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h!쎈 레터]21살 부산영화제, 잔치집 또는 초상집(21th BIFF)
OSEN 성지연 기자
발행 2016.10.11 08: 03

부산국제영화제(BIFF)를 설명할 때 항상 뒤에 따라붙는 말이 있었다. '영화인의 축제'다. 10월이 되면 영화를 사랑하는 시네필이 부산으로 몰려들었고 영화란 바다에 빠져 축제같은 하루하루를 보냈다는 의미에서다. 
이해관계에 있는 영화계 관계자들 또한 영화제 기간 만큼은 서로의 어깨를 두드리며 함께 건배했다. 해운대 포장마차촌에서 탕웨이가 소주를 마시는 장면을 목격하는 행운을 얻기도 했고 운이 좋다면 얼큰하게 취한 유명 감독이 술값을 대신 내주기도 했다. 10월의 부산은 '축제'였다.   
하지만 제21회 부산국제영화제는 '페스티벌'과는 거리가 멀었다. '다이빙벨' 상영 이후 주최측은 2년여간 지부산시와 갈등을 겪었고 그 결과는 고스란히 영화제에 반영됐다. 개막 전날 태풍이 왔고 야외무대가 무너졌다. 감독과 배우가 영화제 불참을 선언했으며 김영란법이 시행되자 저녁 술자리 약속도 모두 취소됐다. 부산의 밤은 더이상 길지 않았다.

# 강수연 집행위원장-김동호 이사장 체제, 그리고 '서포트 미스터 리' 
강수연 집행위원장과 김동호 이사장 체제로 처음 출범한 올해 부산국제영화제는 '다이빙 벨' 상영 후 지난 2년여를 끌고 온 부산시와 갈등이 고스란히 여파로 남았다.
우선 배우와 감독들의 참여가 눈에 띄게 줄었다. 한국영화감독조합, 한국영화프로듀서조합, 한국영화촬영감독조합, 전국영화산업노조, 독립영화협회 등 5개 영화단체가 부산국제영화제 보이콧을 선언했고 그중 독립영화협회만 유일하게 보이콧을 철회한 상태에서 출품을 거부한 작품이 줄을 이었다. 그 중 흥행작 '부산행'과 '터널'의 출품거부는 타격이 컸다. 배우와 감독의 불참은 대중의 관심도 하락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부산시와 갈등을 빚기 전과 비교했을 때 올해 영화제의 예산 또한 25%가량 줄었다. 주최 측은 줄어든 예산 탓에 각종 부대 행사를 생략했고 부족한 예산으로 행사를 진행한 탓에 영화제 기간 크고 작은 잡음이 있었다.
영화제 기간에도 영화의전당에는 주최 측이 부산시와 여전히 갈등을 겪고 있음을 충분히 짐작하게 하는 여러 단체의 움직임이 보이기도 했다. 그중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서포트 비프, 서포트 미스터 리'(SUPPORT BIFF, SUPPORT MR. LEE)라고 적힌 스티커를 나눠주는 이벤트다. 
해당 스티커는 봉준호 감독 및 류승완·변영주 감독 등 다양한 영화인들이 소속된 부산영화제 지키기 범영화인 비상대책위원회가 직접 제작한 것으로 '다이빙벨' 상영 후 부산시에 업무상 횡령혐의로 고발된 이용관 전 집행위원장의 명예회복과 영화제의 자율성 보장을 촉구하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 김영란법 그 후, 그 많던 술자리는 어디에   
올해 부산국제영화제의 분위기를 더욱 조용하게 만든 이유 중 하나는 최근 가장 뜨거운 주목을 받고 있는 '김영란법'이 큰 몫을 했다. 김영란 법(부정청탁 및 금품 등의 수수 금지에 관한 법) 시행으로 대형 배급사 및 영화인들이 영화제 기간 열던 다양한 파티가 모두 사라졌다. 
영화제 기간, 부산에서 기자들의 취재경쟁이 더욱 치열했던 이유는 공식일정 외에도 'OO의 밤' 'OO 영화의 밤'등 배급사 및 제작사, 엔터테인먼트 관계자가 자체적으로 기자들과의 교류를 위해 마련하는 파티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김영란법 첫 시행 이후 너도나도 눈치를 보는 분위기에서 '눈치싸움'은 부산으로 이어졌고 커피를 한 잔 마시는 것도 조심스러워 하는 분위기까지 조성됐다.
더군다나 올해 태풍 차바의 영향으로 야외무대가 모두 파손되 오픈 토크 행사를 영화의전당 두레라움에서 진행한 가운데 개막식 당일 밤, 수많은 인파로 줄을 서며 기다리기까지 했던 해운대 포차 촌은 사람 한 명 찾아볼 수 없었다.
그러다 보니 부산의 밤거리를 활보하며 기삿거리를 찾던 기자들로 넘쳐났고 이를 마주하기 민망한 관계자들은 꼭꼭 숨어버렸다. 오랜시간 영화인들과 함께 일했던 뭇 선배 기자는 "김영란법 하나에 커피 한 잔도 조심스러워 한다"며 섭섭함을 토로하기도 했다. 삼삼오오 모여 술잔을 기울이는 기자들의 생각은 모두 달랐다. 
어떤 이들은 "몸은 피곤해도 1년에 한 번 있는 특별한 자리가 모두 사라지니 당혹스럽다. 관계자들과 교류가 끊기니 취재가 힘들다"며 "올해 영화제를 처음 방문한 후배들의 경우 당장에 힘들지 않은가"라고 토로했다.  
반면 비교적 젊은 연령층의 기자들은 김영란법의 긍정적 기능에 무게를 두며 "지금은 모두 조심스럽지만,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자리가 잡힐 거로 생각한다"며 "술자리 혹은 파티에서 취재원을 만나는 게 그동안 힘들었다. 다른 방법도 얼마든지 있다"고 힘줘 말했다. 
마지막으로 그는 "모두에게 저녁이 있는 삶이 생긴 것 같아 개인적으로 기쁘다"고 덧붙였다.
# BIFF, 그래도 희망은 있다
지난 5일, 개막 전날 도착한 해운대 비프빌리지에는 그동안 영화제 측이 세워놓은 화려한 야외무대는 온데간데없고 태풍이 휩쓸고 간 흔적만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열심히 만들어 놓은 야외무대가 태풍 한 방에 처참하게 무너진 모습이 꼭 지금의 부산사태를 보는 것 같아 더욱 서글픈 느낌이다. 
하지만 희망은 있다. 지난 10일, 태풍이 휩쓸고 간 부산을 등지고 서울로 향하는 광안대교에서 올려다 본 하늘은 눈이 부시게 새파랗고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날씨를 자랑했다. 태풍이 지나면 맑고 쾌청한 날씨가 온다. 
올해 부산의 내·외부적인 변화는 영화계 전반에 축제가 아닌 자성의 목소리를 내게 했고 부산국제영화제의 의미를 진지하게 생각해볼 계기를 만들었다. 그간 스타와 화제 몰이에 급급했던 주최 측과 미디어 또한 영화제 자체에 무게를 두는 모습 또한 의미 있는 부분이다.
지독한 성장통을 겪고 있는 21살 부산국제영화제를 응원한다. 더욱 성숙해진 모습으로 돌아올 22살 부산국제영화제의 힘찬 발걸음 또한 기대해 본다. /sjy0401@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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