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치 힐(36·LA 다저스)은 올 시즌 리그 최고의 ‘반전’으로 뽑힌다. 2005년 메이저리그(MLB) 데뷔 이후 두 자릿수 승수가 단 한 번(2007년 11승)에 그치며 ‘저니맨’ 신세를 면치 못했던 힐은 올 시즌 20경기에서 12승5패 평균자책점 2.12의 대활약을 펼쳤다.
가을 대권 도전에 나선 LA 다저스가 트레이드로 ‘모셔갔다’는 표현이 어울렸다. 비결은 마법의 커브였다. ‘스탯캐스트’ 시스템에 따르면, 리치 힐의 올 시즌 커브 구사 비율은 전체 투구의 49.5%에 이르렀다. 이는 2007년 시스템이 도입된 이후 MLB 역사상 가장 높은 비율이었다. 70마일 중반대에 형성되는 커브는 다양한 로케이션과 낙폭으로 상대 타자들의 약점을 파고들었다. 여기에 사이드암 변형 투구폼까지 가미하며 승승장구했다.
그런 힐의 커브는 포스트시즌에서도 마법을 부리는 듯 했다. 힐은 10일(이하 한국시간) 미 워싱턴 DC의 내셔널스 파크에서 열린 워싱턴과의 내셔널리그 디비전시리즈 2차전에 선발 등판해 초반에 호투했다. 역시 커브가 마법을 부렸다. 여기에 커브를 노리고 있으면 좌우로 꽉찬 90마일 초반대 패스트볼로 상대의 허를 찔렀다. 3회까지만 7개의 탈삼진을 잡았는데, 이는 다저스 프랜차이즈 역사상 포스트시즌 최고 기록이었다.
그러나 커브의 마법이 풀리자 평범한 투수가 됐다. 힐의 주무기가 커브임을 알고 철저히 분석을 하고 들어온 워싱턴은 타순이 한 바퀴 돌자 힐의 커브가 눈에 익은 듯 했다. 0-2로 뒤진 4회에 사사구가 빌미를 제공했다. 선두 머피가 볼넷을 골랐고 2사 후 에스피노자가 몸에 맞는 공으로 출루했다. 여기서 2회 1사 만루서 병살타를 친 로바톤이 힐의 3구째 73마일(117.5㎞) 커브를 받아쳐 좌측 담장을 넘겼다. 커브가 높게 들어왔고 로바톤은 두 번 당하지 않았다.
힐은 5회에도 흔들렸다. 워싱턴 방망이에 자신감이 붙었다. 선두 터너가 역시 커브를 공략해 중전안타로 포문을 다시 열었다. 터너의 2루 도루에 이어 하퍼가 좌전안타로 무사 1,3루를 만들었다. 워스가 내야 뜬공으로 물러났지만 1사 1,3루에서 머피가 힐의 커브를 다시 받아쳐 깔끔한 중전안타로 1점을 더 냈다. 결국 다저스는 82개의 공을 던진 힐을 강판시킬 수밖에 없었다. 4⅓이닝 6피안타(1피홈런) 3사사구 7탈삼진 4실점의 성적이었다. 결국 팀도 중반의 힘싸움에서 진 것을 만회하지 못하고 2-5로 졌다.
워싱턴에 대한 개인적인 악연도 씻지 못했다. 힐은 지난해 워싱턴에서 시즌을 시작했다. 마이너리그 계약이었다. 그런데 6월까지 단 한 번도 MLB 콜업이 없자 자신이 가지고 있던 옵트아웃 조항을 행사해 팀에서 나왔다. 이후 독립리그에서 뛰다 보스턴에 입단했고 오클랜드를 거쳐 다저스 유니폼을 입었다. 옵트아웃 이후 워싱턴과의 첫 대면에서 평소보다 더 강한 투지를 불태웠지만 결과는 좋지 않았다. /skullboy@osen.co.kr
[사진] ⓒAFPBBNews = News1(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