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우의 SK랩북] 전병두와 SK, 그 마지막 1년의 기록
OSEN 김태우 기자
발행 2016.10.08 13: 15

“사실 재기 확률이 그렇게 높은 것은 아니다. 그래도 아직 선수가 포기하지 않았다. 또한 성실한 재활 태도로 후배들에게 모범이 된다. 재활 선수들이나 강화의 어린 선수들이 전병두를 보며 많은 것을 배운다. 무엇보다 전병두가 팀에 한 공헌을 생각해야 한다. 전병두니까 가능한 결정이었다”
지난해 11월 말, SK가 제출한 2016년 보류선수명단에는 전병두(32)의 이름이 끼어있었다. SK 왕조 시절 ‘벌떼 마운드’의 대명사로 통했던 전병두는 2011년 말 왼 어깨 회전근 수술을 받은 이후 단 한 번도 마운드에 오르지 못했다. 상태가 좋아지려고 하면 꼭 탈이 났고, 다시 원점으로 되돌아가기만 수 차례였다. 그 와중에 극상근 재건수술까지 받으며 어깨는 점점 더 만신창이가 되어가고 있었다.
“전병두니까 가능한 결정이었다”는 한 구단 관계자의 말처럼, 다른 선수였다면 일찌감치 방출 리스트에 오르고도 남았다. 4년을 기다린 만큼 ‘할 만큼은 했다’라고 항변하면 뭐라 할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러나 SK는 전병두에게 한 번 더 기회를 주기로 했다. 구단은 당시 “재기를 하든, 은퇴를 하든 올해가 마지막이 시험대가 될 것”이라고 했다. 그 마지막 1년에는 재기를 향한 전병두의 마지막 열정, 그리고 그를 지켜보는 구단의 기대와 좌절이 공존했다.

모두를 기대하게 한 대만 전지훈련
보류선수명단에 포함된 전병두의 이름이 다시 화제가 된 것은 지난 2월 있었던 SK 퓨처스팀(2군)의 대만전지훈련이었다. 당시 전병두는 이 명단에 포함돼 대만으로 함께 떠났다. 보통 이런 경우는 한국에 남아 재활을 계속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럼에도 전병두가 대만에 간 것은 “따뜻한 곳에서 재활을 하라”는 구단의 배려였다. 실제 전병두는 다른 선수들과 완벽한 별도의 일정을 소화하며 전지훈련을 보냈다. 이는 코칭스태프의 배려였다.
당시 김경기 SK 퓨처스팀 감독은 “분명 가능성이 높은 것은 아니다. 그러나 어쨌든 전병두가 다시 한 번 마운드에 설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우리가 할 일”이라고 말했다. 트레이너는 물론 전병두의 재활을 오랜 기간 함께 하고 지켜본 김경태 SK 루키팀 투수코치도 짬짬이 힘을 보탰다. 동료들도 숨죽여 전병두의 재활을 지켜봤다. 전병두가 기구를 만질 때는 주위가 조용했다. 얼씬도 하지 않았다.
회전근 부상으로 어깨의 가동 범위가 현격하게 좁아진 전병두의 폼은 엉거주춤했다. 롱토스조차도 힘겨워보였다. 145㎞ 이상의 강속구를 던지던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가기 힘들다는 것은 그 폼이 말해주고 있었다. 곳곳에서 탄식이 나왔다. 김경기 감독은 전병두에 대한 질문에는 말을 잘 잇지 못했다. 김경태 코치는 사석에서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고, 평소 활발한 성격인 제춘모 코치도 전병두에 대한 이야기에는 농담기가 싹 사라졌다.
그런 전병두는 3월 3일 올해 들어 처음으로 하프피칭을 했다. 특이할 만한 사안은 포수를 앉혀 놨다는 것이다. 부상 이후 전병두가 포수를 앉혀 놓고 투구를 한 것은 이날이 처음이었다. 다른 선수들도 기자에게 물을 정도로 대만 캠프에서는 큰 화제가 됐다. 피칭을 마친 뒤 전병두는 “하프피칭 단계가 이렇게까지 온 것은 처음”이라는 김경태 코치의 말에 “그랬나요”라고 반문했다. 5년이라는 긴 시간은 이처럼 사람의 기억력까지 시험하고 있었다.
전병두는 대만에서 수염을 덥수룩하게 길렀다. 재활의 ‘도인’ 같았다. 이유를 묻자 전병두는 “면도기를 안 가져왔다”라고 진지하게(?) 답했다. 팀 동료들이 웃음보를 터뜨렸다. 그러나 그 웃음 이상으로 나아가지는 못했다. 안쓰러움은 선수단 전원이 공유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이 힘든 시간을 왜 5년 동안이나 감내하고 있는 것일까. 전병두는 이 질문에 “글쎄요”라고 입을 떼더니 이렇게 말했다. “그냥, 야구는 제가 해야 할 것이니까요”.
D-DAY는 가을, 떨치지 못한 단어 ‘좌절’
대만에 다녀온 뒤 전병두는 강화 SK 퓨처스파크에서 차근차근 단계를 밟아나가기 시작했다. 통증이 다시 생기면 이는 ‘은퇴’로 연결될 수 있는 만큼 모든 관계자들이 신중했다. 복귀 시점은 아예 여름 이후로 맞췄다. 그렇게 평지에서의 모든 피칭 프로그램을 마치고 5월부터는 마운드 위에 다시 섰다. 80%의 힘으로, 30개씩을 던졌다. 포수의 위치로 거리를 조정하면서 지나치게 힘이 들어가는 것을 막았다.
