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미치는 줄 알았어요. 왜 다들 그렇게 잘 던져가지고…”
한국시리즈 4차전 승리를 통해 2년 연속 한국시리즈 마지막 경기 승리투수가 된 유희관(30)의 표정에선 기쁨보다 해방감이 먼저 읽혔습니다. ‘판타스틱 4’가 앞에서 기대 이상으로 호투하면서 부담감도 컸는데, 이 때문에 4차전에서 유희관의 부진을 예견한 이들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멋지게 이겨냈죠.
더스틴 니퍼트, 장원준, 마이클 보우덴과 비교된다는 부담감도 있었지만, 그보다 앞선 것은 지난해 남긴 과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의무감이었습니다. 지난해 정규시즌 18승을 올리고 한국시리즈 5차전에서도 승리를 따내 우승에 기여했지만, 포스트시즌 평균자책점 6.87로 부진했던 것이 마음에 오래 남아 있었죠.
유희관은 평소 유쾌하고 긍정적인 성격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다른 팀에 가면 선발진의 앞자리를 다툴 기량을 갖추고도 두산에서는 4선발 취급을 받는 일도 있는데, 그런 일이 있어도 그는 “괜찮다. 4선발이면 상대적으로 약한 투수와 선발 대결을 하게 되어 승수 쌓기엔 더 좋다”며 웃어넘기곤 했죠.
하지만 그런 유희관마저도 힘들어했을 만큼 포스트시즌 기간 동안 받은 상처는 컸습니다. 오프시즌 중 그가 “다음엔 정규시즌에 로테이션을 거르는 한이 있더라도 컨디션을 조절하고 체력도 비축해서 포스트시즌에 잘 던지고 싶다”고 말할 정도였죠. 그래서 벼르고 벼른 이번 한국시리즈에서 먼저 나온 투수들의 눈부신 호투로 생긴 중압감까지 이겨낸 그의 표정을 보며 큰 시험을 치르고 나온 수험생 같다는 느낌도 받았습니다.
두산은 KBO리그 역사상 가장 강력한 선발 4인방 ‘판타스틱 4’를 탄생시켰습니다. 장수 외인 니퍼트와 오랜만에 나온 외국인 선수 스카우트 성공사례 보우덴, FA로 영입된 장원준, 내부 육성으로 탄생한 유희관까지 넷은 출신성분도 모두 다릅니다. 강한 선발진을 만드는 작업이 얼마나 어려운지 보여주는 것이기도 합니다. 육성만으로도 안 되고, 외부 수혈만으로도 가능하진 않습니다. 두산도 갖은 시행착오 끝에 거둔 성공이었습니다.
분명한 것은 이들 중 가장 먼저 두산 유니폼을 입은 투수는 유희관이란 점입니다. 2009년 입단이니 니퍼트보다도 2년 빨랐죠. 두각을 나타낸 건 2013년부터지만, ‘판타스틱 4’의 시작이 유희관이라는 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지명 당시 좌완 스페셜리스트 정도의 기대치였지만, 지금은 리그를 대표하는 좌완 선발투수 중 하나로 성장했습니다. 지난해엔 양현종(KIA 타이거즈)과 5차례 선발 맞대결을 펼쳐 3승 2패로 자존심을 지키기도 했죠.
그는 ‘판타스틱 4’의 시작인 동시에 끝이기도 합니다. 이번 시리즈를 앞두고 김태형 감독은 니퍼트를 1선발로 배치하며 선발 로테이션을 지그재그로 운영하기로 했고, 2선발 자리에 장원준이 들어가 자동으로 유희관은 4선발이 됐습니다.
그러면서 그에게는 단 한 번의 기회밖에 주어지지 않게 됐습니다. 7전 4선승제 승부에서 4선발에겐 선발 등판 기회가 1경기밖에 없는 것이 일반적이기 때문입니다. 김태형 감독은 시리즈가 5차전 이상으로 흐르면 선발투수를 구원 등판시킬 수도 있다고 했지만, 유희관은 거기서도 제외되어 있었습니다. 시리즈 직전에 물었을 때도 “구원 등판에 대해선 들은 것이 없다”고 했죠. 4차전에 모든 것을 쏟아 부어 보여줘야만 했습니다.
결과는 5이닝 무실점 승리였습니다. 또한 경기 중 13명의 타자를 연속 범타 처리하기도 했을 만큼 내용도 훌륭했습니다. 이번에는 더욱 마음껏 기뻐할 수 있었고, 우승 확정 후 세리머니를 할 때도 아이언맨 복장을 하고 동료들 사이에서 당당히 ‘센터'를 차지했습니다.
‘판타스틱 4’를 결성 기준으로 보면 유희관이 그 시작입니다. 하지만 이들이 정규시즌은 물론 한국시리즈에서까지 완벽한 투구를 하며 전설로 남게 되는 과정에서는 마침표를 찍는 마지막 투수였습니다. 에이스는 니퍼트였지만, 두산 선발진이 환상의 트로이카가 아닌 ‘판타스틱 4’가 될 수 있었던 것이 유희관의 존재 덕분이라고 하면 억지일까요.
최근 4년간 올린 55승으로 그는 이혜천과 함께 두산 좌완 통산 최다승을 올린 투수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다음 시즌 첫 승이 두산의 역사를 새로 쓰는 승리가 되는 것이죠. 느린공은 그의 성장에 있어 걸림돌이 됐을 수도 있지만, 느린공이 낳은 편견까지 뛰어넘은 그는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할 만한 가치가 있는 투수가 됐습니다.
- 3편에서 계속
OSEN 두산 베어스 담당기자 nick@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