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그로’라고 들어는 봤나. ‘구르미 그린 달빛’ 속 박보검과 김유정을 악랄하게 괴롭혔던 중전을 일컬어 시청자들이 붙인 별명으로 ‘중전+어그로’의 합성어다. 이처럼 어마어마한 별명을 얻을 만큼 열연을 펼친 덕에 그 주인공, 한수연에 새삼 이목이 집중되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한수연은 지난 2006년 영화 ‘조용한 세상’으로 데뷔한 후, KBS 2TV 일일시트콤 ‘일말의 순정’과 tvN ‘일리있는 사랑’으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배우다. 청순하면서도 발랄한 매력으로 천천히 앞을 향해 걸어오던 그가 폭발적인 관심을 얻게 된 계기는 바로 얼마 전 종영한 KBS 2TV ‘구르미 그린 달빛’을 통해서다.
극중 세력가 김헌(천호진 분)의 딸 중전 김씨 역을 맡은 한수연은 뱀처럼 소름끼치고 교활한 악행으로 ‘영온커플’을 괴롭힐 뿐 아니라 나라를 차지하기 위해 자신의 아이까지 버리는 독한 면모로 많은 시청자들의 분노를 산 바 있다. 특히 청순함은 벗어던지고 악독한 중전 김씨에 몰입한 한수연의 활약이 컸다.
“초반에는 욕을 먹었는데 나중에 갈수록 욕보다는 ‘중그로’라는 애칭 같은 것도 생기고 좋아해주시니까 좋았다. ‘더 악하게 해라’, ‘더 시원하게 해라’, ‘더 괴롭혀줘라’라는 반응도 있어서 내 악행을 좋아해주시는 분들도 있구나 싶었다. 나중에 작가님이 중전의 이야기도 만들어주셔서 동정 여론도 생기고 나름 사랑받는 악녀가 된 것 같다.”
드라마 속 악역의 악행은 당하는 인물이나 보는 이들을 힘들게 하기도 하지만, 사실 가장 힘든 것은 이를 연기하는 배우 본인이다. 특히 한수연이 연기한 중전 김씨는 사극 속 인물인데다가 천호진과의 기싸움부터 출산 연기까지 더해져 몇 배의 고충을 겪어야 했다.
“제일 힘들었던 게 출산 연기였다. 기술 좋으신 분들은 어떻게 하면 더 힘들어 보이게 하시던데, 나는 온 몸에서 땀이 나고 찍고 나서 헬스 몇 시간 한 것 같은 근육통을 겪었다. 눈도 쌍커풀 수술한 것처럼 붓고 정말 리얼하게 했다. 콘셉트가 한 달 일찍 낳는 거였기 때문에 미친 듯이 힘을 줘야겠다는 생각에 세게 했고, 감독님도 지미집 카메라까지 동원하셔서 찍었는데 나간 분량은 얼마 안 됐다. 또 원래 나는 악한 기운이 별로 없는데 연기할 때는 수혈하듯 독기를 올려야 해서 힘들었다. 악역들은 워낙 많으니까 뻔한 악역은 하고 싶지 않았다. 영화 ‘블랙스완’, ‘나를 찾아줘’, ‘원초적 본능’ 속 악녀들처럼 매력적이면서 목표를 향한 대단한 야망이 있는 악역을 하고 싶었다. 누구한테 인정을 받는 것도 중요하지만 내 이상향에 도달 못하고 후진 연기 한 거 같으면 스스로가 너무 싫어진다. 내 자신과의 싸움이 많았다.”
특히 ‘구르미 그린 달빛’에서 큰 사랑을 받고 있던 세자 이영(박보검 분)과 라온(김유정 분)을 괴롭혀야 한다는 임무(?) 역시 부담스러웠던 것은 마찬가지. 라온의 따귀를 때리거나 여자임을 밝히기 위해 옷을 벗기려고 한 장면은 중전 김씨의 손꼽히는 악행 장면 중 하나이기도 하다.
