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h! 시네마] ‘설리:허드슨강의기적’, 위기가 피해자를 소비하는 법
OSEN 라효진 기자
발행 2016.09.30 10: 06

수많은 재난들이 누구도 짐작하지 못했거나 알고도 당할 수밖에 없는 방식으로 인류를 덮쳤다. 이는 국가라는 안전망의 발명으로 재난의 책임이 분산된 후에도 마찬가지였다. 자연은 정말로 어찌 할 도리가 없는 일들을 만들어 인간의 수명을 단축시키곤 했다.
이어진 기술의 발전은 인간의 육체를 무한히 확장했지만, 동시에 재난의 범위까지 넓혔다. 반나절이면 서울과 부산을 왕복할 수 있는 시대가 열렸으나 이를 가능케 한 비행기와 고속철도가 항상 위험을 안고 달리는 존재인 것처럼 말이다.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의 신작 ‘설리 : 허드슨강의 기적’ 속 실화는 이 같은 기술의 흐름이 인류를 종말로 이끌 뿐이라는 폴 비릴리오의 생각을 증명하는 듯 보인다. 이 영화는 지난 2009년 버드 스트라이크(항공기와 조류가 충돌하는 현상)로 엔진 두 개를 모두 잃고 추락할 위기에 빠진 항공기가 허드슨강에 불시착했던 사건을 다루고 있다.

다행히 탑승객 전원이 생존했지만, 기장 체슬리 설렌버거(톰 행크스 분, 이하 설리)은 사고의 책임을 묻는 자리에 나서야 했다. 청문회에서는 그가 순간적 기지로 수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살린 영웅이자 피해자라는 사실은 무시된 채, 오로지 이 사건의 책임자라는 점만이 강조된다. 조사관들은 설리의 허드슨강 비상 착수를 정해진 매뉴얼과 배치되는 오판으로 상정하고, 그의 행동이 초래했을지 모르는 끔찍한 현실을 설리 앞에 들이민다. 오지도 않았고 와서도 안 될 상황을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통해 반복적으로 마주하니, 설리로서는 직업적 자부심과 스스로에 대한 믿음에 숫제 회의감이 들 수밖에 없는 노릇이다.
언론은 정확히 이와 반대의 태도를 취한다. 회항이 아닌 비상착수를 선택한 설리의 판단을 칭송하는 것을 넘어 설리 그 자체를 숭배의 대상으로 만든다. 아직 언론에 일말의 신뢰가 남아 있는 덕에, 이를 보고 듣는 이들 역시 설리를 만고의 영웅으로 대접한다. 위기를 막 벗어난 개인에 불과한 설리는 이 거대하고 상반된 두 조류의 정 가운데서 떠내려갈 수도, 그대로 머물러 있을 수도 없는 입장이다. 자신을 자랑스러워하거나 위로할 새도 없이 사고의 책임자로서 심판대에 올랐고, 전 세계가 주목하는 거물이 됐다. 그럴수록 설리는 고독하다. 아무도 설리의 내면에 눈을 돌리지 않는다.
기계와 자연이 절묘하게 손을 잡고 만든 이 현대적 위기는 단 한 사람만을 집요하게 소비한다. 인류의 시간이 개인 따위는 고려하지 않고 속도를 내는 와중에 홀로 멈춰 있는 것만 같은 설리의 혼란은 재난을 만났을 때보다 더한 공포다. 영화 ‘터널’에서도 비슷한 광경이 목격된다. 무너진 터널 안에 갇힌 이정수(하정우 분)는 생존에의 의지를 불태우다가 결국은 스스로를 포기해버릴 만큼 극한의 혼란을 경험한다. 끝내 모두에게 포기를 당한 후의 망연자실함도 있다. 그러나 터널 외부는 이정수의 심경에 관심이 없다. 생존 기록 수립이라는 이슈를 위해 그가 버텨내길 바라는 쪽이 있고, 터널 공사 진척을 위해 그를 가해자로 만들어 버리려는 쪽이 있을 뿐이다.
JTBC ‘청춘시대’의 강이나(류화영 분)가 처한 상황도 그렇다. 자신이 탄 배가 침몰하는 바람에 바다에 가라앉을 뻔했다가 살아난 강이나는 사고의 트라우마와 살아남았다는 죄책감 등 혼란을 껴안고 산다. 남자들을 유혹해 쉽게 살아가려는 그의 태도는 산다는 것에 미련이 없어질 만큼 격해진 내적 갈등의 발현이다. 같은 사고로 딸을 잃은 오종규(최덕문 분)는 강이나에게 접근해 뭐든 자식의 흔적을 찾아내려 한다. 정확히 말하면 딸의 죽음을 강이나 탓으로 돌리고 싶었을 터다. 그러나 피해자인 강이나에게는 이 모든 것이 공포다.
이처럼 연약한 개인의 어깨에 재난의 짐을 얹는 것은 사회가 가장 쉽게 위기를 흘려보낼 수 있는 방식이다. 그러나 우리는 세월호 참사라는 위기를 통해 이 짐을 결코 사회가 분담해주지 않는다는 쓴 현실을 학습했다. 수잔 손택의 비판처럼 사회는 타인의 고통을 스펙터클로 소비해 버리는 데 그치고, 사람들은 거대한 재난 앞에서 겸손을 잃으며 본질 찾기에 실패하게 된다. ‘설리 : 허드슨강의 기적’이 경고하는 것은 바로 이 지점이다. 영화 속 설리가 겪는 혼란과 이를 극복해 나가는 과정은 무질서를 조장해 재난 발발의 핵심을 은폐하고 수습을 더디게 하는 무서운 시도들에 경종을 울린다.
그러나 ‘설리 : 허드슨강의 기적’에는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의 날이 무뎌졌다는 인상도 남는다. 감독이 골수 공화당원이라는 점은 익히 알려져 있지만, 그의 작품 세계에서 노골적인 보수 성향은 드러난 적 없었다. FBI 창설자인 J. 에드가 후버의 동성애적 성향을 다룬 ‘제이, 에드가’에서조차 그의 담담함은 외려 눈물을 솟게 하는 감동으로 다가왔다. 허나 이번에는 특유의 사실적 묘사 가운데서도 드러내놓고 설리에 대한 존중을 요구한다. 애초 설리의 영웅적 면모를 드러내며 극을 시작했다면 이러한 대목들이 어색하게 다가오지는 않았을 터다. 자신이 옳았음을 스스로 증명할 수밖에 없는 설리의 고독함보다는 감정 과잉으로 보이는 통쾌함이 영화를 황급히 마무리하며 어쩐지 석연찮은 감정을 남긴다. 28일 개봉. /bestsurplus@osen.co.kr
[사진] ‘설리 : 허드슨강의 기적’ 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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