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두산 베어스는 우려했던 것보다 더 몰락했습니다. 1승 차이로 우승을 놓친 뒤 김진욱 감독 대신 송일수 감독을 새 사령탑으로 선임했지만, 그 선택이 팀의 몰락을 불러왔습니다.
우승을 노릴 수 있는 팀이었지만, 두산은 1년 만에 원점에서 다시 팀을 재건해야 하는 상황을 맞이했습니다. 그리고 1년 뒤 한국시리즈에서 우승하는 기적적인 이야기를 썼죠. 그리고 올해는 정규시즌과 한국시리즈를 모두 석권하는 통합우승까지 달성했습니다. OB 시절이던 1995년 이후 21년 만의 일입니다.
6위에서 한국시리즈 2연패까지 가는 길엔 많은 일들이 있었지만, 가장 큰 두 가지 결정은 6위에 그친 직후에 있었습니다. 바로 김태형 감독 선임, FA 장원준 영입이었죠. 상당히 파격적인 결정이기도 했지만, 2년이 지난 지금 두산 프런트의 판단이 옳았다는 것이 확실히 밝혀졌습니다.
김 감독은 2014년 포스트시즌 기간 두산의 제 10대 감독으로 선임됐습니다. 사실 이전에도 감독이 될 재목으로 고려됐지만 기회가 오지 않았고, 좀 더 기다림의 시간을 가진 뒤에야 사령탑에 오를 수 있었죠. 이토 쓰토무 코치에 이어 송 감독까지 지속적으로 일본의 선진야구를 받아들이려 했던 두산은 프랜차이즈 스타 출신을 앉히는 것으로 으로 방향을 선회했습니다.
감독이 되는 과정에서 한 가지 에피소드도 있었습니다. 구단의 연락을 받은 김 감독은 처음엔 수석코치직을 제의받습니다. 하지만 만나서 이야기하기로 한 장소가 호텔이라는 말을 듣고는 감독 제의라는 것을 눈치 챘습니다. 김 감독의 생각대로 호텔로 나온 김승영 사장은 감독을 맡아달라는 이야기를 합니다. 그렇게 두산은 새로운 출발을 선언했습니다.
동시에 송 감독은 1년 만에 1군 감독직에서 물러났습니다. 3년 계약을 맺은 감독이 한 시즌만 마치고 경질되는 것은 극히 이례적입니다. 이후 롯데 자이언츠가 이종운 감독과 3년 계약하고 1년 뒤 내보내는 경우도 있었으나, 여전히 흔한 일은 아닙니다. 그만큼 파격적인 사건이었는데, 분위기를 바꿔 몰락한 팀을 일으키겠다는 의지가 엿보다는 대목입니다.
그런 마음은 김 감독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FA 시장을 지켜보다 당시 선발투수 중 최대어인 장원준이 풀리자 김 사장에게 “장원준이 (시장에) 나왔습니다”라고 했던 일화는 유명하죠. 잡아달라는 무언의 압박이었습니다. 마침 선발투수의 필요성을 느낀 두산도 영입 작업에 착수합니다. 당시 장원준을 만나러 간다는 것도 비밀에 부친 채로 조심스럽게 추진한 결과 두산은 총액 84억에 두 자릿수 승리가 보장된 선발투수를 얻었습니다.
돌아보면 장원준과의 계약 역시 김 감독을 선임할 때와 마찬가지로 파격적이었습니다. 이전까지 두산은 외부 FA 투수 영입 사례가 없었습니다. 야수까지 확대해도 외부 영입은 단 한 차례였는데, 그것도 원래 두산 출신이었던 홍성흔을 복귀시킨 게 전부였죠. 과감한 투자와 거리가 먼 팀이었지만, 여러 가지 상황들이 장원준 영입을 가능하게 만들었습니다. 오버 페이 논란도 있었지만 지금은 그런 얘기는 사라진지 오랩니다.
우선 프런트의 명예회복 의지가 강했습니다. 2013년의 우승 실패와 2014년 몰락으로 인해 구단 수뇌부도 더는 물러설 곳이 없을 때였죠. 게다가 당시 내부 FA가 없어 팀이 가지고 있는 역량과 예산을 모두 온전히 장원준에게만 쏟을 수 있는 환경이기도 했습니다. 야구에 만약은 없다지만 내부에도 대어급이 있었다면 어떻게 흘러갔을지 모를 일입니다.
두산 입단 전 장원준은 김광현, 미국으로 떠나기 전의 류현진 같은 최정상급 좌완들과 비교될 정도는 아니었습니다. 10승을 올린 것이 5년차 시즌이었고, 통산 평균자책점은 아직 4점대(4.08)입니다. 하지만 롯데에서 5년 연속 10승 이상을 기록한 것과 매년 꾸준히 선발 로테이션을 지켜준 점을 높게 평가해 두산은 계약서를 내밀었습니다. 잠실구장과 두산의 수비라면 점수를 더 적게 주고 많은 이닝을 버틸 수 있다는 계산도 있었겠죠.
당당히 한국시리즈 2선발이 된 장원준은 올해 정규시즌 15승은 물론 평균자책점 3.32로 이 부문 리그 2위이자 토종 1위에 올랐습니다. 두산은 장원준이 합류해 6위에서 우승까지 한달음에 달려갔고, 장원준은 두산에서 리그를 대표하는 좌완 에이스로 자리매김했으니 팀과 선수의 궁합이 엄청났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강자의 위치에서 내려온 2014년, 하지만 그 해 가을에 내린 두 가지 결정이 지금의 두산을 있게 만들었습니다.
- 4편에서 계속
OSEN 두산 베어스 담당 기자 조인식 nick@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