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예지, 여러 소녀의 이름을 지닌 음색여신[인터뷰]
OSEN 최나영 기자
발행 2016.11.19 09: 04

 여러 소녀들의 이름을 지닌 음색여신이다. 소녀들의 이름으로 자신의 여러 모습을 투영한 재즈 보컬리스트 남예지가 돌아왔다.
남예지는 17일 3집 정규앨범 ‘인형의 집으로 오세요’를 발표, 늦가을 더욱 짙어진 감성을 내뿜고 있다. 이번 정규 앨범은 2집 ‘Terra Incognita’를 발표한 지 5년만에 나오는 것이다.
남예지는 2003년 발매되며 국내 재즈음악의 불후의 명반으로 꼽히는 ‘누보송 (Nouveau Son)’의 수록곡 '춘천가는 기차'로 데뷔한 후 두 장의 정규앨범, 퓨전재즈밴드 '메리고라운드'의 1집 앨범과 MC 스나이퍼, 랍티미스트, 키네틱플로우와 같은 힙합뮤지션과의 콜라보레이션 등 재즈, 영화 OST, CCM, 가요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음악 활동을 통해 인정받아 온 보컬리스트이다.

그의 이번 앨범 노래들은 독특하다. 지난달 선공개한 ‘Anna’와 ‘Maria’에서 알 수 있었지만, 모두 소녀의 이름들이다. 타이틀곡은 ‘Lucy’. 각양각색 소녀들의 이름을 딴 9개의 트랙은 호기심을 높이는 동시에 듣는 이를 매료시킨다.
남예지는 이번 앨범에 대해 '성장통에 대한 이야기'라고 설명했다. 이런 의미에서 소녀의 이름들과 앨범 전체의 콘셉트가 하나의 맥락을 지니게 된다. 무리로부터 떨어져나갈지 모른다는 소외감과 불안함. 그 속에서 성장하는 소녀, 그리고 우리들. 
남예지의 음악은 깊고 넓다. 그의 음악은 재즈, 클래식, 라틴, 포크 등 다양한 장르 위에서 흘러다닌다. 남예지는 이번 앨범에서 작사, 작곡, 프로듀싱까지 직접 참여, 싱어송라이터로서의 자신만의 색깔을 확실히 드러내고 있다. 보헤미안 감성을 기반으로 한 이런 다양한 노래들은 평범함에 지친 리스너들에게 신선한 즐거움을 주기에 충분해보인다. 
- 5년 만에 신보를 발매했다. 짧지 않은 시간인데 그간 무엇을 하면서 보냈나? 메리고라운드의 활동은?
▲ 늘 하듯이 학교가서 공부하고, 학생들 가르치고, 틈틈히 연주나 동료들 음반 피쳐링 하면서 지냈습니다. 예전에 비해서 달라진 것은 책 읽고 공부하는 시간이 일과에서 더 늘어난 것 같아요. 메리고라운드도 다들 각자 열심히 활동 중이라 자주 모이진 못했는데 아마 곧 작업을 하게 될 것 같습니다. 이번 제 앨범에 멋진 연주를 해주신 베이시스트 황인규씨와 기타리스트 이동섭씨도 메리고라운드의 멤버랍니다. 제가 굉장히 의지하는 분들이고 앞으로도 아마 계속 그럴꺼에요.
- 앨범 타이틀 '인형의 집으로 오세요'가 의미하는 바는 무엇인가?(입센 작품도 생각나고, 동명 영화도 있는데)
▲ 어릴 때 영화 ‘인형의 집으로 오세요’를 굉장히 인상 깊게 봤었어요. 그 영화의 주인공 소녀가 학교에서도 가정에서도 늘 소외당하는 아인데, 어릴 땐 그게 마냥 불쌍하고 슬프더니 커서 다시 보니, 누구나 때로는 그 아이의 모습이 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한번이라도 ‘소외’를 경험하지 않고 살아온 사람은 없잖아요. 하다못해 좋아하는 사람에게 거절당했을 때도, 하루종일 정신없이 일하고 집에 오는 길, 허무하다는 생각이 들 때도, 모두 ‘소외’라는 감정과 관련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앨범에서 그런 이야기들을 나눠보고 싶었습니다.
- 선공개곡 '안나'를 듣고 뭔가 아련한 서정적 아름다움에 매료됐다. 어디에서 영감을 얻었나?
