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밀한 준비와 완벽한 실현이었다.
김기태 KIA 감독은 10일 잠실구장에서 열린 LG와의 와일드카드 결정전에 앞서 공개한 선발라인업에서 눈에 띠는 대목은 바로 테이블세터진이었다. 시즌 막판 안치홍을 1번타자로 기용했지만 김선빈을 내세웠고 브렛 필을 2번에 앉힌 것이다.
필을 2번에 내세운 이유는 허프에게 유일하게 멀티안타(6타수 2안타)를 터트렸기 때문이다. 더욱이 2번에 있으면 보다 많은 타석에 들어설 수 있다는 점도 계산했다. 김기태 감독은 "앞에 있으면 더 많은 타격을 할 수 있지 않느냐. 원래 1번타자로 내보내려고 생각했지만 김선빈이 낫다고 최종 판단했다"고 말했다.
필이 6번 타순에서 해결 능력이 여의치 않다는 점도 감안했다. 아무래도 필이 타석에 들어서면 루상에 나지완과 이범호가 있는 경우에는 상대투수들이 도루 걱정 없이 브렛 필을 상대로 변화구 위주의 피칭을 한다는 점도 계산한 것으로 보인다.
강한 2번을 선택하며 1차전의 승부수를 던졌다. 결국 해결사가 아닌 찬스메이커로 나서는 필이 중심타선에 얼마나 많은 밥상을 차려줄 수 있는 지 1차전의 변수였다. 결과는 필이 완벽한 응답을 하며 해피엔딩으로 이어졌다. 4회 2득점의 물꼬를 연 우중간 안타, 6회 추가득점이 이끈 우익수 옆 2루타로 공격의 일공신노릇을 했다.
타자들은 허프의 공략에 성공했다. 바깥쪽 볼을 의도적으로 노리는 타격을 했다. 필의 2안타는 모두 바깥쪽 볼을 밀어친 것이었고 나지완의 2루타도 마찬가지였다. 허프의 빠른 볼과 체인지업은 난공불락이었지만 하나만 노리는 작전으로 4점을 뽑았다. 물론 상대 유격수 실책으로 두 점을 거져 얻었지만 기회를 잡는 것 자체가 공략에 성공했기 때문이었다.
서동욱이 아닌 젊은 노수광을 9번으로 내세운 것도 승리의 비결이었다. 노수광은 빠른 발을 이용해 우중간을 가르는 타구를 잡아내는 등 안정된 수비력을 자랑했다. 8회에는 선두타자로 나서 허프를 상대로 중전안타를 쳐냈고 결정적인 쐐기득점주자가 되었다. 첫 포스트시즌 경기에 출전하고도 긴장하지 않고 차분한 플레이를 했다.
또 한명은 포수 한승택이었다. 만원관중이 운집한 가운데 첫 포스트시즌 경기에 포수 마스크를 썼다. 시즌은 이홍구와 백용환이 마스크를 썼지만 백용환의 부상으로 빠졌다. 게다가 이홍구는 컨디션이 여의치 않다고 보고 엔트레에서 뺐다. 경험이 있는 이성우를 쓰지 않고 젊은 한승택에게 맡겼다. 수비가 탄탄하기 때문이었다. 한승택 역시 헥터와 호흡을 맞추며 흔들림 없이 첫 가을 경기를 무난하게 소화했다.
김기태 감독은 타순과 포지션까지 최적의 조합을 찾기 위해 고민을 거듭했다. 경기전 "오늘 아침이 참 길더라"라고 말했다. 새벽에 일어나 오랜 시간 이날 경기를 놓고 생각을 했다는 의미였다. 이런 감독의 준비를 그라운드에서 완벽하게 실현한 선수들의 힘도 컸다. 댓가는 5년만에 찾아온 가을야구에서 달콤한 4-2 승리였다. /sunny@osen.co.kr
[사진] 잠실=민경훈 기자 rumi@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