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h!쎈 초점]밥 딜런 노벨상 수상 그리고 #윤동주 #K팝
OSEN 손남원 기자
발행 2016.10.14 16: 11

[OSEN=유진모의 취중한담]14일 KBS2 ‘아침이 좋다’는 최근 중국 옌볜에서 열린 고 윤동주 시 낭송대회 등을 내보내는 가운데 그의 육촌동생인 가수 윤형주를 통해 고인을 회고하고 기리는 시간을 가졌다. 윤형주는 고인의 추모곡에서 ‘고인은 바람이 이는 잎새에도 아파했다’며 일제강점기라는 참담한 시대 속에서 남다른 시상으로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시의 세계를 열며 한국은 물론 중국과 일본의 다수를 사로잡은 고인의 업적을 찬양했다.
스웨덴 한림원은 하루 전(한국시각) “위대한 미국의 음악 안에서 새로운 시적인 표현을 창조한 예술가”라며 미국의 대표적인 포크뮤지션 밥 딜런(75)을 올해의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발표했다. 한림원은 딜런의 가사를 “귀를 위한 시”라며 “놀라운 방법으로 리듬을 만들었고, 인내를 승화시키며 경이로운 사고를 보여줬다”고 각각 극찬했다.
영국 일간지 가디언은 “밥 딜런의 수상 여부는 노벨상과 관련된 가장 오래된 농담 중 하나였지만 마침내 이뤄졌다”고, AP통신은 “스웨덴 한림원이 대중음악으로 장르를 확대하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고 논평했다.

미국인의 노벨문학상 수상은 1993년 소설가 토니 모리슨 이후 23년 만의 경사다. 그보다 더 큰 의의는 대중음악인으로서의 첫수상이다. 딜런이 최근 몇 년 동안 일본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 등과 더불어 노벨문학상 수상 후보로 거론된 것은 사실이다. 싱어 송라이터로서의 활동 뿐 아니라 1994년부터 총 6권의 미술서적을 펴내는가 하면 수차례 미술 전시회도 가졌다. 또한 2004년 자서전 ‘크로니클스’(번역본 ‘바람만이 아는 대답’)가 미국 뉴욕타임스가 선정한 ‘올해 최고의 책’에 올랐고, 4년 뒤 퓰리처상을 수상하는 등 딜런은 작가로서의 기운찬 행보를 이어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목할 일은 순수작가가 아니라 싱어 송라이터로서의 진가를 인정받았다는 점이다.
딜런은 이번 수상으로 약 11억 원의 상금을 받는다. 하지만 그가 그동안 벌어들인 다양한 수입과 앞으로 그와 그의 2세가 받을 저작권료에 비교하면 턱없는 금액이다. 돈이 문제가 아니라는 의미다.
그는 1941년 미국 미네소타 덜루스에서 로버트 앨런 지머맨이란 이름으로 태어난 유태인이다. 1962년 앨범 ‘Bob Dylan’으로 데뷔하며 지금의 이름을 가진 뒤 이듬해 발표한  2집 ‘The Freewheelin' Bob Dylan’의 성공 이후 그는 미국을 대표하는 포크 혹은 컨트리록의 대명사로서 전 세계 팬들을 사로잡으며 영국 출신의 에릭 클랩튼과 비교되곤 했다.
그의 대표 히트곡은 ‘Knockin' on Heaven's Door’ ‘Blowin' in the wind’ ‘One more cup of a coffee’ ‘Mr. Tambourine Man’ ‘Like a Rolling Stone’ 등 이루 헤아릴 수 없다.
밥 딜런이라고 하면 바로 반전 저항 등의 단어와 더불어 음유시인이란 표현이 연결된다. 그는 수 주는 안 감았을 성싶은 헝클어진 머리와 꾸미지 않은 옷차림으로 연상된다. 목소리는 외모만큼이나 금방이라도 먼지가 풀풀 풍길 듯한 건조하게 갈라진 톤과 음역이다.
2집의 성공으로 CBS로부터 출연섭외를 받고 승낙했으나 방송사가 그 앨범의 방송금지 조치를 내렸다는 이유로 갑자기 출연을 취소하는가 하면 1964년엔 본격적으로 미국의 베트남전 참전에 반대하는 운동의 선봉에 서는 등 형식을 싫어하고 지나치게 의도적인 청결주의에 반대했다. 외모는 지저분했지만 뮤지션으로선 마음에 드는 음악이 아니면 절대 발표하지 않는 극도의 결벽증을 지닌 완벽주의자였다.
