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중하게 차기 사령탑을 물색하던 SK의 선택은 트레이 힐만(53)이었다. 힐만의 선임은 외견상 KBO 리그에 길이 남을 만한 역대급 경력 때문으로 보일 수 있다. 그러나 내면을 살펴보면 더 복잡하고, 더 큰 기대치가 읽힌다. 영입 과정부터 상당한 조사를 했다는 점이 이를 대변한다.
시즌 종료 후 김용희 감독과 재계약을 하지 않기로 최종 결정한 SK는 오랜 기간 새 사령탑 물색 작업을 거쳐 27일 트레이 힐만 감독의 선임을 공식 발표했다. 계약 조건은 2년 160만 달러로 역대 최고급이다.
힐만 감독은 일찌감치 지도자 코스를 밟았고 뉴욕 양키스 구단 산하 트리플A팀이 콜럼버스 감독(1999~2001), 니혼햄 감독(2003~2007), 캔자스시티 감독(2008~2010)을 역임하는 등 경력이 풍부한 지도자다. 특히 니혼햄 시절에는 2006년 일본시리즈를 제패했고 2007년에도 다시 일본시리즈에 진출하는 등 강한 인상을 남겼다. 우리보다는 외국인 감독 역사가 좀 더 쌓인 일본에서도 힐먼의 이름은 역대 최고 중 하나로 뽑힌다.
당초 국내 후보를 검토하던 SK였지만 외국인 감독으로도 시선을 돌린 끝에 힐만 감독이 최종 낙점됐다. 2007년부터 6년 연속 한국시리즈 진출이라는 대업을 이뤘던 SK는 2013년부터는 4년 연속 중위권에 머무르면서 구단 내 위기의식이 커졌다. 이에 구단에 어떠한 식으로든 변혁이 필요하고, 장기적으로 유지될 수 있는 선진 시스템을 이식해야 한다는 인식이 공감대를 얻기 시작했다.
사전 작업에서는 구단 수뇌부가 전례를 찾기 어려울 정도로 적극적인 행보를 보였다. 류준열 사장부터 구단 내부의 의견 취합은 물론 팀의 문제점과 향후 팀이 가야 할 방향을 놓고 외부의 목소리를 폭넓게 들은 것으로 알려졌다. 한 외부 관계자는 “단순한 땜질 처방이 아닌, 구단의 미래에 대해 사장이 근본적으로 접근했다”고 높은 평가를 내렸다. 그 후 외국인 감독의 아이디어가 내부에서 나왔고 이에 구단 관계자들이 아시아 야구에 밝은 지도자들을 위주로 후보군을 추렸다. 이 중 역시 가장 눈에 띄는 이름은 힐먼이었다.
민경삼 단장이 직접 나서 힐먼의 사전조사에 큰 공을 들였다. 힐만의 기본적인 스타일 파악은 물론 감독 자리를 거쳤던 니혼햄과의 연락망을 총동원했다. 당시 힐만의 야구 스타일은 물론 선수들과의 관계, 선진 시스템 도입 성과 등을 폭넓게 문의했다. SK가 처한 상황이 2003년 니혼햄과 흡사한 부분도 있었다. 연고지 이전 전후로 당시 니혼햄은 성적이 저조했고 마케팅에서는 새 시장을 개척해야 한다는 압박을 받고 있을 때였다.
니혼햄 관계자들은 여기에 모두 긍정적인 반응을 보인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 힐만은 유소년 무대에 잔뼈가 굵은 베테랑 중의 베테랑이다. 양키스 팜에서 10년 넘게 지냈고 2002년에는 텍사스의 유소년 디렉터로 일하기도 했다. 이런 힐먼은 니혼햄 육성 시스템 정비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심지어 구단 마케팅이나 운영 등에도 MLB식 시스템의 조언자가 됐던 것으로 전해졌다.
온화한 성격으로 알려진 힐만 감독은 특히 팬 서비스에 있어 전향적으로 열린 감독이다. 전통적으로 감독과 선수가 경외의 대상인 일본에서 큰 반향을 일으켰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팬 서비스 방안을 스스로 고안해 선수들에게 적극 장려하기도 했다. 이러한 힐만의 정책은 니혼햄이 홋카이도에 조기 정착하는 데 적잖은 힘을 보탰다.
힐만 감독의 이런 경력은 SK의 차기 사령탑 조건에 가장 부합하는 측면이 있었다. 힐만 감독 또한 한국행에 대해 적극적인 관심을 드러내며 협상이 급물살을 탈 수 있었다. 현역 휴스턴 벤치코치였지만 구단의 양해를 구해 면접을 봤다. 휴스턴 구단도 이런 힐먼의 행보를 흔쾌히 수락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마지막 연봉 등 세부 조율에서 다소 진통이 있을 것으로 예상됐지만 SK는 생각보다 빨리 사인을 이끌어내며 감독 영입전을 마무리했다. 유소년 및 아시아 야구의 풍부한 경험을 가지고 있는 힐먼은 SK 내부의 차기 지도자들에게도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힐만이 가진 노하우가 SK 장기적 비전에 밑거름이 된다면 절반의 성공은 따내고 들어갈 수 있다. /skullboy@osen.co.kr
[사진] 다저스 벤치코치 시절의 힐만. ⓒAFPBBNews = News1(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