 연락이 닿지 않았다. 수차례 통화를 시도했을 때 계속 받지 않았고, 통화중인 경우는 있었지만 기자에게 다시 전화가 오지는 않았다. 정 부장에 따르면 이 정도로 큰 일이 있으면 보통 구단의 운영팀장급을 통해 연락이 온다. 그러나 정 부장은 김 팀장이 8월에 자신에게 진야곱 관련 연락이 없었다고 전했다.
자진 신고 기간에 두산으로부터 들은 이야기가 없기에 KBO에서는 유창식 이후 자진 신고한 선수가 없다는 것을 공식적으로 발표까지 했다. 정 부장은 “공식적으로 자진 신고를 했다면 경찰청에서 수사를 하거나 어떤 조치를 취했을 것이다. 그때는 다른 이야기가 없다가 이렇게 되어 혼란스러운 상황이다. 만약 이야기를 들었다면 빨리 처리해달라고 했을 것이다”라고 덧붙였다.
두산의 주장이 맞다 해도 문제다. 8월에 면담을 실시한 뒤 KBO에 자진 신고까지 해놓고 진야곱을 9월 29일까지 계속 출전시킨 것이 되기 때문이다. 정규시즌 막판까지 쓰다가 수사 결과가 발표될 시점이 임박하자 한국시리즈 엔트리에서는 빼놓은 모양새다. 심지어 진야곱은 한국시리즈를 앞두고 자체 청백전에도 등판했다. 진야곱을 자체적으로 징계한다고 했지만, 만약 거짓말을 했다면 두산은 징계를 내리는 것이 아니라 받는 입장이 돼야 한다.
정 부장이 여러 매체들을 통해 KBO의 입장을 전달한 뒤 9일 오후 늦은 시간에는 두산의 한 관계자로부터 연락이 왔다. 이 관계자는 “김승호 팀장은 KBO에 전화를 했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고, 지금도 확신하고 있다. KBO에서는 통화가 없었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는데 커뮤니케이션에 문제가 있었던 것 같다”고 이야기했다.
진야곱을 출전시킨 일에 있어서는 깨끗이 사죄했다. “면담 당시 초점이 승부조작에 맞춰져 있었는데 진야곱은 불법 베팅의 문제가 크게 생각하지 못했다. 경찰에 출두해 조사를 받은 뒤에 심각성을 인지해 말소했고, 한국시리즈 엔트리에도 포함시키지 않았다. 이 점은 구단이 잘못 판단한 것이라 팬들께 죄송하게 생각하고 있다”는 것이 이 관계자의 설명이다.
그러나 한 가지 풀리지 않는 의문점은 왜 자진 신고한 선수가 없다고 KBO에서 발표했을 때 KBO에 진야곱에 대한 문의를 하지 않았는가 하는 점이다. 두산 관계자는 이에 대해 “승부조작 건에 관한 것이라 (불법 베팅도 포함이 되는지를) 인지하지 못했다”고 말했지만, 설득력이 떨어진다. 자진 신고를 했음에도 해당 선수의 이름이 포함되지 않았다면 구단이 문의하는 것이 당연하지만, 뭔가 석연치 않은 부분이 남아있다.
두산은 과거에도 선수들이 물의를 빚어 뒷수습을 했던 적이 많다. 하지만 풍부한 경험도 소용없었다. 우승에 눈이 멀어서 그랬는지 과거 불법 베팅 사실을 털어놓은, 더 정확히 말하면 불법 베팅 사실을 고백해 구단이 KBO에 자진 신고를 했다고 구단 스스로 주장하고 있는 선수를 계속 기용했다.
정말로 8월에 면담 후 자진 신고를 했다면 적어도 KBO가 발표했을 때 진야곱이 왜 자진 신고자 명단에 없었는지 한번쯤 짚고 넘어갔어야 했다.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해도 최소 일처리가 제대로 되지 못했다는 비판은 피하기 어렵다. 만약 거짓말까지 한 것이라면 두산은 한국시리즈 2연패를 하고도 리그를 무시한 건방진 챔피언으로 기억될 것이다. /nick@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