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스트볼-슬라이더 모두 구종 가치 불펜 10위 이내
일본에서 릴리스 포인트 가다듬어 미국에서도 위용
오승환(34,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의 슬라이더는 메이저리그에서도 인정받는다. 하지만 완벽한 공이란 없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96마일(약 154.5km)까지 찍히는 포심 패스트볼의 위력도 강하지만, 오승환을 만나는 타자들은 슬라이더를 공략하는 것을 더 어려워한다. 물론 빠른 볼이 동반되기에 그런 것이겠지만, 메이저리그 통계 사이트인 팬그래프에 따르면 그의 슬라이더 구종 가치(10.3)는 불펜투수 중 전체 6위다. 내셔널리그로 한정하면 3위이며, 패스트볼(11.2)도 불펜투수 가운데서는 전체 10위로 훌륭하다.
지금은 일상생활에서도 많이 쓰이는 ‘돌직구’라는 말을 처음 유행시킨 장본인이었을 정도로 묵직하게 깔리는 오승환의 강력한 포심 패스트볼 빅리그 타자들도 쉽게 공략해내지 못한다. 그는 일본에서 슬라이더의 릴리스 포인트에도 신경을 썼고, 그 결과 지금은 두 구종이 거의 같은 릴리스 포인트에서 나올 정도로 발전했다.
오승환도 두 구종의 릴리스 포인트가 비슷해지만 타자가 혼란을 겪을 것을 염두에 두고 훈련해왔다. 지난 7일(한국시간)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피츠버그의 PNC 파크에서 경기를 앞두고 만난 그는 “이게 맞는 생각인지는 모르겠지만, 빠른 공을 던지는 것과 같은 릴리스 포인트에서 슬라이더가 나오면 타자가 좀 더 대처하기 힘들 것이라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비시즌은 물론 시즌 중에도 실험을 계속하는 과정 속에서 지금의 슬라이더가 탄생했다. 그는 “아무리 포수를 앉혀놓고 던져도 불펜에서 던지는 것과 실제로 타자를 상대하는 것은 다르다. 타자를 상대로 던져보고 타자가 어떻게 반응하는지도 봐야 한다”며 실전을 통한 연마를 강조했다.
그는 이어 “실전에서 안 던져보면 자신감을 가질 수 없고, 자신감이 없으면 중요할 때 그 공을 던지기 힘들다”라고 덧붙였다. 한국에서부터 던지기 시작해 일본에서 조금씩, 꾸준하게 가다듬은 결과 오승환은 미국에서 한층 업그레이드된 슬라이더에 자신감까지 듬뿍 실어 던지게 된 것이다.
하지만 오승환은 “아무리 좋은 공을 던졌다고 생각해도 그걸 쳐내는 타자도 있고, 스윙하지 않는 선수도 있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그때마다 스타일을 바꿀 수도 없다”며 어려운 점을 털어놓기도 했다. 이번 시즌만 놓고 보면 오승환은 메이저리그에서도 손에 꼽히는 구원투수지만, 그가 상대하는 타자들 역시 빅리그 레벨까지 올라온 이들인 만큼 고충은 없을 수가 없다.
오랜 선수생활을 통해 깨달음을 얻은 듯한 그는 “(어떤 구종을 던지든) 완성이라는 건 없다고 생각한다”는 말로 결론을 내렸다. 그렇다면 오승환이 지금 던지는 슬라이더도 100% 만들어진 공은 아니다. 앞으로 얼마나 더 치기 어려운 공이 만들어질지 지켜보는 것도 흥미로운 일이 될 것이다. /nick@osen.co.kr
[사진] 피츠버그=백승철 기자 baik@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