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프로야구 해설의 선구자였던 하일성 전 KBO 사무총장이 8일에 느닷없이 이 세상을 떠났다. 그의 갑작스런 비보는 야구계에 큰 충격과 슬픔을 안겨줬다. 공적인 일을 떠나 사적인 삶의 영역에서 다른 사람들에게 이루 말할 수 없었던 아픔과 고뇌가 있었으리라 짐작케 한다.
빈소인 서울 보훈병원을 다녀온 이들에 따르면 고인은 극단적인 선택을 하기 나흘 전인 지난 4일 부인, 작은 딸과 함께 저녁 식사를 나누었다고 한다. 그 자리가 그의 마지막 만찬이었던 셈이다. 평소 활달하고 활기찬 태도를 보였던 것과는 달리 근년 들어 경제적인 어려움에 시달린 나머지 풀이 죽고 현저히 위축된 모습으로 주변인들에게 간간이 자신의 괴로움을 토로한 것으로 전해졌다.
프로야구 행정에도 깊숙이 관여했던 그는 특히 야구 해설의 영역에서는 총기가 발랄할 때는 사전에 현장을 탐문하거나 당사자들을 직접 만나 취재한 정보와 지식을 종합한 ‘예측해설’로도 유명했다. 아마도 밤낮으로 그처럼 많은 발품을 판 해설가도 없었을 것이다.
그가 남긴 저서 가운데 『나는 밥보다 야구가 좋다』는 수필집이 있다. 1994년에 나온 그 책은 자신에 대한 이야기, 야구 지식, 일화, 상식 등을 다양하게 실어놓아 ‘야구의 재미’에 흠뻑 빠져들게 한다. 그의 작고를 계기로 오랜만에 그 책을 다시 들추어보았다.
그 중에 ‘기억에 나는 선수들’ 편에 ‘선동렬의 10계명’을 분석해놓은 글은 후배 선수들에게도 귀감이 될 뿐만 아니라 일반 야구팬에게도 야구의 깊이를 알 수 있게 해주는 것이어서 발췌 인용, 소개를 한다.
하일성 당시 KBS 해설위원은 ‘선동렬의 10계명’ 앞에 이런 글을 써놓았다. 그의 부지런함과 취재력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내가 앞으로 소개할 글은 선동렬 선수가 고등학교 때 이미 자신의 투수철학으로서 ‘10계명’을 만들어 놓고 그것을 늘 훈련과 실전을 통해 완성해 왔다는 것이다. 도저히 어린 학생이 이런 글을 썼다고 믿기 어려울 것이나 사실이다.”
그가 정리해놓은 ‘선동렬의 10계명-투수로서 갖추어야할 점’을 간추리면 다음과 같다. 매 항목마다 계명과 설명이 붙어 있지만, 설명은 생략한다.
1. 제 1구는 항상 스트라이크를 던져라.
2. 제2구를 빠른 커브로 사용하는 것이 좋다.
3. 컨트롤에는 3가지가 있다. 첫째는 몸의 균형에서 오는 것, 둘째는 볼을 쥐는 그립에서 오는 것, 셋째는 자기의 정신에서 오는 것.
4. 너의 습관적인 투구 내용이 상대타자에게 간파당해 이미 효과가 없다는 것을 깨닫지 못한 채 아무런 생각 없이 투구하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말라.
5. 힘에는 힘으로 맞서라.
6. 주자가 있다고 흔들려선 안 된다.
7. 투수 앞 땅볼이나 번트 타구가 한 경기에 3~5차례는 항상 있다는 것을 명심하라.
8. 자신감을 잃지 마라.
9. 너는 팀의 일원이다. 팀은 너의 것이다. 따라서 동료들로부터 소외 되선 안 된다. 많은 대화 시간을 갖고 서로의 말에 귀를 기울이도록 해라.
10. 너는 그라운드의 왕이다. 타자들이 너에게 존경심을 갖도록 만들어라.
아닌 게 아니라 ‘선동렬의 10계명’은 새삼 놀라운 점이 많다. 선동렬이 왜 이 시대 최고 투수가 될 수 있었는가를 알 수 있게 해주는 하나의 징표 같다. 그 것을 찾아내 소개했던 고인의 안목 또한 놀랍다.
체육기자로 고인과 그라운드 안팎에서 30년 이상 부대껴온 필자로선 그의 돌연한 죽음에 아연하다. 세상을 떠난 그이가 생전의 온갖 시름을 잊고 부디 천상에서 평화를 누릴 수 있기를 빈다.
/홍윤표 OSEN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