▲ 오래(?)살아오다보니 관계라는 것이 늘 한결같지는 않더라구요. 예전엔 그렇게도 좋아했던 사람인데 이제는 싸워서 못보고, 살다보니 바빠서 못보고, 그냥 이유없이 못보고..등등 그렇게 이제는 못보게 된, 제가 무척이나 좋아했던 사람들을 기억하는 노래입니다. 누구나 이런 경험 있으시죠? 이런 느낌을 개인적으로 피아노 위의 시인이라고 생각하는 임보라씨와 첼리스트 지박씨가 서정적으로 잘 살려주신 것 같아요.
- 보헤미안 감성이 본인의 정체성이라고 할 수 있을까? 재즈, 클래식, 라틴, 포크 등 다양한 음악적 기반이 있는데 이것이 가능한 이유는 무엇인가, 그리고 그 중에서도 가장 선호하는 장르가 있을까?
▲ 일단 기존의 장르적인 관습이나 양식으로부터 일부 자유롭고 싶었어요. 그래서 보헤미안이라는 표현이 어울린다고 생각했습니다. 제가 음악을 가리지 않고 굉장히 많이 듣는 편이에요. 특히 새로운 음악적 표현방식을 찾아내서 주위 사람들에게 알려주고 함께 이야기 나누는 일이 저에게는 큰 행복인지라 배경이 조금씩 넓어진 것 같습니다. 선호하는 장르는 자주자주 바뀌는데 최근에는 그레오리오 성가에 관심이 생겨 많이 찾아 듣고, 또 따라 부르고 있습니다.
- 새 앨범 곡들은 감성적이면서도 어딘지 모르게 낯설고 독특한 느낌이 있다. '남예지'는 어떤 뮤지션인가?(음악관을 설명하자면)
▲ 일단은 어떠한 장르 혹은 스타일이라고 딱히 말하기 힘든 곡들이 많아서 낯설게 느껴지실 수 있을 것 같아요. 위에서도 말씀드렸듯이 그 동안 저를 옭죄고 있던 장르적인 관습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었거든요. 그래서 곡을 쓰고 편곡할 때 ‘어떤 스타일’로 해야겠다는 기준을 갖고 있지 않았어요. 그냥 그동안 음악적으로 고민해왔던 것들, 라이브 연주 때는 할 수 없었던 것들, 해보고 싶었던 것들을 다 해봐야겠다는 생각으로 작업을 했습니다.
그러고 보니 제가 어떤 뮤지션인지에 대해서 곰곰이 생각해본 적이 잘 없는 것 같은데요, 실은 제가 제 입으로 저는 뮤지션입니다 라고 말한 적도 잘은 없는 것 같아요. 그만큼 저는 뮤지션이라는 직업에 대해 경외심이 있어요. 감히 내가 나를 뮤지션이라고 말해도 될까 그런 어떤...분명한 건 음악 만드는 일을 직업의 하나로 갖고 있는 사람은 맞습니다.
- 보컬리스트로서 본인의 강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 보컬리스트로서 저의 강점은 다양한 스타일을 소화하는 것에 대한 호기심이 강하다는 것입니다. 음악의 스타일을 가리지 않고 맘에 드는 곡은 다 불러보고 연구합니다. 물론 항상 성공하는 것은 아니지만, 늘 경험이 그렇 듯 남는게 있더라구요.
- 샐리, 베로니카, 루시, 안나, 마리아, 카르멘, 바이올렛, 마틸다 등 노래들이 다 여자들의 이름들이다. 맞다면 그 의미는?
▲ 처음에는 진짜 별 의미가 없이, 곡은 늘어가는데 제목이 없으니 같이 작업하는 친구와 의사소통이 힘들어지더라구요. 그래서 곡에 어울리는 이름을 하나씩 붙이기 시작했는데, 어느새 너무나 익숙해져서 다른 어떤 제목을 붙여도 어색하게만 느껴지더라구요. 주위에서도 좋다고들 하시길래 그냥 이렇게 가야겠다고 결심했어요. 이름을 붙여놓으니 왠지 자식같이 느껴지며 다른 곡들보다 더욱 애틋해지는 신기한 경험을 했습니다.
- 수록곡들 중 가장 애착이 가는 트랙과 그 이유를 설명해달라.
▲ 위에서 말씀드렸듯이 자식같이 생각이 되다보니 한곡 한곡 다 소중합니다. 열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이 있겠냐는....^^; 그런데 유독 '베로니카'를 들을 때마다 짜릿함이 있어요. 특히 한순욱씨의 드럼 연주가 저를 그렇게 만드는 것 같아요. 한순욱씨는 모든 녹음을 한 프로 안에 끝내셨을 정도로 제 곡에 대한 이해가 완벽하셨어요.