“가장 미안했던 건 (김)유정이 따귀를 두 번이나 때린 거다. 심지어 따귀신이 유정이를 처음 만났을 때랑 두 번째 만났을 때였는데, 만날 때마다 때려야 하니까...유정이가 아직 애기고 볼도 얼마나 반질반질한지 슛 들어가기 전에는 볼 쓰다듬고 있다가 나중에 그걸 때려야 하니까 진짜 잔인한 직업인 것 같다. 한 번 때릴 때마다 ‘미안해’라고 하다가 나중에는 ‘다 끝나고 한번에 미안하다고 할게’라고 했다(웃음). 지금 생각하면 다 애기들이지만 프로였고 예뻤다. 예뻐하는 역할이면 얼마나 좋았을까 싶다. 애들이 다 나보다 어리고 착하니까 예뻐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친해지면 연기할 때 힘들까봐 걱정도 되고 붙는 신도 많지 않았었는데 드라마 끝나고 세부 가서 같이 재밌게 놀았다.”
‘구르미 그린 달빛’은 마지막회까지 시청률 20%를 돌파하며 올해 드라마 중에서도 두드러지는 흥행을 보인 작품이다. 때문에 드라마에 관한 모든 것과 배우들의 일거수일투족이 화젯거리로 떠올랐고, 이는 포상휴가인 세부 여행도 마찬가지. 이에 한수연이 직접 세부에서의 에피소드를 전했다.
“배우들끼리 방에서 해 뜰 때까지 대화 나누고 스피커로 MR 틀어놓고 한 곡씩 불렀다. (박)보검이부터 진영, 유정, (정)혜성까지 한 곡씩 부르면서 노래방에서처럼 놀고 룸서비스 시켜서 밥도 먹고 게임도 했다. 알고 보니 보검이가 게임왕이더라. 새로운 게임이 계속 나온다. 근데 보검이는 술을 안 마셔서 탄산수로 대신했는데, 많이 마시고 트름 못하게 하는 벌칙이었다. 유정이도 미성년자니까 탄산수 마시고 그 외에는 나랑 진영이가 많이 마셨다. 진솔한 얘기도 많이 했다. 그동안 촬영 때문에 회식이 없었는데 다 끝나고 나서 얘기를 나눌 수 있어서 좋았다.”
이번 한수연의 악역 연기에 대해 많은 이들이 호평을 보냈고 그의 이름 석 자를 제대로 인식하게 됐지만, 정작 배우 본인은 연기 변신이라기엔 원래 각인된 것이 없었다며 겸손함을 잃지 않았다. 오히려 그의 앞으로 행보를 더욱 궁금하게 만드는 당찬 각오로도 느껴졌다.
“연기 변신이라고 하기에는 원래 각인된 게 없지 않냐. 나 스스로는 예전부터 청순한 이미지에 알고 보니 숨겨진 사연이 있는 연쇄살인범이나 무언가 키를 쥔 사연 있는 인물을 연기하고 싶었었다. 사실 ‘일말의 순정’도 나한테는 변화였다. 발랄하고 푼수기 있는 역할은 처음이라 재밌게 놀면서도 원형탈모가 생길 정도로 치열하게 했다. 이번 악역도 처음이기 때문에 내 안의 기지를 포착하고 기회를 주신 감독님께 감사드린다.“
또 하나의 과제를 끝낸 한수연은 잠시 휴식을 취한 뒤 다시 달릴 예정. 이번에 워낙 강한 역할로 시청자들에게 제대로 눈도장을 찍은 만큼 성급하지만 차기작에 대해 궁금증이 향하고 있는 것. 과연 한수연은 어떤 모습으로 다시 안방극장 혹은 스크린에 복귀할까.
“나한테 어떤 작품이 올지 모르겠지만 일단 시나리오가 끌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어떤 시나리오를 받았는데 오늘은 그게 내 바이오리듬과 맞으면 하는 거다. ‘이런 게 왔으면 좋겠다’는 건 없다. 다만 이번에는 사극이었으니까 이런 악역을 현대극에서 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은 있다. 현대 악역은 좀 다를 거라고 생각한다. 또 ‘일말의 순정’ 같은 밝은 역할도 다시 하고 싶고, 사실 다 하고 싶다. 욕심이 많은 데 체력이 안 돼서 한꺼번에 많이는 못할 거 같고 순서대로 끌리는 거 할 것 같다. 내 연기 인생도 순리대로 흘러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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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최규한 기자 dreamer@osen.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