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산 V스토리]⑤ 화수분 빚는 공방, 프런트의 힘
OSEN 조인식 기자
발행 2016.11.08 07: 25

잠실구장 내 두산 베어스 사무실 가장 안쪽에는 김승영 사장과 김태룡 단장의 자리가 있습니다. 단장실에 들어가면 벽면에 보드가 걸려 있는데, 두산 선수단 전원의 사진이 자석으로 붙어 있어 전력 현황을 파악하기 쉽죠.
큰 보드 안 두 개의 그라운드 모양 그림은 1군과 퓨처스리그가 구분되어 있고, 부상을 당하고 재활 중인 선수나 군에서 생활하고 있는 선수들의 자리도 따로 있습니다. 가끔 단장실에서 김 단장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잠시 옆으로 시선을 돌리면 자석 위치가 바뀌어 있는 선수들도 보입니다. 그러면 즉석에서 자연스럽게 질문이 만들어지기도 하고, 팀 사정을 상세히 알 수 있는 기회도 생기죠.
진부하지만 두산은 화수분이라는 애칭으로 통합니다. 기존 선수가 빠져나가도 어떻게든 새로운 선수가 나와 그 자리를 메워주기 때문이죠. 다른 팀에서 방출됐던 이종욱이나 육성선수 출신인 손시헌, 김현수 등 다른 팀에서 보기 힘든 ‘흙수저’들의 성공스토리도 너무나 흔했습니다.

지난해 우승 후 두산의 육성 비결을 물었을 때 김승영 사장은 “경창호 전 사장님 시절부터 선수를 키우는 일에 관심이 많았다. 2군 경기장이라는 것도 우리가 최초로 갖고 있었다. 창단(1982년) 이듬해에 이천 OB맥주 공장 옆에 당시로서는 정말 좋은 2군 경기장을 만들어서 썼다”고 돌아봤습니다.
이후 2005년 이천에 선수단 숙소가 포함된 훈련 시설인 베어스 필드를 지은 두산은 2014년 최첨단 훈련 및 재활 시설과 클럽하우스를 더한 베어스 파크를 완공해 미래 자원 육성에 더욱 박차를 가했습니다. 2005년 베어스 필드 시대부터 나온 유망주들이 지금의 팀을 만든 근간이 되었는데, 두산은 앞으로 나올 자원들에 대한 기대도 큽니다.
막대한 자금이 들어가는 훈련 시설은 그룹 차원의 없다면 불가능합니다. 하지만 육성 정책은 온전히 프런트의 소관이죠. 군 팀인 상무와 경찰청을 적절히 활용하는 정책, 팀 내 우선순위에서 상위권에 있는 유망주들을 비교적 빨리 입대시키는 선택이 현재 전력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한국시리즈 MVP를 받은 양의지는 1군에서 풀타임으로 7년을 보냈지만 이제 우리나이로 서른이라 뛸 날이 한참 남았습니다. 1군에서 꽃을 피운 허경민, 박건우는 군대를 일찍 다녀온 덕에 아직 스물일곱에 불과합니다. 김재환은 늦게 두각을 나타내기는 했지만 상무에서 제대한 것은 2010년입니다. 프로에서 첫 시즌만 보내고 바로 입대했던 거죠. 이외에도 김인태, 이우성 등 두산은 20대 초, 중반의 군필 자원이 즐비합니다.
있는 집이 이자만 가지고도 재산을 불리듯 1군이 강하면 육성에도 탄력이 붙습니다. 1군 전력이 약하면 퓨처스리그에서 완성되지 않은 유망주가 올라와 부진을 겪고 다시 내려가는 일이 많지만, 강팀에서는 1군에 올라와 데뷔전부터 돌풍을 일으키는 선수가 유독 많습니다. 완전히 준비되지 않은 유망주가 쉽게 1군에 발을 디딜 수 없을 정도로 단단한 전력을 갖춰 놓은 팀들만이 더 강한 루키를 얻을 수 있다는 논리입니다.
따라서 두산은 미래가 더욱 밝다고 볼 수 있습니다. 프런트의 힘이 강하지만 두산은 ‘프런트 야구’라는 말을 많이 듣는 팀은 아닙니다. 그만큼 보이지 않는 곳에서 후방 지원부대와 같은 일을 묵묵히 해주고 있다는 뜻도 되겠습니다.
아무리 써도 줄지 않는다는 뜻과 달리 전영택의 소설 ‘화수분’에서 화수분 일가는 가난으로 인해 고통을 받습니다. 하지만 두산표 화수분은 단어 뜻 그대로 아무리 선수를 잃어도 계속 쏟아져 나오고 있죠. 소설에서 화수분 일가의 가난은 그저 우연에 의한 것으로 묘사됩니다. 하지만 두산은 다릅니다. 우연한 계기로 강팀이 될 수는 없다는 철학에서 시작한 두산은 지난 시즌까지는 다른 팀들의 경쟁자였지만, 이제는 롤 모델이 됐습니다.
OSEN 두산 베어스 담당 기자 조인식 nick@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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