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그를 대표하는 특급 외국인 투수인 헥터 노에시(29·KIA)와 메릴 켈리(28·SK)가 명품 투수전을 펼쳤다. 다만 승자와 패자는 나뉘어져야 했고, 그 중심에는 투수가 어찌 제어할 수 없는 운이 있었다.
헥터와 켈리는 6일 인천SK행복드림구장에서 열린 양팀의 시즌 15차전에 나란히 선발 등판했다. 올 시즌 유난히 자주 만난 두 선수였다. 이번이 벌써 시즌 네 번째 맞대결이었다. 그간 맞대결에서는 헥터가 2승으로 우위를 점했으나 켈리도 쉽게 물러나는 양상은 아니었다. 양팀 타선도 집중력을 발휘했다. 실제 두 선수의 맞대결 상대 평균자책점은 모두 자신의 시즌 평균(헥터 4.50, 켈리 5.17)보다 높았다.
그런데 이날은 두 선수가 상대 타선을 꽁꽁 묶었다. 특히 5회까지는 압도적인 양상이었다. 일단 5일씩을 푹 쉰 두 선수의 컨디션이 유독 좋았다. 4·5위팀의 맞대결이라 그런지 집중력도 살아있었다. 실투가 거의 없었다. 헥터는 패스트볼의 코너워크를 바탕으로, 켈리는 투심과 체인지업이 위력을 발휘하며 많은 헛스윙을 이끌어냈다.
여기에 스트라이크존도 두 선수에게는 호의적이었다. 이날은 우타자 바깥쪽이 상대적으로 후했다. 좌우로 넓었던 셈이다. 한쪽만 그런 것이 아닌, 양쪽 다 비교적 일관성이 있었다. 제구가 수준급인 두 선수에게는 공략 포인트가 됐다. 타자들은 속수무책이었다. 어느 한 구종, 한 코스를 노리기가 쉽지 않았다. 그러다보니 평범한 한가운데 공도 멀뚱히 바라보거나 타이밍이 늦어 헛스윙으로 물러나는 장면이 여러 차례 나왔다.
헥터는 몸쪽과 바깥쪽을 자유자재로 활용하며 패스트볼을 꽂아 넣었다. SK 타자들의 타이밍을 패스트볼 하나로 완벽하게 뺏었다. 켈리는 바깥쪽 패스트볼로 카운트를 잡은 뒤 떨어지는 체인지업으로 KIA 타선을 봉쇄했다. 체인지업을 노리고 있으면 과감한 패스트볼 승부로 허를 찔렀다.
“스트라이크존이 공 반 개만 넓어져도 평균자책점이 확 떨어질 것”이라는 투수들의 하소연이 어느 정도 이해가 되는 승부였다. 물론 두 선수가 그런 존을 이용할 수 있는 능력이 탁월했기에 가능한 경기 양상이었다. 켈리는 6회까지 무사사구, 헥터는 몸에 맞는 공 하나를 내줬다. 근래에 보기 드물게 볼넷이 없는 명품 투수전이 이어졌다.
2S에 몰리면 완벽하게 불리해지는 양상에서 타자들의 선택지는 넓지 않았다. 빠른 볼 카운트에서 공략하는 것이 확률적으로 유리한 승부였으나 좀처럼 정타나 장타를 만들어내지 못했다. 여기에 양쪽 모두 수비까지 완벽했으나 점수 나기가 쉽지 않은 것은 당연했다. 6회까지 켈리는 82개, 헥터는 80개의 공을 던졌다. 이상적인 투구수 관리였다.
두 선수의 승패는 결국 ‘운’이 갈랐다. 헥터는 6회 선두 김강민에게 투수 키를 살짝 넘는 2루수 방면 내야안타를 맞았다. 이어 고메즈와의 승부에서는 잡을 수 있었던 파울 플라이를 수비수들이 잡지 못한 것에 이어 3·유간 깊숙한 내야안타를 허용했다. 모두 잘 맞은 타구가 아니었다. 이어 김재현의 희생번트 때는 포수 이홍구의 대처가 재빠르게 이어지지 않으며 무사 만루에 몰린 끝에 최정의 희생플라이 때 1실점했다.
드디어 1점의 지원을 받은 켈리는 8이닝 동안 4피안타 7탈삼진 무사사구 무실점 역투로 헥터에 드디어 승리를 거뒀다. 헥터는 7이닝 5피안타 5탈삼진 1실점으로 잘 던지고도 패전을 기록했다. /skullboy@osen.co.kr
[사진] 인천=이동해 기자 /eastsea@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