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 대대적 투자에도 9년 연속 가을야구 탈락
팀 위해 헌신한 선수들도 말 아끼며 고개 숙여
"할 말이 없다. 지금 무슨 말을 하겠나".
지난 2일 대전 한화생명이글스파크. 넥센과 홈경기를 앞두고 한화 김성근 감독은 빠듯한 일정 탓에 취재진과 인터뷰를 갖지 않았다. 마침 한화그룹 영상 촬영을 위해 덕아웃에 나타난 주장 정근우에게 시선이 쏠렸다. 한화 관계자는 "오늘 인터뷰는 주장이 대신 하겠다"고 했지만 정근우는 완곡하게 사양했다.
그는 "지금 우리 팀 상황을 보라. 인터뷰할 상황도 아니고, 내가 그럴 위치도 아닌 것 같다"며 말을 아꼈다. 사람 좋은 정근우는 취재진을 외면하지 않은 채 몇 마디 더 나누고 라커룸으로 돌아갔지만 무거운 마음을 숨길 수 없었다. 이미 포스트시즌 탈락이 확정된 마당에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었다.
정근우뿐만이 아니다. 한화 구단 통산 최다안타·타점, 시즌 최다타점, KBO리그 역대 시즌 최다출루 등 기록 행진을 이어가고 있는 간판스타 김태균도 "팀 성적이 안 좋은데 개인 기록에 대해 무슨 말을 하겠나. 지금은 개인 기록을 세웠다고 어떻다고 말할 때가 아니다"라며 팀 성적에 안타까운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두 선수뿐만 아니라 한화의 대부분 선수들이 올 시즌 내내 말을 아꼈다. 크고 작은 개인 기록들이 있어도 경기가 지는 날에는 그냥 묻혔다. 팀 성적 앞에서 무의미하게만 흘러간 것이다. 한 젊은 선수는 "올해 팀 성적이 계속 안 좋았다. 다들 열심히 하는데도 결과가 안 좋으니 인터뷰도 눈치가 보이더라"고 고충을 털어놓았다.
비록 한화는 대대적인 투자에도 9년 연속 포스트시즌 진출 실패란 쓰디쓴 성적표를 받았지만 선수들의 노력과 투혼은 인정받아 마땅하다. 타팀의 감독들은 "한화 선수들은 정말 대단하다. 경기 시간도 어느 팀보다 길고, 연습량도 가장 많은데 버티고 있다. 김태균·정근우·이용규 등 모범이 되는 선수들이 많다. FA 계약 가치를 보여준 선수들이다"고 입 모아 칭찬했다.
올 시즌 한화는 에스밀 로저스를 제외하면 선발로 나온 16명의 투수들이 모두 불펜으로 구원 투입됐다. 시즌 내내 뚜렷한 보직 없이 선발-구원을 오가며 리그 최다 115번의 연투를 기록했다. 야수들은 타격이 부진한 날에는 경기 후 야밤의 단체 특타가 일상이었다. 수비 실수가 나오는 날에는 '특수'도 있었다. 경기가 없는 월요일 휴식 일에도 한화 야수들은 늘 대전 홈구장을 찾아 배트를 휘둘렀다. 늦은 밤 휴대 전화로 전해지는 훈련명단 메시지는 선수들에게 있어 극심한 스트레스였다.
한 관계자는 "한화 선수들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도 정말 열심히 했다. 눈물겨울 정도였다. 몸이 여기저기 안 좋아도 통증을 참아가며 뛰는 선수들이 다수였다. 시즌 내내 힘든 상황이 계속 됐지만 선수들은 흔들리지 않고 뭉쳐 여기까지 왔다. 가을야구로 고생한 걸 보상받길 바랐는데…"라며 안타까워했다.
포스트시즌 탈락이 확정된 2일 넥센전을 마친 뒤에도 한화는 8명의 선수들이 남아 야간 특타를 소화했다. 일상이 된 나머지 훈련에 익숙해진 것일까. 몇몇 선수들은 해탈한 듯 웃음을 띄어가며 훈련했다. 이 선수들에게 누가 돌을 던질까. 9년 연속 포스트시즌 탈락에도 불구하고 한화 선수들의 땀과 노력의 헌신은 높이 평가받아야 마땅하다. 책임은 선수들이 질 게 아니다. /waw@osen.co.kr
[사진] 대전=곽영래 기자 youngrae@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