3절로 구성된 ‘One more cup of a coffee’의 2절이다. ‘무법자인 당신 아버지는 방랑을 일삼는 사람/ 그가 당신에게 어떻게 선택을 하는지 어떻게 칼을 던지는지 가르쳐 줄 거야/ 그가 지배하는 그의 왕국에 이방인이 들어 올 수 없어/ 떨리는 그의 목소리 음식 한 그릇을 더 달라고 말할 때/ 길을 나서기 전에 커피 한잔만 더/ 저 계곡 아래로’. 이 얼마나 냉소적이고 염세적이며 철학적인가?
딜런의 창법은 깜짝 놀랄 정도로 한국적 정서에 맞닿은 타령조이며 톤은 허무적이고 염세적이다. 그의 주특기인 기타는 두 대의 어쿠스틱이 각각 배킹과 멜로디를 내달리며 때론 라틴 스케일을 훑는다. 그가 대단한 시인이며 위대한 뮤지션이란 증거는 그 어떤 곡을 듣더라도 확인된다.
요즘 전 세계의 대중가요를 이끄는 K팝에는 이런 ‘가사’가 없다. 대중을 단숨에 사로잡기 위한 후크송 형식의 반복패턴은 나름대로 이해는 가지만 가사에 정서가 없다. 철학이나 메시지까지 바라진 않는다. 뜻도 없고, 의미도 희미한 자극적인 의성어 의태어 외래어 신조어 등이 넘쳐나며 오로지 말초신경만 자극한다.
하루키 팬들에게 딜런의 수상 소식은 불편하기 그지없을 것이다. 그가 유태인이고 미국 국적이란 사실도 어떤 계층엔 불만스러울 것이다. 하지만 글로벌 냉전해체의 시대엔 인종과 국적은 더 이상 편견과 평가의 대상이 돼선 곤란하다. 어떤 사람이 가진 이념과 개념, 신념과 신조가 중요하고, 온몸으로 몸소 실천하는 행동이 인격의 잣대다.
딜런은 노골적으로 미국 모던 포크의 시조인 우디 거스리를 존경했다. 1912년 오클라호마주 오키마에서 태어난 거스리는 2차례의 세계대전과 경제대공황을 겪은 30~40년대의 미국인들에겐 희망이었다. 그가 만든 ‘나의 조국’이란 곡이 비공식 미국 국가로 불렸던 게 그 증거다.
동시에 그는 당시 대학생들의 정신적 지주였다. 어린 시절 천재지변으로 가족을 잃고 거리의 부랑아로 성장한 그는 정치적 사회적 부조리를 비판하는 노래를 즐겨 불렀기 때문이다.
단순한 시대적 저항정신 하나만으로 딜런의 노벨상 수상을 긍정적으로 평가할 일은 아니다.  ‘Knockin' on heaven's door’ 가사가 이를 증명한다.
‘엄마, 내게서 이 배지를 떼어줘요/ 난 더 이상 그걸 달고 있을 수 없어요/ 세상은 점점 어두워져 너무 어두워서 난 아무것도 볼 수 없어요/ 난 천국의 문을 두드리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요/ 천국의 문을 두드려요/ 엄마, 땅위에 내 총을 내려놓았어요/ 난 더 이상 그들을 쏠 수 없거든요/ 저 두텁고 시커먼 구름이 내려오고 있어요’
주인공은 베트남전에 참전한 미국 병사다. ‘배지’와 ‘총’은 동격이고, ‘그들’은 베트콩이다. ‘천국의 문’은 희망 혹은 자멸이다. 전쟁의 참혹함과 비참함을, 그 명분 없는 전쟁에 내몰린 젊은이들의 아픔과 고뇌를 이렇게 간단한 몇 줄로 표현할 줄 아는 뮤지션이 얼마나 될까? 이러고도 K팝이 세계의 문화를 주도한다고 자부할 수 있을까? 이젠 가수 호칭으로 굳어진 ‘아티스트’란 표현이 낯 뜨거운 딜런의 수상소식이다./osenstar@osen.co.kr
[칼럼니스트]
<사진> 소니뮤직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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