- 지난 해 MC스나이퍼 앨범에 참여했었다. 그 전에 키네틱플로우의 싱글앨범에도. 스나이퍼사운드와 어떤 인연이?
▲ 스나이퍼 오빠랑은 예전에 키네틱 플로우 1집 앨범 때 피쳐링 관련해서 만났었는데, 사정상 안하게 되었었거든요, 그리고 그 이후에 키네틱 플로우 싱글 앨범 작업할 때 참여를 하게 됐습니다. 그리고 나서 스나이퍼 오빠의 앨범에 참여한 건 얼마 전이구요.
프로듀스 101에 나왔던 아이돌들의 보컬 트레이너 김성은 언니가 학교 선배신데, 대학교 동아리에서 언니한테 노래를 배웠었어요. 스나이퍼오빠랑 키네틱플로우의 승우오빠, 키네틱 플로우 프로듀싱 하셨던 MJ오빠, 그리고 성은 언니, 이렇게 네 분이 오랫동안 같이 작업하셨고 엄청 친하세요. 성은언니 덕분에 그 사이에 살짝 껴 있는거죠 저는.
- 재즈, 퓨전, 영화 OST, 가요, 힙합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음악 활동을 벌이며 그 만큼 다양한 아티스트들을 만날 것 같다. 앞으로 콜라보레이션을 한다면 함께 작업하고 싶은 뮤지션이 있나?
▲ 이런 질문을 종종 받는데 저는 항상 같은 대답을 해요. 김건모씨랑 작업해보고 싶어요. 초등학교 때부터 제가 가장 존경하는 뮤지션이시거든요. 그런데 막상 만나게 된다면 떨려서 목소리가 안 나올 것 같네요.
- 요즘 가장 많이 하는 고민은?(뮤지션으로서도 한 사람으로서도).
▲ 일단은 앨범을 제작하면서 전 재산을 다 썼더니 앞으로 먹고 살 걱정이 첫 번째구요(진심입니다), 그 외에는 다음 작업 때는 어떤 음악을 할까, 학교를 다니고 있으니 과제걱정, 논문걱정..뭐 온통 고민 투성이네요. 그나마 결혼고민은 다음 생애에 하려고 미뤄뒀습니다.
- 앞으로의 계획과 하고 싶은 것. 박사과정 중으로 알고 있는데 계속 공부를 하는 이유도 궁금하다. 그리고 팬들에게 전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 원래 책 읽고 글쓰는 걸 굉장히 좋아합니다. 박사과정에 들어오니 매일 매일 책 읽고 글을 써야 되더라구요. 그래서 괴롭고도 행복합니다. 새로운 지식들을 머릿속에서 기존의 정보와 이리저리 연결시키는 과정이 재밌어요. 마치 음악을 만드는 것과 비슷합니다. 지금은 문화콘텐츠 쪽을 공부하고 있는데 앞으로는 미학분야로 넓혀가고 싶은 계획이 있습니다. 영원히 살 것처럼 배우려구요.
앞으로의 계획은 제 3집 앨범을 함께 해준 프로듀서 Vitali와 멋진 뮤직비디오를 찍어준 최대용 감독과 함께 ‘인형의 집으로 오세요’의 음악극을 만들 계획 중에 있습니다. 새로운 형식의 공연이 될 것 같으니 많이 기대해주세요. 아, 그리고 메리고라운드의 음반작업도 곧 시작하려고 합니다.
2003년에 누보송으로 데뷔한 뒤로 늘 분에 넘치는 기회를 주시는 분들 덕분에 지금껏 이렇게 음악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아 잘 살아왔습니다. 그래서 이번 앨범은 뭔가 ‘내가 나에게 주는 기회’ 같은 거라 생각하고 시작했는데, 결국에는 또 많은 분들께 기회를 빚졌습니다. 프로듀서 Vitali를 비롯해 저에게 또 한번의 기회를 주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늘 앨범 언제나오냐고 닦달(?)해주시는 고마운 분들, 나오자마자 열심히 들어주고 공감해주시는 분들, 저게 무슨 재즈보컬이냐고 악플다시는 분들, 모두모두 사랑합니다. / nyc@osen.co.kr
[사진] 남예지 앨범 커버,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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