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선수들이 야구를 잘하는 것을 보니 이런 팀의 단장을 하고 있다는 것이 너무 행복합니다”
2일 마산구장에서 우승을 확정지은 뒤 세리머니가 끝난 현장. 두산 베어스의 김태룡 단장은 일부 기자들이 모여 있던 자리에서 이같이 말했습니다. ‘판타스틱 4’의 힘이 워낙 압도적이라 “지난해보다는 긴장감이 크지 않았다. 선수들이 너무 잘해줬다”고 이야기할 정도였죠.
김태형 감독 이야기가 나오자 김 단장은 “지휘자를 잘 데려온 것 같다”며 감탄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그의 말대로 야구 감독은 마에스트로(지휘자)에 비유되곤 합니다. 김 단장의 말을 듣고 나자 문득 단장은 작곡가 같다는 생각도 들더군요.
그러나 아무리 좋은 지휘자라고 해도 제대로 완성되지 않은 곡으로는 듣는 이들의 귀를 만족시키기 어렵습니다. 김태형이라는 마에스트로가 있기 이전에 김태룡이라는 좋은 작곡가가 있었던 것이죠. 지휘자를 잘 데려왔다는 말 속에는 훌륭한 전력을 꾸리기 위해 노력했던 지난 시간들에 대한 뿌듯함도 녹아있지 않았을까 생각해봅니다.
새로운 지휘자를 맞이하기 전에 곡 전체의 큰 틀을 만드는 것이 작곡가 김태룡의 임무였습니다. “(김 감독 부임 당시) 새로운 감독이 오면 선발 로테이션을 맞춰주자고 했는데, 그런 목표를 가지고 준비했다”는 것이 그의 설명입니다. 두산은 당시 FA 시장에 있던 선발투수 중 최대어인 장원준을 건져 올리며 목표를 달성했습니다. 프런트는 할 일을 했고, 남은 것은 감독의 몫이었죠. 결과도 모두가 아는 대로 해피엔딩이었습니다.
아직도 목이 마른 김 단장은 더 완벽한 곡을 원합니다. 올해 과연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이 있었다면 무엇이었냐는 질문에 그는 “모두가 알겠지만 불펜이다”라고 한 뒤 “우리가 좀 더 중점적으로 육성하면 좀 더 강한 팀이 될 것이다”라고 덧붙였습니다. 전통적으로 두산은 트레이드를 비롯한 외부 수혈보다는 내부 육성으로 전력을 다져왔는데, 이제 김 단장의 시선이 불펜을 향하고 있습니다.
불펜 이야기를 하자니 정재훈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가 없겠네요. 거의 선발만 가지고 4승을 따냈기에 공백이 크게 느껴지진 않았지만, 두산 유니폼을 입은 정재훈은 단순히 마운드 위에서만 의미를 갖는 선수가 아닙니다. 전력 면보다 심정적인 부분에서 더 아쉬움을 많이 느낄 것 같단 말에 김 단장은 “그렇다”고 동의한 뒤 “그게 가장 아쉽다. 그 친구가 여기 앉아 있으면 좋았을 텐데…”라며 한동안 말을 잇지 못하기도 했습니다.
김 단장은 정재훈의 한국시리즈 엔트리 합류가 사실상 좌절된 순간 그의 얼굴을 본 몇 안 되는 사람 중 하나입니다. 정재훈은 8월 오른팔 골절 이후 처음으로 마운드에 오른 일본 미야자키 교육리그 경기에서 우측 어깨 회전근개에 부분파열이 일어나는 부상을 당했습니다. 어깨는 과거에도 그를 괴롭혔던 부위입니다.
“그때 내가 거기 있었다”고 입을 뗀 김 단장은 “내려오자마자 어떤지 물어보니 ‘어깨에서 우두둑 소리가 났다’고 말하더라. 그때 ‘끝났구나’ 하고 생각했다. 꼭 이 무대에 서고 싶어 했는데, 본인이 가장 아쉬워했다”며 본인이 더 안타까워했습니다. 단장이 되기 전부터 함께한 시간이 길었던 선수라 아픔의 농도도 더 짙었겠지요.
평소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는 정재훈이 아쉬움을 보였다면 본인이 느낀 절망의 크기는 얼마나 컸을지 쉽게 짐작하기 어렵습니다. 김 단장도 “감정 표현이 없는 선수인데도 그날은 정말 많이 괴로워했다”고 놀라워할 정도였으니까요. 김 단장과 김 감독, 그리고 후배 선수들까지 모두가 그의 부재를 아쉬워했지만, 모자에 새기지 않았더라도 잊지 않을 정도로 마음만은 함께했습니다. 그가 두산에서 어떤 존재였는지 알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이렇게 우승이란 이벤트는 관계된 모든 이들의 만감이 교차하게 합니다. 하지만 감상에만 젖어 있을 수만은 없는 것이 바로 단장 자리입니다. 김 단장은 “우승한 건 오늘로 끝이다. 내일부터 바로 준비해야 한다. 팀을 만들기는 너무 힘들지만 무너지는 건 한 순간이다”라며 경계심을 늦추지 않았습니다. 자신이 행복한 단장이라고 말할 때 표정이 그토록 후련해보였던 건 1년 중 유일하게 행복할 수 있는 날이라서 그랬던 것 같기도 합니다.
-2편에서 계속
OSEN 두산 베어스 담당기자 조인식 nick@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