최창호 재활코치는 물론, 고윤형 SK 루키팀(3군) 컨디셔닝코치가 전병두를 헌신적으로 돌봤다. 선수의 의지만큼, 어떻게든 전병두를 재기시키겠다는 코치들의 의지도 강했다. 김경태 코치도 “수술 이후 팔각도는 예전보다 내려왔다. 하지만 대만 캠프 당시보다는 확실히 많이 나아졌다. 이제 구속도 130㎞ 정도는 나온다”라고 미소를 지었다. 이대로 계속 가면, 언젠가는 복귀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이 강화를 감쌌다. 모두가 희망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전병두는 6월 3일 처음으로 라이브피칭을 했다. 타자들을 세워놓고 공을 던질 정도로 상태가 어느 정도 회복됐다는 것이다. 분위기를 바꿔주고자 하는 목적도 있었다. 그 후 다른 선수들보다는 일정의 여유를 두고 라이브피칭을 했다. 6월 16일 세 번째 라이브피칭에서는 25구를 던졌다. 최창호 코치는 “생각했던 것보다는 괜찮다. 지금은 변화구 위주로 던지고 있지만 전반적으로 양호하다. 계속 좋아질 것이라는 기대는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역시 쉽지 않은 재활이었다. 실전 단계로 들어가면서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 통증이 계속 있었다. 미세한 통증은 이겨내고 나아가야 하는데, 워낙 부상의 정도가 깊다보니 중간중간 멈춤 사인이 자주 났다. 전병두는 “무리하지는 않고 있다. 관리를 잘 해주신다”라면서도 “계속 통증이 있다”라고 솔직하게 답했다. 지긋지긋한 통증 때문일까, 아니면 다시 한 번 난관을 확인한 탓일까. 조금 밝아지는 듯했던 얼굴에는 다시 어둠이 찾아오고 있었다.
전병두는 그 후 루키팀 연습 경기에 몇 차례 나갔다. 밖으로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구단의 관심은 컸다. 연습경기라고 해도 전병두가 다시 실전에 나설 수 있다는 것 자체가 화제였다. 그러나 성적은 좋지 않았다. 경기 결과는 차치하고, 컨디션의 오름세가 예상보다는 더뎠다. 어느 날은 120㎞ 후반대, 어느 날은 130㎞ 초반대가 나왔다. 여기에 한 번 던지면 통증은 세금처럼 계속 찾아왔다. 전병두의 투구 내용에, 강화에서는 환희와 좌절이 공존하고 있었다.
결심, 그리고 마지막 동행
퓨처스리그 일정 소화 시점으로 봤던 8월 중순까지 전병두의 상태는 쉬이 호전되지 않았다. 김경기 감독은 “이제는 1군이 아닌, 한 번이라도 마운드에 올라가는 것을 목표로 해야 할 것 같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진상봉 육성팀장도 “좀 더 지켜봐야 할 것 같다”고 했다. 선수도, 구단도 포기하지는 않았지만 8월부터 초조함이 강화를 엄습하기 시작한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그렇게 8월 말이 되자, 좀처럼 나오지 않았던 ‘포기’라는 단어가 현실화되기 시작했다.
SK는 당시 전병두의 복귀에 맞춰 특별한 ‘이벤트’를 준비 중이었다. 전병두의 재활 과정을 취재하고, 영상을 통해 팬들에게 선보일 예정이었다. 그러나 그 ‘복귀’를 염두에 두고 시작한 이 과정은, 시간이 갈수록 ‘은퇴’로 포커스가 바뀌었다. 모든 관계자들의 안타까움 속에, 결국 전병두는 9월 초 모든 것을 내려놓겠다는 결심을 했다. 9월 7일, 전병두는 구단 관계자를 만나 “선수 생활을 그만하겠다”라고 공식적인 의사를 전달했다.
아쉬움 속에 SK도 마지막 배려를 준비했다. 8일 인천SK행복드림구장에서 열릴 예정인 삼성과의 시즌 최종전에 전병두를 선발 출격시키기로 한 것이다. 삼성의 양해를 구해 한 타자만 상대하기로 했다. 구단 관계자는 “마지막 상황이 어떻게 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현장의 동의가 필요했다. 김용희 감독께서 흔쾌히 수락해 은퇴 경기가 성사될 수 있었다”고 했다. 성대한 은퇴 경기가 준비됐다. 담당팀 직원들이 야근을 밥 먹듯이 할 정도로 심혈을 기울였다.
팬들의 관심이 높아지는 가운데, 전병두는 이제 자신의 프로 마지막 경기를 준비한다. 오랜 기간 재활을 했지만, 후회는 없다고 말하는 전병두다. 전병두는 은퇴경기를 앞두고 구단 공식 영상을 통해 “너무 오래간만에 등판하는 거라 잠이 올지 잘 모르겠다”라고 웃으면서 “너무 오래 걸렸다. 다행히 구단에서 배려를 해줘 한 번 등판하게 됐다. 예전 같은 투구는 아니더라도 최선을 다해 던지겠다”고 각오를 다졌다.
오랜 시간을 인고하며 끝까지 최선을 다한 선수, 그 선수를 잊지 않고 기다린 팬, 그리고 그 선수에 헌신적인 노력을 다한 코칭스태프가 있었기에 가능한 은퇴경기이기도 했다. 선수도 선수지만, 5년 동안 전병두를 바라보며 마지막까지 포기하지 않은 관계자들에게도 ‘보상’이 될 법한 은퇴경기다. 이제 짧게는 1년, 길게는 5년의 세월이 마침표를 찍으려 한다. 아주 이상적으로 끝나지는 않았지만, 감동의 깊이는 해치지 않을 것이다. /SK 담당기자 skullboy@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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