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숫자는 솔직하다] KBO, 최고 강속구 킬러는 누구?
OSEN 김태우 기자
발행 2016.09.25 05: 55

야구가 발전하면서 여러 가지 변화구가 나왔지만 여전히 타자들이 가장 치기 힘든 공은 빠른 공이다. 기본적으로 대처할 시간이 짧기 때문이다. 선천적으로는 이 공을 칠 수 없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다만 야구 선수들은 후천적인 훈련과 노력을 통해 받아칠 수 있을 뿐이다.
시속 145㎞의 빠른 공을 언제든지 던질 수 있는 투수가 여전히 팬들에게 큰 ‘로망’이 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돌려 이야기하면, 이 시속 145㎞ 이상의 빠른 공을 잘 공략하는 타자는 그만큼의 큰 무기를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아무리 변화구 비중이 많은 투수라고 하더라도 빠른 공 비율은 일정 수준 이상이 될 수밖에 없고, 이런 타자들은 시작부터 끝까지 기복 없이 강점을 가질 가능성을 내재한다.
그렇다면 KBO 리그에서 흔히 강속구로 분류되는 145㎞ 이상의 빠른 공을 가장 잘 치는 타자는 누구였을까. KBO 공식기록업체인 ‘스포츠투아이’의 통계에 따르면, 22일까지 145㎞ 이상의 공을 20번 이상 인플레이시킨 선수 중 타율이 가장 높은 이는 올 시즌 최고의 활약을 선보이고 있는 KIA의 베테랑 3루수 이범호였다. 이범호는 145㎞ 이상의 공에 타율 4할7푼7리(44타수 21안타)를 기록했다. 방망이가 나가면 거의 절반은 안타로 만들어냈다는 것이다.

이범호의 괴력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이범호는 4할 이상의 타율을 기록한 총 13명의 선수 중 가장 많은 홈런(3개)을 때려냈다. 여기에 2루타도 5방이나 된다. 21개의 안타 중 8개(38.1%)가 장타라는 의미다. 23일까지 이범호는 올 시즌 142개의 안타 중 장타 비율이 38% 정도다. 다른 타자들이 까다로워 하는 145㎞ 이상의 빠른 공을 상대로도 거의 비슷한 장타 비율을 가지고 있는 리그 유일의 선수다.
그 뒤를 따라 이천웅(LG·0.464), 김성현(SK·0.459), 김재호(두산·0.435), 김태균(한화·0.429), 로사리오(한화·0.417), 이재원(SK·0.415), 고종욱(넥센·0.415), 채은성(LG·405)이 따르고 있다. 박재상(SK), 조영훈(NC), 김상현 이진영(이상 kt)은 4할의 타율을 기록하고 있는 선수들이다. 4할 이상이라면 패스트볼 킬러라고 할 만하다.
장타율은 이범호가 0.795로 가장 높았다. 이어 이재원이 홈런 2개와 6개의 2루타를 기록해 0.707의 장타율로 2위를 기록했다. 출루율과 장타율의 합인 OPS에서 1.110을 상회하는 선수는 이범호(1.295), 이재원(1.174), 조영훈(1.135), 김상현(1.103)까지 4명에 불과했다. 공교롭게도 올 시즌 OPS 상위 10위 내 선수 중 145㎞ 순위에서도 10위 내에 포함된 선수는 김태균 딱 한 명이었다. 차별화된 능력을 가지고 있음을 넌지시 이야기해주는 통계다.
그렇다면 빠른 공을 잘 칠 수 있는 비결은 무엇일까. 타격 코치들은 “기본적으로 빠른 공을 잘 치려면 좋은 시력과 배트 스피드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선천적으로 어느 정도 타고나는 부분임은 분명하다. 실제 몇몇 선수들의 경우 빠른 공에 배트가 따라가지 못하는 경우들이 종종 있다. 경기 후반부 약점이 되기도 한다.
스윙 폼의 크고 작음은 큰 영향을 미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폼이 큰 선수도, 작은 선수도 고루 이 순위에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나이와도 무관한 듯 보인다. 연령대 분포가 비교적 고르다. 대신 자신이 가진 특유의 스윙 궤도에서도 차이가 날 수 있다. 이천웅의 경우 빠른 공을 쫓아가기에 괜찮은 스윙 궤도를 가지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김태균은 리그에서 자신의 스윙 매커니즘을 가장 안정적으로 가져가는 타자다. 공이 느리든 빠르든, 어떤 변화구든 대처 능력서 그렇게 큰 차이가 나지 않는 결정적인 이유다.
후천적으로는 노림수와 과감한 결단력이 현장에서 뽑는 주요 요소 중 하나다. 채은성의 경우는 전체적으로 공격적인 스윙을 하는 편이다. 노리는 공이 들어오면 과감하게 휘두른다는 것이다. 실제 채은성은 145㎞ 이상의 공에 대해 10개의 삼진을 당하기도 했지만, 17개의 안타를 때리며 본전 이상의 승부를 했다. 어차피 공이 빠를수록 안타를 칠 확률은 낮아지고, 삼진을 당할 확률은 높아진다. 과감한 승부는 분명 필요하다.
‘킬러 대장’인 이범호의 말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이범호는 산전수전을 다 겪은 베테랑답게 노림수가 워낙 좋고 타석에서 담대한 선수다. 만루포 사나이라는 별명이 이를 잘 말해준다. 이범호는 “타석에 들어갈 때 확률적으로 지금이 빠른 공 타이밍이라고 생각할 때, 그리고 그 확률이 50% 이상이라고 생각하면 과감하게 배트를 돌리는 편이다. 헛스윙이 되더라도 과감하게 돌리는 것이 좋은 결과로 이어졌다고 생각한다”고 돌아봤다.
이범호가 패스트볼에 강하다는 것은 모든 구단들이 잘 알고 있지만, 이범호의 수 싸움에 이겨내지 못하는 것이다. 이 부문 타율 3위면서도 타수(37타수) 대비 삼진(4개)은 적은 편인 김성현도 비슷한 스타일이다. 손지환 SK 타격코치는 “김성현의 경우는 워낙 노림수가 좋은 편이다. 리그에서 가장 빠른 공을 던지는 헨리 소사(LG)의 155㎞ 공도 노리고 있으면 바로 방망이가 나가는 스타일”이라고 평가했다.
선천적 재능과 노력에 후천적인 결단력, 그리고 풍부한 경험 혹은 적절한 주위의 조언이 모였을 때 가장 공략 확률이 높다는 결론에 이를 수 있다. 빠른 공은 타자들에게 가장 두려운 존재라면, 그 두려움을 이겨내는 용기와 지혜가 ‘패스트볼 킬러’의 명예를 만들어주고 있을지 모를 일이다. /skullboy@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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