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균 8이닝 이상 책임지면서 불펜 소모 최소화
양의지의 재치 있는 리드 동반된 릴레이 호투
환상의 선발진이라는 두산 베어스의 ‘판타스틱 4’가 한국시리즈에서는 환상 그 이상이다.
두산의 김태형 감독은 한국시리즈를 앞두고 선발진 고민이 없었다. ‘판타스틱 4’를 그냥 내보내면 되기 때문이다. 어떤 순서로 나가게 할지만 결정하는 되는 상황이었는데, 이를 두고도 오래 생각하지 않았다. 더스틴 니퍼트를 1선발로 놓고, 이후 순서는 지그재그로 짰다. 그러면서 장원준, 마이클 보우덴, 유희관이 뒤를 이었다.
이들은 정규시즌 무려 70승을 합작했다. 정규시즌 5위 KIA 타이거즈의 승수와 같은 수치다. 이 중 니퍼트가 22승과 평균자책점 2.95로 두 부문 타이틀을 차지했다. 보우덴은 160탈삼진으로 리그에서 가장 많은 삼진을 잡은 투수가 됐다. 이외에 장원준과 유희관도 15승씩 올려 이들은 KBO리그 사상 최초로 전원이 15승을 따낸 선발 4인방으로 남았다.
정규시즌 우승을 차지해 긴 휴식기를 선물로 받게 되자 한국시리즈에서는 더욱 위력적인 피칭을 하고 있다. 100% 충전됐을 때 얼마나 무서워지는지 지난 시즌 보여준 니퍼트는 1차전에서 8이닝 2피안타 2볼넷 4탈삼진 무실점했다. 타선의 도움이 부족해 승리투수가 되지는 못했지만, 두산이 1차전을 내주지 않을 수 있었던 바탕에는 니퍼트의 힘 있는 투구가 있었다.
장원준도 니퍼트의 기세를 이어갔다. 2차전에서 그는 8⅔이닝 동안 볼넷을 내주지 않고 10피안타 5탈삼진 1실점했다. 왼손 중지에 물집만 생기지 않았다면 완투승도 가능했다. 중요한 고비마다 땅볼을 유도해 4개의 병살타로 NC의 공격 흐름을 끊은 것이 실점 최소화 비결이었다. 자체 청백전에도 나오지 않아 38일 만의 실전 등판이었지만 실전 감각 우려는 기우였다.
보우덴은 모든 힘을 3차전 한 번에 쏟아 부었다. 7⅔이닝을 책임진 그는 무려 136구를 던지며 3피안타 4볼넷 11탈삼진 무실점했다. 136구는 6월 30일 잠실 NC전 노히터 때 기록한 자신의 정규시즌 한 경기 최다 투구 수(139개)와 비슷했고, 11탈삼진은 한 경기 최다 탈삼진(10개, 4월 6일 잠실 NC전)보다 많은 것이었다.
이들이 합작한 이닝은 총 24⅓이닝으로 평균 8이닝이 조금 넘는다. 이들이 있어 두산은 이용찬, 이현승 외엔 불펜투수를 투입하지도 않고 3승 무패를 거뒀다. 그러면서 단 1점만 허용해 한국시리즈 기간 선발진의 평균자책점이 0.37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NC로서는 3차전에서 121개를 던진 보우덴이 8회말에 또 올라왔을 때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막막함을 느꼈을 수도 있다.
선발투수들의 압도적 투구 비결은 크게 3가지다. 긴 휴식이 준 피로 경감 효과, 그리고 치밀한 전력분석, 나머지 하나는 바로 포수 양의지의 존재다. 그는 니퍼트와 함께한 1차전에는 그의 구위를 믿고 강속구 위주의 볼 배합을 하다 중반부터 변화구를 섞어 혼란을 줬고, 보우덴이 나온 3차전에서는 초반에 변화구를 많이 던지게 하고 중반 이후 하이 패스트볼을 자주 넣었다. 두산 배터리는 NC와의 두뇌 싸움에서 완벽히 승리했다.
이제 마지막 주자 유희관만 남았다. 양의지는 3차전 직후 “내일은 (선발이) 희관이 형이라 (경기 계획을 짜는 게) 머리가 아프다”라면서도 “지금까지 빠른 볼로 잘 했으니 내일은 느린공으로도 한 번 해보겠다”는 말로 자신감을 내비쳤다. 양의지는 벌써부터 시리즈 MVP 후보로도 거론되고 있다. 투수가 시리즈 MVP를 받으려면 1경기만 가지고는 부족한데, ‘판타스틱 4’는 너무 잘 던진 탓에 오히려 한 투수가 두 번 등판할 기회를 얻기 힘들다. /nick@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