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리할 때 눈에 띄지 않지만 꼭 필요한 존재가 소금이다. 삼성에도 그런 선수가 있다. ‘프렌차이저’ 이시준(33, 삼성)이다.
2006년 신인드래프트 전체 6순위로 입단한 이시준은 11년째 삼성에서만 뛰고 있다. 프로 초창기 시절만 해도 이시준은 깡마른 체격으로 큰 주목을 얻지 못했다. 팀내 이상민, 강혁이라는 걸출한 선배들이 있어 출전시간도 많지 않았다. 이시준은 짧은 시간을 뛰더라도 상대편을 끈질기게 물고 늘어지는 악착같은 수비로 인정받기 시작했다. 빠른 스피드를 활용한 속공은 트레이드마크였다. 이시준이 자리를 잡으면서 삼성은 ‘가드왕국’이란 칭호를 얻기 시작했다.
이시준은 “그 때는 정말 누가 들어와도 마음 편하게 했다. 이상민, 강혁 형이랑 잘 맞았다. 내가 막내라 형들을 믿고 의지했다. 가드 두 명이 압박수비를 해도 한 명만 잘하면 제대로 수비가 될 수 없다. 그 때는 내 뒤에서 형들이 다같이 수비를 해주니까 스틸을 많이 했다. 슛 찬스를 봐주는 패스타이밍도 워낙 좋았다”며 추억에 젖었다.
가드왕국 삼성에서 이상민, 주희정, 김승현 등 한국을 대표하는 선수들이 유니폼을 입었다. 그 바통을 김태술이 넘겨받고 있다. 이시준은 “난 정말 운이 좋은 선수다. 한 팀에만 있었지만 정말 한국에서 내로라하는 가드들이 다 거쳐 갔다. 옆에서 보고 느낀 게 많았다”고 털어놨다.
10년이란 세월이 흘러 이시준은 어느덧 고참이 됐다. 함께 코트를 누비던 이상민 감독과 이규섭 코치는 지도자가 됐다. 이제 이시준은 후배들을 이끌어야 하는 베테랑이다. 삼성의 젊은 가드들이 자리를 잡지 못하는 것도 신경이 쓰이는 부분이다.
이시준은 “후배들이 다 능력은 있는 선수들이다. 다만 경험이 부족하다. 코칭스태프에게 믿음을 주지 못했다. 코트에 들어가면 위축돼 기량이 평상시 반도 안 나온다. 자신 있는 부분에 믿음을 줘야 한다”고 조언했다.
농구는 단체운동이다. 화려하게 득점을 잘하는 선수도 중요하지만, 뒤에서 궂은일을 묵묵히 할 조연도 필요하다. 2006년 데뷔한 선수 중 현역은 전정규, 이현민, 주태수, 이시준, 조성민, 한정원이 남았다. 조성민을 제외하면 화려한 스타는 아니다.
감독의 가려운 곳을 잘 긁는 이시준은 어느덧 치열한 프로무대서 10년을 버텼다. 그는 “신인은 출전시간이 중요한데 그런 부분을 부각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난 데뷔 때는 정말 죽기 살기로 수비했다. 그거 아니면 뛸 기회가 없었다”며 현실적인 조언을 했다. 확실한 특기가 있어야 프로농구서 자리를 잡을 수 있다는 의미다.
후배들도 이시준을 믿고 의지하고 있다. 삼성 선수들은 일본과 싱가포르를 거치며 2주 동안 진행되는 해외훈련에 지쳐있다. 이시준은 후배들을 이끌고 싱가포르 야경을 구경하기도 했다. 이시준은 평소에도 여행과 독서를 즐기는 지성파다. 선수라고 너무 운동에만 매달리면 안 된다는 것이 지론이다. 이시준은 삼성에서 박학다식한 박사로 통한다.
이시준은 “사실 (이상민) 감독님이나 김승현 형 같은 가드는 타고나야 한다. (김)태술이도 조언해줄 것이 없을 정도로 잘한다. 가드는 타고나야 한다는 말이 맞는 것 같다. 다만 팀에서 모두가 주인공일 수는 없다. 누군가는 소금 같은 조력자 역할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강산이 한 번 변해도 한 결 같이 삼성에서 활약하는 이시준의 말이기에 더욱 와닿는 한마디였다. / jasonseo34@osen.co.kr
[사진] 싱가포르=서정환 기자 jasonseo34@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