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즌 내내 궂은 일을 마다하지 않았던 베테랑 불펜 투수에게 롯데는 이제 한없는 기대야 할 처지다. 롯데 선수단의 최고참 투수 이정민(37)이 보이는 관록이 더욱 돋보이고 있다.
이정민은 올시즌 58경기 출장 67⅔이닝을 소화하며 3승2패 2세이브 6홀드 평균자책점 3.19를 기록하고 있다. 1979년생으로 현재 롯데 1군 엔트리에 있는 선수 가운데 가장 나이가 많다. 산전수전 공중전까지 겪은 베테랑 중의 베테랑이다.
하지만 이정민의 올시즌은 나이가 무색할 정도다. 올시즌 롯데의 순수 불펜 투수들 가운데 최다 출장, 최다 이닝은 모두 이정민의 몫이다. 눈에 띄는 세이브와 홀드 숫자가 돋보이지는 않지만, 그만큼 이정민은 어떤 상황에서든 등판하는 '마당쇠'였고, 주어진 역할을 흠잡을 데 없이 수행했다.
리그 전체 불펜 투수들 가운데서도 이정민의 성적은 돋보인다. 50경기 이상 출장한 리그 불펜 투수들 가운데 이정민의 평균자책점은 NC 임창민(55경기·2.62), 넥센 김세현(58경기·2.78) 삼성 심창민(52경기·2.83), 윤명준(50경기·2.86) 다음으로 낮다. 마무리나 그에 버금가는 역할을 맡고 있는 선수들 틈바구니에 이정민이 포진해 있는 것.
이정민의 올시즌 보직은 똑부러지게 정의할 수 없는 위치다. 그만큼 이정민의 등판은 예상할 수 없었고, 등판 경기 수도 많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최근 이정민의 위치는 확고해졌다. 확실한 필승조다. 이정민은 9월 8경기에서 10⅔이닝을 소화하며 2홀드 평균자책점 0.84를 기록하고 있다. 같은 기간 윤길현의 평균자책점은 12.00(8경기 6이닝 8자책점). 윤길현이 해야 할 마무리 손승락(9월 5경기 2승3세이브 평균자책점 1.69)까지 이어지는 징검다리 역할을 이정민이 수행하고 있다.
지난 16일 대전 한화전에서도 이정민은 7-5로 쫓기던 7회말 무사 1,3루에서 마운드에 올랐다. 동점 주자까지 누상에 있던 상황. 하지만 이정민은 담담하고 침착했다. 3루 주자의 실점은 어쩔 수 없다는 듯, 3루 주자에 대해선 신경도 쓰지 않은 채 투구에 임했다.
결국 첫 타자 양성우를 좌익수 뜬공으로 유도했고, 3루 주자의 득점과 아웃카운트를 맞바꿨다. 7-6, 1점 차이로 더욱 쫓기긴 했지만 아웃카운트를 늘리기 위한 베테랑의 관록이 돋보였다. 이어진 1사 1루에서는 오선진을 유격수 뜬공으로 처리한 뒤 1루 주자 하주석의 2루 도루를 저지하고 7회를 무사히 마감했다.
이정민이 위기를 극복하자 롯데는 8회초 4번 타자 황재균이 달아나는 쐐기 솔로포를 터뜨리며 2점의 리드를 안겼다. 8회말에도 올라온 이정민은 차일목을 2루수 직선타, 윌린 로사리오를 3루수 땅볼, 대타 김회성을 삼진으로 솎아내며 팀의 리드를 지키고 9회 마무리 손승락에 공을 넘겼다. 이정민은 승계주자 1명을 실점했지만 2이닝 24구 1탈삼진 퍼펙트로 틀어막으며 시즌 6호 홀드를 따냈고 팀은 8-6으로 승리를 거뒀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안정감을 보인 이정민의 존재로 롯데는 셋업맨 윤길현의 부진을 어느 정도 상쇄할 수 있었다. '매일이 결승전'인 롯데의 현 상황에서 이정민이라는 기댈 언덕조차 없었더라면 롯데의 불펜은 붕괴됐고, 롯데의 시즌도 완전히 조기에 마감할 수 있었다.
여전히 롯데의 올시즌은 짙은 먹구름에 휩싸여 있다. 남은 14경기에서 12승 이상을 올리는 기적적인 승률을 올려야만 5강의 희망도 겨우 생긴다. 그러나 올시즌 연봉 6500만원의 베테랑 이정민의 관록과 고군분투가 있기에 5강에 대한 옅은 희망도 이어갈 수 있다. /jhrae@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