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h!쎈 탐구]'구르미' 박보검♥김유정, 역사왜곡도 비껴가는 애정학개론
OSEN 손남원 기자
발행 2016.10.11 07: 59

[OSEN=유진모의 취중한담]KBS2 월화드라마 ‘구르미 그린 달빛’(이하 ‘구르미’)이 이제 종영을 향한 막바지 잰걸음에 한창이다. 일주일 늦게 시작된 또 다른 시대극 MBC ‘달의 연인-보보경심 려’나 한 달여 늦게 경쟁구도에 뛰어든 SBS ‘캐리어를 끄는 여자’가 언감생심 넘볼 수 없는 20%대에 가까운 시청률을 굳이 거론하지 않더라도 거의 신드롬에 가까운 돌풍인 것은 사실이다.
영화 못지않은 스케일의 제작시스템인지라 요즘 드라마의 성공과 실패의 요인은 매우 복합적이다. ‘구르미’ 역시 마찬가지. 무능력하고 패권의 정통성이 부족한 왕(김승수)의 세자로 태어나 대리청정에 들어간 영(박보검)과 정치적 실세인 영의정 안동 김 씨 헌(천호진)의 생존을 위한 주도권전쟁과 이 사이에서 정권전복을 통한 인권해방을 노리는, 내시부 상선으로 가장한 백운회 수장 한상익(장광)의 3각구도가 큰 틀로써 내내 팽팽한 긴장감을 형성해준다.
그러나 이건 외적인 요인. 결국 주시청층인 젊은 시청자들의 애간장을 태우고 화면 속으로 빨려들게 만드는 결정적 마무리펀치는 조하연(채수빈)-영-홍라온(김유정)-김윤성(진영) 등이 얽히고설킨 가슴시린 애정학개론이다.

웹툰을 원작으로 한 탓에 유치함이 넘쳐난다 데 이의를 제기할 ‘어른’은 많지 않을 것이다. 드라마틱한 시퀀스를 위한 역사왜곡도 옥에 티로 지적받을 만하다. 물론 세자와 내시로 위장한 역적의 딸과의 사랑 또한 현실과 동떨어져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드라마가 사랑이란 강력한 청룡언월도를 휘두를 수 있는 원동력은 네 명의 주인공을 비롯해 세자의 호위무사로 가장한 김병연 역의 곽동연이란 젊은 배우들의 외면하기 힘든 매력 덕일 것이다.
더불어 이들의 사랑은 매우 아파서 아름답고, 이뤄질 수 없어서 가슴에 쉽게 와 닿는다. 생물학, 혹은 진화생물학에 따르면 각 종에서 수많은 수컷이 총각으로 죽는다. 반면 무리의 우두머리 혹은 세력자들은 자신의 유전자를 무한정 퍼뜨리고 원 없이 살다 간다. 암컷 역시 자신의 유전자 보전을 위해 힘 센 수컷과 교미하고자 하면서도 동시에 새끼들을 먹여 살릴 부유한 수컷과 혼인관계를 맺고자 하는 이중적 속성을 동시에 내포하고 있다. 사랑이 있는 이유도, 사랑이 어려운 이유도 이런 자연의 섭리 때문이라고 식자들은 떠들어댄다.
라온은 이 씨 정권을 무너뜨리려 했던 역적 우두머리 홍경래의 딸이다. 계속해서 정권의 추격을 받고 있었기에 삼놈이란 이름의 남자로 살다 어찌어찌하여 내시가 됐다. 영은 자유분방한 세자로 저잣거리에 나갔다 삼놈을 알게 됐고, 다시 궁에서 만난 묘한 인연에 이끌려 남다른 우정을 쌓다가 그가 여자란 사실을 알고 본격적으로 사랑을 시작한다.
윤성은 헌의 손자이자 영의 죽마고우다. 세자를 무너뜨리려는 헌과 달리 윤성은 영을 돕고자 애쓴다. 그는 영보다 빨리 라온의 정체를 알고 그녀를 흠모한다. 그러나 어느새 영과 라온은 누구도 끼어들 수 없는 연인관계가 됐다.
하연은 조정에서 그나마 안동 김 씨 세력을 견제할 수 있을 만한 인맥과 능력을 지닌 예조판서 조만형(이대연)의 딸이다. 영의 여동생 명은공주(정혜성)의 벗이기도 한 그녀는 저잣거리에서 우연히 마주친 영에게 첫눈에 반한 뒤 명은과의 만남을 핑계 삼아 궁에 출입하다가 세자빈으로 간택돼 신분이 바뀌어  입궁한다.
라온은 윤성의 도움으로 도성을 빠져나와 은신처에 몸을 숨긴다. 그녀의 정체가 궁 전체에 알려지자 헌은 역도의 딸과 밀접한 관계였던 것을 빌미로 영을 폐위할 계략을 짠다. 윤성은 라온을 자주 찾아 안부를 묻지만 라온은 번번이 눈물을 흘리며 제발 더 이상 찾지 말라 애원한다. 그 이유는 “그러면 안 되는데 그 누군가 생각이 나서”다.
윤성은 “울 테면 실컷 울라”고 그녀를 위무한다. 자신도 “내 마음에 품은 그녀가 언젠간 내게로 올 것이라고 숱하게 치졸한 생각을 품는다”고 처절하게 고백하며.
