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산자' vs '밀정' 추석대첩? 대결 아닌 협업
OSEN 손남원 기자
발행 2016.09.08 15: 35

[OSEN=유진모의 취중한담]극장가에 이른바 ‘추석대첩’이 시작됐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가 10억 엔에 ‘해결’되고, 일본의 소녀상 철거 요구가 거세지는가 하면, 건국일 논란이 재점화된 절묘한 시점에 한국방송공사(KBS) 1채널은 드라마 ‘임진왜란 1592’를, 2채널은 ‘구르미 그린 달빛’을 각각 내보내며 호평을 얻고 있는 가운데 극장가에선 ‘밀정’(김지운 감독, 워너브러더스코리아 배급)과 ‘고산자, 대동여지도’(강우석 감독, CJ엔터테인먼트 배급)가 지난 7일 동시에 개봉돼 맞대결 구도를 형성하고 있다.
8일 오전 각 매체들은 ‘밀정’이 누적관객 30만 5597명을, ‘고산자’가 5만201명을 각각 동원하며 박스오피스 1, 2위를 차지했다며 추석연휴가 사실상 시작되는 이번 주말에 전체관람가 등급인 ‘고산자’의 약진이 예상되므로 대결이 볼 만하다고 구도를 형성하는 분위기다. 그러나 이건 대결이 아니라 컬래버레이션(협업)이다. 국정교과서 문제가 본격적으로 거론되기 시작한 시기와도 절묘하게 맞물린다. 역사는 청산의 대상이 아니라 바로 알고,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하며, 반드시 결자해지해야한다는, 뜻있는 국민들의 역사의식의 반영이 아닐까?
‘밀정’의 배경은 1920년대 말 일제강점기다. 임시정부에서 통역 일을 했던 이정출(송강호)은 자신을 알아봐준 경무국 부장 히가시(쓰루미 신고)의 밑으로 들어가 경찰 간부로서 일제에 충성하고 있다. 그는 의열단의 2인자 김우진(공유)을 통해 의열단을 일망타진하려다 오히려 그에게 회유당해 의열단의 폭탄운반을 돕게 된다. 의열단 내부에선 누가 일본이 심은 밀정인지 갈등하고 반목하는 현상이 벌어진다. 일본 경찰에는 정출 외에도 아예 개명한 하시모토(엄태구) 같은 매국노들이 수두룩하다.

물론 이 혼돈의 시대에 자신과 가족의 생존을 위해 어쩔 수 없이 강한 쪽에 붙었다는 변명을 할 수는 있다. 하지만 역사는 그것을 용서하지 못한다. 안 하는 것도 못 하는 것도 아니라 못한다. 그 이유는 역사는 반드시 후세들에게 정확하게 전달돼야 하고, 후세들은 이를 통해 현재를 바로잡아 희망적인 미래를 엶으로써 그들의 후세들이 보다 더 행복하고 희망적인 세상을 살게끔 이끌어야 하기 때문이다.
조선 후기의 지리학자 겸 실학자 고산자 김정호는 평민이었다. 그래서 그에 대한 기록이라곤 달랑 A4 용지 한 장이라고 한다. 하지만 그는 조선에서 가장 많고 정확한 지도를 제작한 위대한 학자였고, 돈도 안 되는 그 지도를 목숨 걸고 발품을 팔아가며 그린 이유는 백성의 편의와 안녕이었다.
‘고산자’에서 흥선 대원군(유준상)과 안동 김 씨는 헤게모니를 잡기 위한 수단으로 김정호(차승원)의 지도를 차지하고자 다투고, 그 과정에서 정호의 생애 자체가 풍비박산난다.
김정호가 지도를 그리게 된 계기는 한겨울에 홍경래의 난 진압에 민병대로서 투입된 아버지가 졸속 제작된 지도 탓에 깊은 산 속에 고립돼 동사했기 때문이다. 그는 바우(김인권)에게 목판을 파게 만들면서 완벽을 요하는데 그 이유는 지도 안에서의 한 치는 3cm가 살짝 넘는 짧은 거리지만 실제론 수백, 혹은 수천 미터가 되므로 그 하찮은(?) 오류가 수많은 사람들의 생명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혹시라도 친일파가 역사적 심판에서 보기 좋게 벗어나고 그 후손들이 배불리 잘 먹고 잘사는 반면 독립운동가의 후손들은 경제와 생존의 개념이 뒤떨어진(?) 조상을 둔 탓에 가난하게 살고 있다면 그건 분명히 잘못된 역사가 아닐까? 역사를 형상화하지 않고 이상화한다면 진실은 각자의 시각의 프리즘으로 다양하게 현상되기 마련이다. 결국 세상은 편협해지고 서민들의 삶은 궁핍해지는 것이다.
송강호 공유 이병헌 엄태구 한지민(이상 ‘밀정’), 차승원 김인권 유준상(이상 ‘고산자’) 등의 열연이 두 영화의 첫 번째 화제다. ‘고산자’는 관객들조차 우리나라 금수강산이 이렇게 수려한 줄 몰랐다고 놀랄 만큼의 아름다운 영상미를 자랑하고, 어떻게 위정자들이 백성을 기만해 사리사욕을 채웠는가 보여준다. ‘밀정’은 스파이 영화 특유의 긴장감이 2시간 넘는 러닝타임을 초고속도로 내달리게 만들고, 비장한 분위기가 누아르 특유의 스타일을 만끽하게 만든다./osenstar@osen.co.kr
[칼럼니스트]
<사진> '밀정' '고산자' 포스터

Copyright ⓒ OSEN.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