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병두의 비극, 리그에 남긴 뚜렷한 교훈
OSEN 김태우 기자
발행 2016.09.08 09: 01

기나긴 세월 어깨 부상과 싸운 전병두(32·SK)가 결국 유니폼을 벗는다. 이른바 ‘혹사’로 표현되는 무리한 투구가 선수 인생에 어떤 치명타를 줄 수 있는지 보여주는 사례가 될 전망이다.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현재도 그런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점에서 리그에 남기는 교훈은 적지 않다.
전병두는 8일 공식 은퇴를 선언했다. 전병두는 최근 구단 측에 “더 이상 재활하지 않고 은퇴하겠다”라는 의사를 전달했고, 구단은 7일 전병두의 은퇴라는 내부 방침을 공식적으로 확인했다. 전병두는 2011년 왼 어깨 회전근 수술을 받은 이후 꼬박 5년을 재활했으나 결국 수술 여파를 이겨내지 못하고 유니폼을 벗는 쪽을 택했다.
다소 거친 면은 있지만 빠른 공을 던지는 왼손 투수라는 점에서 현장 지도자들의 큰 기대를 모았던 전병두였다. 부산고를 졸업하고 2003년 두산의 2차 1라운드(전체 8순위) 지명을 받았고 2005년부터 2007년까지는 KIA에서, 2008년부터는 SK에서 활약했다. 전천후 스윙맨이었다. 선발·불펜·마무리를 가리지 않고 활용됐다. 통산 280경기에서 29승29패16세이브8홀드의 기록을 남겼다.

그러나 그런 매력이 너무 넘쳤던 까닭일까. 무리한 투구가 발목을 잡았다. 전병두는 KIA 시절이었던 2006년 44경기에서 101⅓이닝을 던졌다. 전업 선발은 아니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혹사는 그때부터 시작됐던 것이다. 그렇게 2년간 사실상의 안식년을 보낸 전병두는 2009년 49경기에서 무려 133⅓이닝을 던지며 세간을 놀라게 했다. 선발·중간·마무리로 모두 뛰며 8승4패8세이브1홀드를 기록했다.
당시 투구 내용을 보면 전병두의 혹사는 뚜렷하게 드러난다. 전병두는 첫 10경기에서는 선발로 뛰었다. 그러나 그 후로는 불펜으로 보직을 전환해 승부처마다 매번 호출됐다. 불펜에서 2이닝 이상을 투구한 경기가 무려 18경기나 됐다. 경기 상황에 맞춰 대기해야 하는 불펜 투수의 여건상 체력적으로 쉽지 않은 일정이었다.
그렇다고 휴식 시간이 충분히 주어진 것은 아니다. 하루, 혹은 이틀을 쉬고 다시 긴 이닝을 소화한 경우가 많았다. 8월 16일 대전 한화전에서 3이닝 44구를 던진 전병두는 하루를 쉬고 18일 사직 롯데전에서 4이닝 69구를 던졌다. 피로가 풀리기도 전, 또 다시 하루를 쉬고 20일 사직 롯데전에서 1⅔이닝을 소화하는 강행군을 이어갔다. 9월 15일 잠실 LG전에서 4이닝 50구를 던진 전병두는 16일 경기에 다시 나서 2⅓이닝 47구를 던지는 등 비정상적인 강도의 투구를 이어가기도 했다.
전병두는 이 여파로 어깨에 통증이 생겨 정밀진단을 받았고 3개월 재활이 필요하다는 진단 하에 2010년 5월에야 첫 경기를 가졌다. 그러나 제대로 된 관리는 이뤄지지 않았다. 4월 한 달 일정을 모두 건너뛰었음에도 불구하고 2010년에도 역시 67⅔이닝을 던졌다. 그리고 2011년 92⅓이닝을 던진 뒤 끝내 탈이 났다. 치명적인 회전근 부상을 당했고, 수술대에 오른 뒤 결국 공식 경기에 복귀하지 못했다.
투수의 어깨는 소중히 다뤄야하고, 결국 쓰면 쓸수록 닳는다는 평범한 진리를 보여준 선수가 전병두였다. 전병두는 재활 기간 중 재수술을 받는 등 쉽게 회복하지 못했고 이제 5년간의 희망을 놓는다. 성실히 재활을 했지만 이미 망가진 어깨는 어쩔 수 없었다. 강속구를 던지던 전병두는 올해 루키팀(3군) 연습경기에서 최고 132㎞ 정도의 공을 던졌다. 대부분은 120㎞대 중·후반의 구속이었다. 팔이 올라가지 않아 각이 만들어지지 않았다. 결정적으로 한 번 던지면 통증이 찾아와 재활 단계가 쉬이 진척되지 못했다.
한 관계자는 “전병두는 너무나도 안타까운 케이스다. 벤치의 혹사 속에 자신의 가치를 제대로 다 보여주지 못했다”라면서 “만약 전병두가 혹사를 당하지 않고 꾸준히 당시의 성적을 유지했다면 어땠을까. 요즘 시세로 볼 때 못해도 FA로 30~40억은 받을 수 있었을 것이다. 선수에게는 너무 큰 손해였다. 당시 결정권자가 이 손해를 메워줄 것인가”라고 분노를 터뜨렸다. 좋은 활약으로 당시에는 연봉이 많이 오르기도 했던 전병두지만, 올해 연봉은 고작 5000만 원이었다. 그리고 너무나도 하고 싶었던 야구를 하지 못했다. 장기적인 관점에서는 엄청난 손해였다.
최근 혹사에 대한 비판 여론이 강해지고, 현장에서도 ‘관리 야구’가 대세를 이루는 등 전병두 사례에 대한 경계감은 높아지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불펜 투수들에 대한 의존도가 크거나, 혹사 논란이 나는 경우는 적지 않다. 전병두의 은퇴는 “코칭스태프는 당장의 성적도 성적이지만 선수의 가치를 보호할 의무가 있다”라는 교훈을 KBO 리그에 뚜렷하게 남기고 있다. /skullboy@osen.co.kr

Copyright ⓒ OSEN.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