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h! 뮤직] 가을 남기고 떠난 시인 김정호·김현식·유재하·신해철
OSEN 강서정 기자
발행 2016.11.04 16: 12

[OSEN=유진모의 취중한담] 1987년 11월 1일 유재하가 교통사고로, 1990년 같은 날 김현식이 지병으로 각각 요절했다. 1985년 11월 29일 김정호가 투병 끝에 ‘하얀 나비’가 돼 하늘나라로 날아갔고, 2014년 10월 27일 신해철이 의료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그렇잖아도 스산하고 쓸쓸한 늦가을에 유독 천재들이 떠나는 듯하다.
요절한 대중가수 중 유독 돋보이는 인물은 김광석이다. 그 이유는 여러 가지겠지만 비교적 꾸준한 활동을 오랫동안 해온 이유가 클 것이다. 그는 김정호처럼 염세적이거나 김현식처럼 폐쇄적이지 않았고, 유재하처럼 활동이라고 해봐야 유작앨범 한 장이 고작일 정도로 아예 대중매체와의 접촉이 거의 없었던 것과 다르기 때문에 비교적 친화적일 것이다. 신해철처럼 공격적이지도 않았다.
이에 비해 김정호는 역사 속으로 사라졌고, 김현식은 빛바랜 반항의 아이콘정도로 마니아들에게만 기억될 뿐이며, 유재하음악경연대회로 유재하는 일부 뮤지션들이 존경하는 천재로만 남아있을 따름이다. 그리고 신해철은 평소 그랬듯 의료사고분쟁이란 사회적 이슈를 남겼다.

모두 싱어 송라이터이므로 심오하거나 아름답거나 고뇌에 휩싸인 시적인 가사를 먼저 인정받아야 마땅하다. 김정호의 그것은 철학에 가까웠다. 하다못해 데뷔곡 ‘이름 모를 소녀’조차 한 편의 시이고, ‘세월 그것은 바람’과 ‘인생’은 쇼펜하우어의 페시미즘과 연결된, 강요된 조건 속의 개인의 값어치는 무의미하다는 철학을 담았다.
그리고 ‘님’에서 한국적 정서와 멜로디와 결합해 절정에 이른 뒤 그는 이 노래처럼 떠나갔다.
유재하는 국내 뮤지션으로서는 처음으로 전형적인 가요의 틀에서 벗어나 정통 클래식과 재즈의 작법을 본격적으로 도입했다는 데서 새롭게 평가받아야 마땅할 것이다. ‘한국적 발라드의 선구자’라는 상투적 표현은 오히려 그의 진가를 폄훼하는 문구다.
기존의 가요적 작곡법은 ‘AABA’의 전형적인 스타일이거나 코러스(후렴, 사비) 등을 앞세운 도치법이 일반적이었다. 아무리 소울 재즈 블루스 등을 도입한다고 하더라도 거의 금과옥조였다. 가요(트로트) 등은 말할 것도 없었다.
하지만 그는 형식이 달랐으며 선법이나 대위법 등 모든 형식과 감성에서 기존의 틀을 과감하게 깨뜨렸다. 그래서 ‘사랑하기 때문에’를 단순히 발라드라고, ‘우울한 편지’를 ‘한국의 마이클 프랭스’라고 부르는 것은 고인에 대한 결례다. 뭣보다 그의 가사엔 이념이나 공격성이 없다. 슬프더라도 체념하거나 수긍하는 미덕이 존재한다. 남을 아프게 하기보다는 자신이 삭히는 순응형 희생으로 마무리하기에 남녀노소와 이념 등을 초월한 공감이 숨 쉰다.
김현식은 반항과 방황이다. 김현식 마니아들이 좋아하는 ‘빗속의 연가’는 ‘낯선 골목길 거닐다가 쓸쓸한 선술집에서 한잔 술에 그리움을 달래 보는데 바람만 불어도 흔들리는 이 내 가슴 옛사랑 못 잊어 흐느껴 우네’라는 가사다. 배보단 목에서 더 많이 우러나오는 발성에 거친 쇳소리로 마치 절규하듯 울부짖는 그의 톤과 창법은 제도에 반항하고 관습에 방황하는 그의 혼란과 외로움이 짙게 배어있다.
신해철은 매서운 독설가이자 사회적 약자의 대변인이다. 어릴 적 배운 이론과 교육이 현실과 다름에 위선으로 기득권을 선취한 이들에게 따끔한 교훈을 주저하지 않았으며 청소년과 서민에게 희망을 주고자 애썼다. 하고 싶은 말, 마땅히 해야 할 말을 할 줄 아는 그는 사이비교주와는 차원이 다른 리더십과 아우라를 뿜어냈다.
따로 떼어낼 것도 없이 김정호 유재하 김현식 신해철이 직접 쓴 곡들은 모두가 매스터피스다. 작사 작곡 편곡만큼은 신기원이다. 그들의 음악에 폭발하는 고음이나 재기 넘치는 화려한 편곡으로 대표되는 요즘 오디션 프로그램을 잣대로 들이대면 곤란하다. 음악 자체의 진실성과 뮤지션이 가진 삶의 철학에서 우러난 음악적 정서와 화법이 다르다. /osenstar@osen.co.kr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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