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번에 고정한 김태형 감독 믿음에 홈런으로 보답
약점으로 지적됐던 좌익수 수비도 일취월장
김재환(28, 두산 베어스)을 한국시리즈에서도 4번다운 타자로 만든 것은 결국 사령탑의 신뢰였다. 믿음과 보답의 반복 속에 두산은 붙박이 4번타자를 얻었다.
김재환은 지난 30일 잠실구장에서 열린 2016 타이어뱅크 KBO리그 한국시리즈 2차전에서 8회말 팀이 2-1로 앞선 직후 에릭 해커의 커터를 공략해 우측 담장을 넘기는 솔로홈런을 터뜨렸다. 자신이 타석에 들어설 때만 해도 1-1 동점이었지만, 해커의 폭투로 박건우가 홈에 들어온 뒤 김재환의 홈런까지 나오며 3-1로 앞선 두산은 결국 5-1로 승리했다.
김태형 감독의 믿음이 만들어낸 결과다. 김 감독은 2차전을 앞두고 1차전 3번이었던 오재일을 6번으로 내리고 민병헌을 3번으로 올렸다. 그리고 5번 양의지와 7번 닉 에반스의 자리를 바꿔 민병헌-김재환-에반스로 이어지는 클린업을 꾸렸다. 3~7번 중 바뀌지 않은 것은 4번 김재환이 유일했다. 김 감독은 “재환이만 4번에 그대로 두고 3~7번은 언제든지 바뀔 수 있다”고 이야기했다.
두산에는 큰 경기 경험이 풍부한 선수가 많지만 김재환은 포스트시즌 경험이 일천하다. 한국시리즈는 처음이며, 포스트시즌 전체로 봐도 2012 준플레이오프 한 타석에 들어가 범타로 물러난 것이 전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 감독은 좋은 타자가 즐비한 타순의 중심에 김재환을 놓았다. 타율 3할2푼5리, 37홈런 124타점이라는 압도적인 정규시즌 성적을 바탕으로 전폭적인 신뢰를 얻은 덕분이다.
1년 전만 하더라도 상상할 수 없던 미래다. 김태형 감독 부임 후 첫 시즌이던 지난해 김재환은 개막전 1루수로 나섰을 정도로 시즌 초반 중용됐다. 그러나 낯선 포지션인 1루에서 포구에 어려움을 겪던 김재환은 점차 타격에서도 힘을 잃었다. 당시 김 감독은 “타석에서 자신감 있는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며 그를 퓨처스리그로 내렸다. 9월 확대 엔트리 대상자도 아니었던 그는 팀이 우승하는 것을 멀리서 지켜봐야만 했다.
올해는 포지션을 변경해 스프링캠프부터 좌익수 위치에서 여러 선수들과 경쟁했지만, 지금과 같은 활약을 기대한 이는 없었다. 오히려 공격에서의 강점보다 포지션 변경으로 인한 수비 약점이 많이 지적됐다. 김 감독 역시 농담 삼아 “그래도 (1루에 있을 때보다) 나와의 거리가 멀리 떨어지게 되어 편할 것이다”라고 말할 정도였다.
하지만 한 번 자리를 잡은 김재환은 놀라운 속도로 홈런을 쌓아올리기 시작했다. 이제 두산 토종 타자의 단일 시즌 최고 기록 중 상당부분은 김재환의 것이 됐다. 수비에서도 일취월장하고 있다. 원래 포수 출신으로 어깨가 나쁘지 않았던 그는 이제 타구 판단이나 처리능력도 시즌 초와는 완전히 다른 선수가 됐다. 2차전 9회초 무사 1루 에릭 테임즈 타석에서 펜스에 붙으며 타구를 잡아낼 수 있었던 것은 어쩌다 일어난 우연이 아니다.
어느새 자신감도 많이 붙었다. 2차전 후 김재환은 자신의 수비에 대해 “연습 때도 집중하게 됐고, (시즌 초에 비해) 조금이나마 나아졌다는 느낌도 받고 있다”고 밝혔다. 장기인 타격 능력으로 수비 기회까지 얻었고, 수비까지 발전시키며 그는 더욱 자신의 자리를 굳히고 있다. 한 번 믿음을 얻기란 그리 어렵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잃었던 신뢰를 회복하는 건 어렵다. 그 어려운 일을 해낸 김재환이기에 지금의 자리는 더욱 탄탄해 보인다. /nick@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