하연은 자신을 소 닭 보듯 하는 영에게 “저하의 마음속에 든 여인이 부럽다”면서도 하지만 서로의 이익을 위한 계약으로서의 결혼의 정당성을 역설하고 영은 이를 수락한다. 영은 하연에게 “다 좋은데 절대 여기에만큼은 오지 말라”고 라온의 여성차림을 처음 본 자신만의 공간을 지키려 한다. 하연도 영도 이 얼마나 아픈 사랑이고, 절대 이뤄질 수 없는 사랑이며, 무조건적인 희생의 사랑인가!
아픔은 윤성이 더 클 수도 있다. 하연은 마음은 못 얻었지만 세자빈이 됐다. 정식부부로서 잠자리도 같이 할 것이고, 밥도 같이 먹을 것이며, 그렇게 2세를 낳아 같이 키울 것이다. 그깟 마음이야 손에 잡히지 않는 것이라고 자위하며 구중궁궐의 은밀하고 화려한 생활을 즐기면 그뿐일 것이다. 집안도 세자빈의, 나아가 중전의 집안이 아닌가?
영도 마찬가지다. 사실 그와 라온의 사랑은 비현실을 떠나 유치하기 그지없다. 말투만 고어체지 요즘 막 사랑에 빠진 고등학생들도 하기 힘들 정도로 닭살이 돋는 소꿉놀이로 일관한다. 그러나 묘사만 안 됐을 뿐 그들은 사랑에 빠진 남녀가 할 ‘짓’은 이미 다 했다. 더구나 영은 세자다. 세자빈도 있다. 마음만 먹으면 못 취할 여자가 없다. 헌을 이기고 저하에서 전하로 가는 ‘ㄴ’자만 얻어내면 이미 나이 먹은 그가 천민의 딸 하나에 목을 맬 이유는 사라진다.
하지만 윤성은 한때 둘도 없었던 친구와 정적이 된 것도 가슴 아픈데 그와 연적이 됐고, 매번 그에게 지고 있다. 안동 김 씨가 세력은 유지할 수 있지만 윤성이 왕이 될 순 없는 게 현실이다. 라온은 그가 손만 뻗으면 쉽사리 취할 수 있는 천민의 여식이지만 이 아름다운 청년은 사랑을 하고자 한다. 그러나 그 ‘천박한 계집’은 자신을 전혀 안중에도 안 두고 있다. 그저 손에 쥘 수 없는 달과 별을 향한 외사랑일 따름이다.
우정도 사랑이다. 말수가 가장 적은 위치지만 가장 아플 사람은 병연이 아닐까? 그는 영도 윤성도 사랑한다. 하지만 지금은 10년 전처럼 셋이 허물없이 친구로 어울릴 수 없는 상황이다. 영이 윤성을 멀리하는 것도 불편하고, 자신이 영을 속여야 하는 운명은 하늘이 원망스러울 정도다. 결국 검술훈련을 하며 우정을 쌓은 그 검을 영의 목에 겨눠야하는 게 그가 태어난 존재의 이유다.
1970년대 수많은 청춘들의 가슴을 아리게 만든 대중가요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처럼 작가들은 슬픈 사랑을 선호한다. 셰익스피어의 대표적 사랑의 비극 ‘로미오와 줄리엣’은 교과서다. 이 작품이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에서 제외된 이유는 마지막에 두 가정이 화해했기 때문이지만 결국 로미오와 줄리엣은 죽었다. 최소한 사랑에서만큼은 처절한 비극이다. 생물학적 관점에서 ‘사후세계에서 두 사람이 행복하게 잘 살았다’라는 뜬구름 잡는 얘긴 헛소리다.
‘구르미’엔 이 ‘로미오와 줄리엣’의 고전적 구도로 시작해 온갖 통속애정소설을 관통하는 플롯이 엿보인다. 비극은 인간이 가진 모든 욕심과 아쉬움을 눈물이란 배설의 카타르시스 장치를 통해 초월하게 만드는 기능을 한다.
진화생물학은 인간뿐만 아니라 거의 모든 동물에게서 동성애와 자위행위가 존재함을 보고한다. ‘불륜’과 오르가슴 역시 인간의 전유물이 아니다. 그럼에도 여전히 이성간의 플라토닉 러브는 인간만의 특권이다.
그렇게 인간에게만 이성간의 사랑이란 감정이 존재하고 그게 예술과 공존하는 이유의 결론 역시 유전자 복제다. 인간은 분열생식할 수 없기에 성 파트너가 필요하고, 생존의 방식과 문명에 의한 영향과 더불어 자연의 선물로 사랑이란 감정이 생긴 것은 아닐까? 인간의 모든 예술과 문화가 가장 소중하고 고귀한 가치관이라 떠들어대는 것은 결국 사랑이다. 그게 가족애든, 인류애든, 성욕이 뒤따르는 이성애든 귀결점은 종족보존이다.
‘구르미’의 사랑이 이렇게 아픈 것은 대다수의 사람들의 사랑은 현실은 아름다울지라도 미래가 안 보이고, 결국 배우자로 남는 사람과 사랑으로 맺어지기 힘든 게 현실이라는 비유법이 아닐까? 영과 하연 같은. 영은 라온을 사랑하지만 결국 하연을 통해 2세를 낳을 것이다. 그게 진화생물학과 애정학의 괴리고, ‘구르미’가 ‘별에서 온 그대’나 ‘태양의 후예’의 내용이나 시청률과 다른 원인이다./osenstar@osen.co.kr
[칼럼니스트]
<사진> '구르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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