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반은 무조건 체인지업’ 연마 구슬땀
김태훈-김찬호 성과, 투수 기량 전반적↑
체인지업은 오프스피드 피치의 대표적인 구종이다. 기본적으로 던지는 폼이 패스트볼 매커니즘과 유사해 어깨나 팔꿈치에 무리가 덜 가는 구종이기도 하다. 미국 유소년 지도자들이 체인지업을 먼저 가르치는 이유 중 하나다. 그 다음이 커브, 마지막 단계에서는 슬라이더를 배운다.
그러나 성적이 우선인 우리 실정에서는 가장 익히기 쉽고 실전에서 위력적인 슬라이더를 먼저 배운다. 때문에 ‘쓸 만한’ 체인지업을 던지는 고교 선수들은 그다지 많지 않다는 게 스카우트들의 공통된 이야기다. 그래서 그럴까. 어린 선수들 위주로 지난 9월 19일부터 10월 15일까지 27일간 열린 SK의 애리조나 교육리그에서도 체인지업 삼매경이 벌어졌다. 김경태 루키팀 투수코치가 강력한 의지를 가지고 체인지업 연마에 공을 들였다.
이번 교육리그에 참가한 SK 투수들에게는 강제 미션이 있었다. 전체 투구의 절반은 무조건 체인지업으로 던져야 했다. 김 코치는 “모든 선수들이 체인지업을 던지는 게 이번 캠프의 목표였다”라면서 “아무래도 경기에 나가면 선수들은 결과에 신경을 쓴다. 하지만 이번 캠프는 결과에는 신경을 쓰지 않도록 지도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체인지업을 던지다보니 효과는 더 좋게 나왔다”라고 설명했다.
가장 눈에 띈 선수는 이번 캠프 참가자 중 1군 경력이 가장 많은 좌완 김태훈이었다. 좌완으로 빠른 공을 던진다는 장점을 가지고 있는 김태훈은 그간 투심패스트볼과 슬라이더를 주무기로 하는 투수였다. 여기에 체인지업이 가미되면 좋은 짝이 될 수 있다. 김 코치는 “처음에는 포수 사인으로 체인지업을 유도했는데 효과가 가시적으로 보이니 알아서 던지더라. 자신감이 붙으니까 더 많이 던졌다. 체인지업을 던져 맞은 안타는 없었다”고 만족감을 드러냈다. 김태훈은 5경기에서 17이닝을 던지며 탈삼진 18개, 평균자책점 3.71을 기록했다.
가장 기록이 좋은 선수는 올해 퓨처스팀(2군)에서 괄목할 만한 성장세 끝에 마무리 보직까지 꿰찬 우완 김찬호였다. 9경기에서 9이닝을 던졌는데 자책점이 단 하나도 없었다. 패스트볼-슬라이더 투피치 투수인 김찬호는 원래 체인지업을 배우고 싶어 했다. 이번 캠프가 좋은 연습장이 된 셈이다. 김 코치는 “캠프 막판쯤 힘을 빼고 던지는 법을 조금씩 깨닫는 것 같았다. 각은 현저하게 차이가 있었다”고 성과를 말했다.
그 외 다른 투수들도 조금씩 발전하는 모습으로 내년을 기약했다. 팀 내 선발 최대 유망주인 이건욱은 첫 경기에서는 다소 부진했으나 그 이후로는 좋은 내용을 선보였다. 4경기에서 15이닝을 던지며 탈삼진 11개, 평균자책점 3.60을 기록했다. 원래 3루쪽을 밟고 던졌는데 이를 조금 수정하면서 커브의 방향성이 예리해졌다는 평가다. 경기운영능력, 제구력에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는 봉민호는 롱릴리프로 뛰며 8경기 17이닝에서 평균자책점 2.65로 선전했다. 팀 내에서 가장 궂은 일을 하면서도 위기관리능력까지 뽐냈다.
올해 지명자 중 유일하게 교육리그에 간 남윤성도 눈도장을 받았다. 최고 구속은 135㎞로 아직 정상치에는 못 미쳤지만 제구에서 높은 평가를 얻었다. 8이닝 동안 볼넷은 2개였다. 김 코치는 “마지막 경기가 클리블랜드 쪽의 조금 수준 높은 선수들이었는데 세 타자를 공 12개로 아주 여유롭게 잡더라. 키가 있고 제구가 되는 투수라 평균 구속이 130㎞ 후반만 돼도 좋은 승부가 가능할 것 같다”고 기대감을 드러냈다.
박세웅도 남윤성과 함께 교육리그 막판에 가장 좋아진 투수로 뽑혔다. 밸런스가 조금 흔들리던 상황이었는데 이를 수정했다. 겨울 동안 이 밸런스만 유지한다면 내년에는 한층 더 발전할 수 있을 것이라는 평가다. 145㎞ 이상의 빠른 공을 던지는 투수인 허웅은 13이닝에서 16개의 탈삼진을 기록했다. 지난해에도 교육리그에서 허웅을 본 가이 콘티 인스트럭터가 “작년에 비해 엄청나게 좋아졌다”라고 칭찬할 정도였다.
이번 애리조나 교육리그 상대는 MLB 구단 산하 싱글A급 선수들이 주축을 이뤘으나 일부 경기에서는 더블A에서 트리플A로 넘어가는 수준도 있었다. 싱글A급 선수들은 선구안이 좋지 않으니 그렇다 쳐도, 좀 더 침착한 더블A 혹은 트리플A 승격 직전의 선수들을 상대로도 자신들의 무기가 통했다는 점은 긍정적이었다. 애리조나의 체인지업이 이들의 야구 인생에도 '변화'의 계기가 될 수 있을지 주목된다. /skullboy@osen.co.kr
[사진] SK 와이번스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