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근, 김성근식 야구’가 실패로 끝났다. 많은 야구인들은 그렇게 생각한다. 산술로야 아직도 실낱같은 포스트시즌 진출 희망이 남았다고 할 수도 있겠으나 부질없다. 한화 이글스는 22일 NC 다이노스전을 놓침에 따라 가혹한 표현이지만 ‘산소호흡기’를 뗀 것이나 마찬가지 신세가 됐다.
한화가 철석같이 믿었던 ‘김성근 야구’에 대한 기대는 그야말로 허망한 모험이 됐다. 김성근 야구, 혹은 김성근식 야구가 꿈꾸었던 ‘SK 와이번스 시절의 영광 재현’이 무모했다고밖에 말할 수 없는 ‘한화의 현재’가 안타깝다. 김성근 야구에 대해 쏟아지는 비난은 곧 한국야구계의 한 원로 야구인의 어두운 그림자를 목도하는 일이기에 그를 아끼는 이들의 실망감도 클 것이다.
김성근 야구를 구태여 규정짓고 싶지는 않다. 굳이 말하자면 ‘불펜야구’라고 할 수 있겠다. 물론 한화의 마운드 구성상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단기간에 성적을 내려는 무리한 마운드 운용이 오늘날의 비극적 결말을 낳았다고 해도 그리 지나치지 않다.
한화는 9월 22일 현재 10개 구단 가운데 가장 많은 60번의 퀵후크를 기록했다. 이는 2위인 NC 다이노스(41번)보다 19번이나 많고 선발야구로 정규리그 우승을 일궈낸 두산 베어스(17번)보다는 3배 이상 되는 수치다.
김성근 감독은 올 시즌 들어 무려 4번이나 투수코치를 바꾸었다. 일본인 고바야시 세이지 코치는 시즌 초반에 일찌감치 보따리를 싸서 일본으로 돌아갔고 그 뒤 정민태→이상군→계형철→이상군으로 투수코치가 계속 교체됐다. 이는 곧 한화 마운드의 불안과 김성근 감독의 불만을 대변하는 일이기도하다.
한화의 포스트시즌 진출 (사실상) 실패는 여러 복합적인 요인이 있겠지만 수치에서도 드러났듯이 선발야구를 추구하지 못한 탓이 가장 큰 이유일 것이다. 선발야구의 실종이 불펜 과부하를 불러 일으켰고 불펜 과부하는 투수들의 연쇄 부상을 자아냈다. 오죽했으면 누리꾼들이 김성근 감독의 잦은 퀵후크에 빗대 좀 민망한 표현이지만 ‘퀵후크’ 선장이라고 했을까. 선발투수가 아닌 제일 먼저 등판하는 투수라는 비아냥거림도 자주 볼 수 있었다.
워낙 김성근 감독의 소신과 신념이 ‘불펜야구’에 대해 철석같아서 외부의 충언도 들리지 않았던 듯하다.
이 시점에서 새삼 김성근 야구를 들먹이고 싶지는 않지만 짚고 넘어갈 대목은 있다. 김성근 야구의 실체는 과연 무엇일까. 그의 저서 『김성근이다』(2011년 발행)를 살펴보자.
“나는 이기는 야구가 아니라 지지 않는 야구를 하려고 한다. 지지 않는 야구란 끝끝내 이기는 야구, 끝까지 경기를 버리지 않는 야구를 말한다. 우승보다 더 값진 게 있다. 포기하지 않으면 계속해서 생명력이 살아난다는 사실이다. 야구는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10-0으로 지고 있다고 경기를 포기해버리면 안 된다.(205쪽에서 발췌 인용)
나는 경기에서 점수 차에 신경을 쓰지 않는다. 그건 숫자일 뿐이다. 경기는 전체를 봐야 한다. 한 경기의 처음과 끝이 다가 아니다. 현재 경기에서 리드하고 있는데도 피처를 바꾸는 이유는 지금 던지고 있는 피처를 아껴놔야 하고, 또 이번에 써야 하는 피처가 있기 때문이다.(204쪽에서 발췌 인용)
기막힌 역설(逆說)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후배 야구인은 ‘김성근 야구’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선배야구를 논하기는 싫지만 선발이 없다는 것은 넥센을 기준으로 놓고 보면 아무한테도 변명이 되지 않는다. 144게임 체제 아래에서 젊은 투수들이나 기존의 선발들에게 충분히 기회를 부여했으면 팀이나 선발 로테이션이 짜질 수 있었을 것이다. 안 어려운 팀이 있나. 시즌 초반부터 불펜을 너무 믿었기 때문에 퀵후크를 남발하는 바람에 불펜 과부하가 빨리 걸렸다.”
그는 많은 이들이 지난해 실패를 올해도 반복하면 안 된다고 지적했지만 김성근 감독은 ‘내 방식대로 한다.’는 고집을 버리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144게임 체제 아래서는 불펜야구로는 투수들의 부상 위험만 커지고 큰 효과를 보기 어렵다는 게 그의 설명이었다.
“불펜 투수들이 날마다 대기해야 하는데 그런 점들이 아무래도 김성근 야구 발목을 잡지 않았겠는가. 옛날 126, 133게임 때는 그래도 지금보다 경기수가 적으니까 통할 수 있었을지 모르지만, 그 때도 부상당하는 선수가 나왔다. LG 시절 이동현 같은 투수가 2년 연속 100이닝 이상을 던져 결국 수술대에 올랐던 사례도 있다. 계속해서 한 점을 안 주고 못 따라오게 하려고 불펜을 조기 가동해온 옛날 사고에서 벗어나야 하는 게 아닌가하는 아쉬움이 있다. 이미 늦은 감이 있지만 김성근 감독이 혹사라는 굴레에서 벗어나셔야 하는데….”
그는 “야구가 변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해 안타깝다”는 말로 진한 여운을 남겼다.
바둑에 사석작전이란 게 있다. 위기십결(圍棋十訣)에 보면 사소취대(捨小取大)라는 말도 있다. 작은 것을 과감하게 버리고 큰 것을 취해야한다는 뜻이다. 김성근 감독의 변함없는 소신이 자칫 ‘게도 구럭도 다 놓치는’ 결과를 불러올 수 있다. 김 감독이 추구하는 야구가 ‘지고지선’은 아닐 것이다. 나라를 엉망진창으로 만든 박근혜 정권의 고집불통과 닮아서야 되겠는가.
/홍윤표 OSEN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