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왜란' 조·명 연합군, 평양성 탈환으로 역전 발판 마련 [종합]
OSEN 박판석 기자
발행 2016.09.22 22: 56

 조선과 명나라의 연합군이 임진왜란 당시 일본에게 빼앗긴 평양성을 되찾았다. 엄청난 희생을 치른 평양성 전투 이후 임진왜란의 판도가 바뀌었다.
22일 오후 방송된 KBS 1TV '임진왜란 1592'에서는 임진왜란 이후 조선과 명나라가 연합하여 일본을 몰아내는 모습이 전파를 탔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명나라를 치려고 굳게 마음 먹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15만 명이 넘는 병력을 소집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명나라를 치는 선봉에 선조를 앞세우겠다는 계획까지 세우고 있었다. 

하지만 선조는 이런 일본의 야욕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조선은 100년이 넘는 세월동안 일본과 교류를 하지 않았고 일본 왕이 바뀐 상황에서 급작스럽게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보내온 사신에 아무런 대처도 하지 못하고 당황하고만 있는 상황이었다. 
1592년 4월 13일. 일본군은 15만명의 병력을 이끌고 조선을 침략한다. 파죽지세로 몰아치는 일본의 기세에 놀란 선조는 명나라에 도움을 요청한다. 명나라의 황제 만력제는 조선을 믿지 못하고 선조의 도움을 거절했다. 
한성이 함락되고 평양성까지 함락되자 선조는 나라를 버리고 요동으로 가겠다고 마음 먹는다. 이에 명나라 조승훈이 이끄는 요동군은 3천명의 병력을 이끌고 평양성을 찾았지만 고니시의 매복에 걸려서 전멸한다. 이에 자신감을 얻은 일본은 평양에서 전면전을 펼치겠다는 마음을 먹었다. 
일본군은 의병들에 의해 막힌 보급로로 인해서 모든 보급을 해군에 의지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조선의 바다를 지키는 이순신이 있었다. 이순신은 임진왜란 하루 전날 완성된 귀선을 이끌고 한산대첩을 승리로 이끌었다.
한산대첩 패배 이후 더욱 보급이 곤란해진 상황에 처한 일본은 명나라와 조선을 나누는 것을 두고 협상에 나섰다. 명나라도 영하지역에서 일어난 반란으로 인해 시간이 필요한 상황이었다. 결국 일본과 명나라는 휴전했다. 
영하의난을 진압한 이여송이 조선으로 출병하게 됐다. 이여송은 일본의 조총 공격에 대응하기 위해서 수많은 화포를 준비했다. 이여송은 조선과 힘을 합쳐 평양성 수복에 나섰다. 조선의 정보력과 명나라의 화력이 합쳐진 상황에서 치열한 전쟁이 벌어졌다. 
평양 지리에 익숙하지 못한 명나라군을 이끌기 위해서 2만의 조선군은 선봉에 섰다. 선봉에 선 만큼 많은 희생을 피하지 못했다. 쉽지 않은 평양성 전투였지만 결국 평양성을 되찾았다. 결국 일본은 평양성에서 첫 패배를 안았다. 
평양성에서 패배하고 후퇴한 일본군은 한양에 병력을 집결했다. 일본과 명나라 모두 보급으로 인한 문제를 겪었다. 명나라는 병사들이 먹을 식량은 물론 말 먹이도 부족했다. 명나라는 이런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식량창고가 있는 한양을 정복하기로 마음 먹었다. /pps2014@osen.co.kr
[사진] '임진왜란 1592' 방송화면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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