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h! 시네마]‘미스 페레그린’과 팀 버튼이 잘 나가는 이유
OSEN 손남원 기자
발행 2016.10.04 08: 35

[OSEN=유진모의 취중한담]‘부산행’ ‘밀정’ 등으로 이어진 한국영화 흥행질주를 ‘아수라’가 이어받는 듯하더니 팀 버튼 감독의 ‘미스 페레그린과 이상한 아이들의 집’이 뒷심을 발휘하며 흥행판도에 변수로 떠올랐다.
버튼의 이름값에 비춰 어느 정도 예고는 됐던 가능성이었다. 일부 버튼의 노쇠현상에 대한 우려와 실망의 목소리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대체로 재미와 의의에서 찬사의 물결이 대세다. 이 특별한 감독이 본토는 물론 우리나라에서도 사랑받는 이유는 뭣일까? ‘미스 페레그린~’은 버튼의 작품 중 어떤 층위의 얼마나 재미있는 영화일까?
이를 파헤치기 위해선 먼저 그의 초기작품이지만 컬트의 교과서로 평가받는 ‘유령수업’(1988)이 필수코스다. 이 영화는 후에 ‘크리스마스 악몽’ ‘유령신부’ 등의 기초가 되는 스톱모션 애니메이션부터 호화로우면서도 그로테스크한 색감과 공간의 세트와 특수효과 등 기술적인 면만 따져도 단연 걸작이다. 그러나 그 정도 수준이었다면 두고두고 회자되진 않을 것이다.

호러의 걸작 ‘디 아더스’에게 영감을 줬을 것으로 예상되는 죽은 자와 산 자의 공존과 공포의 대상의 역전 소재가 먼저다.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난 젊은 유령부부가 새로 이사 온 다른 가족으로부터 자신의 신혼집을 지키고자 고군분투하지만 번번이 실패하는 가운데 오히려 산 자를 두려워한다는 설정은 독특하다.
이는 ‘가위손’으로 한층 업그레이드된다. 또한 ‘미스 페레그린~’으로까지 당연히 이어진다. 변종 아이들의 초능력은 우성인자가 아닌 열성인자 탓이다. ‘가위손’의 주인공 역시 무서운 가위손과 그것이 발휘하는 특별한 능력을 콤플렉스로 여긴 탓에 오랫동안 외진 곳에서 칩거생활을 해왔다. 아이들도 그래서 마을에서 떨어진 집안에서 타임루프에 의해 매번 똑같은 이틀을 살아간다.
우리나라에서 한때 병신이란 말은 욕이었고, 더 나아가 금기어였다. 사전에 엄연히 있는 이 단어를 장애인은 물론 자신보다 ‘지위’가 낮은 이들에게 놀림감으로 사용하는 일이 잦았기 때문이다. 장애인 역시 차별과 비하의 의미가 엿보인다며 한때 장애우로 대체됐지만 그 말 자체가 차별이라며 장애인으로 회귀돼 사용 중이다.
이런 오만에서 비롯된 편견은 동서고금을 관통해왔고 현재도 엄연히 존재한다. 버튼은 게이 레즈비언 등으로 굳이 분류하는 것조차도 거부할 정도로 정상과 비정상으로 나누는 것을 병적으로 싫어하는 걸로 유명하다. 이토록 그는 비주류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지대하고, 그래서 비극에 대해 따뜻한 시선을 지녔다. 더불어 기괴함 속의 독특함을 존중하고, 상치되거나 대척점에 선 존재와 개념들에 대한 공존을 추구한다. 그래서 죽은 자와 산 자의 반대적 시각이란 역발상을 즐길지도 모른다.
아이들의 무한하게 반복되는 칩거생활은 ‘정상적’인 사람들이 가둔 수감생활에 다름 아니다. 아이들이 자신들의 눈을 파먹으려는 또 다른 변종(뮤턴트) 할로게스트들을 이기기 위한 결정적 무기를 갖추기 위해 수중에 들어가고, 할로게스트들과 싸우는 공간이 놀이공원이라는 점 역시 세상이 그들을 제약하는 공간의 한계를 비꼰다. 더불어 아이들이 할로게스트를 볼 수 없고, 그래서 놀이공원에서 할로게스트들과 싸우는 게 사람들의 눈에 이상하게 비치는 것은 세상이 그들을 바라보는 편견이다.
일각에선 버튼이 많이 늙었고, 그런 점이 영화에 다분히 반영된다는 평을 내놓는다. 그건 아마도 ‘혹성탈출’(2001)부터 시작됐을 것이다. 그다운 위트와 비꼬기가 절정이었던 ‘화성침공’(1996)과는 사뭇 달랐다. 1968년 공개된 원작의 아우라가 워낙 컸다고 하더라도 버튼이었기에 다수가 기대했지만 평판은 그렇지 못했다.
물론 유명 감독으로서 흥행을 충분히 고려할 수밖에 없었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그랬다. 세기가 변해서일까? 한 가지 확실한 건 그가 세기가 바뀌면서 따뜻해졌다는 점이다.
예전의 그의 영화에선 음울하면서도 재치가 흘렀고, 잔인하면서도 극악무도하진 않았다. 그건 그가 비극을 절망으로만 보지 않는 따뜻할지도 모를 시선과 사람이나 주류보단 그 외의 존재에 대해 애정을 갖는 괴팍할지도 모를 취향에 바탕을 둔다.
그런 색채가 이젠 대놓고 푸근해졌다. ‘빅 피쉬’(2003)에선 더 이상 B급이나 판타지에 집착하지 않고 대신 ‘따뜻한 동화는 그저 동화일 뿐이니 속아 달라’는 식의 회유적 화법을 구사했고, ‘빅 아이즈’(2014)에선 아예 ‘예술은 상술’이라며 인간사의 날것을 그려냈다.
‘미스 페레그린~’은 이 모든 변화와 변주의 타협점이 될 듯하다. 자신만의 언어체계를 화학구조로 사용하면서도 적당한 상업성과의 타협점을 찾는 가운데 ‘동화(신화)를 잃지 말라’는 그만의 이데올로기를 지킨다. 단, 아이들과 할로게스트들과의 대결은 전형적인 할리우드식 프로타고니스트(주도인물)와 안타고니스트(대항근, 즉 주인공의 대척점의 인물)의 도식이란 게 옥에 티다./osenstar@osen.co.kr
[칼럼니스트]
<사진> 20세기폭스코리아 제공

Copyright ⓒ OSEN.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