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격수 시리즈’라고 불릴 정도로 뜨거운 관심을 모았던 김하성(넥센)과 오지환(LG)의 자존심 경쟁 1라운드는 오지환의 판정승을 끝났다. 김하성도 잘했지만 개인적 활약과 함께 팀 승리라는 가장 큰 전과물을 얻은 오지환이 웃을 수 있는 날이었다.
김하성과 오지환은 올 시즌 리그에서 가장 돋보이는 성적을 낸 유격수들이다. 수비 부담이 큰 유격수 포지션임에도 불구하고 모두 20개의 홈런을 쳤다. 김하성은 지난해 아쉽게 오르지 못한 20홈런-20도루(20홈런-28도루) 고지를 기어이 점령했다. 잠실구장을 써 장타에서는 손해를 볼 수밖에 없는 오지환은 잠실구장을 홈으로 쓰는 유격수로는 첫 20홈런을 기록하며 최고의 장타력을 뽐냈다. 타점도 78개로 개인 최다였다.
이런 두 선수가 공·수에서 보여줄 모습은 팀의 경기력과 직접적인 연관이 있었다. 어쩔 수 없는 대결구도이기도 했다. 이날 선발 라인업에서도 두 선수에 대한 양팀 벤치의 기대가 잘 묻어났다. 김하성은 3번 타순에 포진됐고, 오지환은 5번을 지켰다.
염경엽 넥센 감독은 “김하성까지가 테이블 세터라고 보면 된다”라며 상위타선과 중심타선의 연결고리 몫을 바랐다. 양상문 LG 감독은 “오지환의 타격감이 좀 더 좋아 5번에 배치했다”며 와일드카드 결정전에서의 기세가 이어지길 기디했다.
시작은 둘 다 괜찮았다. 오지환은 1회 1-0으로 앞선 2사 1루에서 헛스윙 2개로 2S에 몰렸으나 이후 맥그레거의 빠른 공을 잘 골라내며 볼넷을 골라 나갔다. 김하성은 1회 1사 1루 첫 타석에서 소사의 슬라이더를 받아쳐 우익수 앞에 떨어지는 안타로 염 감독이 기대하던 연결고리 몫을 했다. 다만 이어진 1사 만루에서 김민성의 병살타로 득점에는 실패했다.
오지환은 아찔한 상황이 있었다. 4회 1사 1,2루에서 이택근의 타구가 오지환의 머리 높이로 날아왔다. 글러브를 침착하게 갖다 댔으면 직선타로 처리할 수도 있었지만 마지막 순간 이를 정확히 포착하지 못하고 좌전안타로 연결됐다. 하지만 와일드카드 결정전 1차전과 같은 악몽은 없었다. 소사가 박동원을 3루수 파울 플라이로, 임병욱을 헛스윙 삼진으로 잡아내며 오지환의 어깨를 가볍게 했다.
LG는 5회 김용의의 2타점 적시타, 박용택의 우전 적시타로 3점을 더 보태 4-0으로 앞서 나갔다. 이런 와중에서도 김하성은 분전했다. 5회 2사 주자 없는 상황에서 맞이한 세 번째 타석에서 소사의 154㎞의 빠른 공을 받아쳐 깨끗한 중전안타를 날렸다. 그러나 후속타 불발로 득점에 실패한 것에 이어 6회 선두 오지환의 중전안타성 타구 때는 잘 따라가 잡고도 마지막에 볼을 흘리며 아쉬움을 남겼다.
양쪽 유격수 모두 아쉬운 수비를 한 차례씩 한 셈이 됐다. 결국 넥센은 이어진 무사 2,3루에서 김상수의 폭투, 정상호의 희생플라이 때 1점씩을 더 내주며 0-6으로 끌려갔다. 김하성은 불운도 겪었다. 0-6으로 뒤진 7회 1사 2루에서 박용택의 유격수 정면 타구가 불규칙 바운드로 튀며 자신의 키를 넘겨 적시타로 이어졌다. 어쩔 도리가 없는, 운까지 외면한 순간이었다. 김하성은 이날 4타수 2안타 1볼넷을 기록하고도 웃지 못했고 오지환은 2타수 1안타 2볼넷으로 총 3출루, 양상문 감독의 기대에 부응했다. /skullboy@osen.co.kr
[사진] 고척=손용호 기자 /spjj@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