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침내 전인지(22, 하이트진로)가 해냈다. 지난 해 한미일 여자 프로골프 메이저대회를 석권해 ‘메이저 퀸’이라는 별명을 얻고, 올 시즌 미국 여자프로골프(LPGA) 투어에 진출했지만 아직 우승이 없던 그였다. 그런 전인지가 시즌 첫 우승 갈증을 올 시즌 마지막 메이저 대회에서 시원하게 풀었다.
전인지는 18일 밤(한국시간) 프랑스 에비앙 레뱅의 에비앙 리조트 골프 클럽(파 71, 6,470야드)에서 열린 에비앙 챔피언십(총상금 325만 달러, 우승상금 48만 7500달러) 최종라운드에서 경쟁자들을 여유롭게 따돌리고 우승컵을 들어올렸다. 마지막 4라운드에서도 2타를 줄인 전인지의 스코어는 최종합계 263타 21언더파.
전인지의 우승은 사실상 8번홀에서 결정 됐다. 최종 라운드를 시작하면서 가장 강력한 경쟁자는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에서 활동하고 있는 박성현(23, 넵스)이었다. 전인지가 19언더파로 단독 선두, 박성현이 15언더파로 단독 2위로 3라운드를 마친 터였다.
둘의 경쟁은 파3 8번홀은 기점으로 다른 길을 가기 시작했다. 전인지의 티샷은 그녀의 경기 스타일 대로 정확하게 그린 위 깃대 2미터 안쪽에 공을 꽂았다. 틈만 나면 비가 내린 탓에 그린은 찹쌀떡이 쟁반에 붙듯 착착 달라 붙었다.
반면 박성현의 티샷은 그린을 벗어나 벙커에 내려앉았다. 벙커에서 탈출하는 박성현의 샷은 화려했다. 벙커에서 솟은 공은 깃대를 훨씬 지난 지점으로 날아갔지만 그린에 닿기가 무섭게 강한 백스핀을 먹고 깃대를 향해 굴러 내려오기 시작했다. 박성현도 갤러리도 탄성을 질렀다. 거꾸로 내려온 공은 깃대를 스치듯이 지나 한참을 되구르자 갤러리들의 탄성은 아쉬움으로 바뀌었다.
전인지는 이 홀에서 버디를, 박성현은 보기를 적어내 둘의 타수가 6타 차이가 났다. 사실상 승부는 끝났지만 둘 다 얻은 게 있다. 전인지는 LPGA 메이저 대회 최다 언더파, 최저 타수라는 대기록을, 박성현은 LPGA를 들뜨게 하는 화끈한 플레이어라는 평판을 가져갔다.
이날 전인지의 우승은 올 시즌 첫 승이자, LPGA 통산 2승째다. 그 2승이 작년의 US여자오픈과 이번 에비앙 챔피언십이다. 둘다 메이저대회다. LPGA에서 루키가 메이저대회에서 연속 우승을 한 기록은 딱 둘이 있다. 1998년 박세리가 그해 5월의 LPGA 챔피언십에서 우승하고, 7월의 US 여자 오픈에서 두 번째 우승을 일군 게 시초다. 두 대회 역시 메이저 대회다.
전인지가 에비앙 챔피언십에서 적어낸 21언더파도 대단한 의미가 있다. PGA와 LPGA를 통틀어 메이저대회 최다 언더파, 최저타 우승이기 때문이다.
메이저 대회 최소타는 1992년 베스티 킹(미국)이 LPGA 챔피언십에서 기록한 267타(17언더파)였지만 전인지는 263타 21언더파를 기록했다.
PGA 메이저 대회에서는 최근 20언더파가 쏟아졌는데 그게 종전 기록이 됐다. 2015 PGA 챔피언십에서 제이슨 데이가, 2016 브리티시 오픈(디 오픈 챔피언십)에서 헨릭 스텐슨이 세웠다.
여자 대회에서는 19언더파가 종전 기록이다. 도티 페퍼(1999 크래프트 나비스코 챔피언십), 카렌 스터플스(2004 브리티시 여자 오픈), 크리스티 커(2010 LPGA 챔피언십), 청야니(2011 웨그먼스 LPGA 챔피언십), 박인비(2015 KPMG 위민스 PGA 챔피언십) 등 5명이 종전 기록 보유자다.
박성현은 내년 LPGA 기대주라는 평판을 챙겼다. 박성현에 대한 인상은 지난 7월의 US 여자오픈 공동 3위로 LPGA 팬들에게 어느 정도 각인 돼 있었다. 그런데 이번 에비앙 챔피언십에서는 그 강도가 달랐다. LPGA의 공식 홈페이지는 중국의 펑산산과의 인터뷰를 통해 박성현의 괴력을 소개했다. 펑산산은 “몸은 바짝 말랐지만 공은 렉시 톰슨처럼 멀리 친다”는 가장 확실한 한 마디로 박성현을 묘사했다.
LPGA닷컴은 펑산산이 박성현과 나눈 대화도 소개했다. 펑산산은 단도직입적으로 박성현에게 “LPGA로 올 것이냐”고 물었더니 박성현이 “그러고 싶은데, 아직은 결정하지 않았고 지금은 반반이다”고 말했다고 한다. 펑산산은 LPGA닷컴에 “그녀는 당장 와도 이미 충분하다”고 시원스럽게 말했다.
갤러리들의 호응도 점점 강해지고 있다. 중계 방송 팀은 박성현의 스윙 모습을 반복적으로 보여주고 있고, 샷 하나하나에 보내는 갤러리의 탄성과 탄식도 하루가 다르게 높아지고 있다. 새로운 스타의 탄생을 갈구하는 LPGA에 장쾌한 스윙으로 화답하고 있는 박성현이다.
화려한 스윙뿐만 아니라 상금순위도 박성현의 LPGA 진출을 가시화하고 있다. LPGA는 대회 우승자에게는 당연히 시드를 주고, 상금 순위 40위 안에만 들어도 Q스쿨을 거치지 않고도 경기 출전를 준다. 박성현은 이번 대회 공동 2위로 상금 순위 40위를 충족시키고도 남게 됐다.
리디아 고, 아리야 주타누간이 부진한 가운데 2016 에비앙 챔피언십은 한국 선수들이 맹활약한 대회로 남게 됐다. 박성현과 유소연(26, 하나금융그룹)이 17언더파로 공동 2위, 김세영(23, 미래에셋)이 14언더파로 단독 5위, 김인경(28, 한화)이 12언더파로 단독 6위에 올랐다. 중국의 펑산산은 15언더파로 단독 4위.
특히 전인지와 박성현은 그들이 원하는 가장 간절한 것을 챙겼다. /100c@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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