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차승원의 터닝포인트, ‘지도꾼’ 김정호 [추석에 뭐볼까①]
OSEN 라효진 기자
발행 2016.09.06 14: 45

모델로서 정점을 찍었던 차승원이 배우로 변신한 지도 어느새 19년이 지났다. 정통 멜로부터 코믹 연기까지 수많은 배역들을 한 얼굴 안에 담아내며 연기 내공을 쌓아온 그다. 그런 차승원이 이번에는 다소 과감한 도전에 나섰다. ‘지도꾼’ 고산자(古山子) 김정호의 삶 속으로 뛰어든 것이다.
차승원은 특유의 도회적이고 세련된 이미지 덕에 현대극에서 많은 활약을 해 왔다. 그러나 그가 역사극에 약한 것은 아니다. 드라마로는 MBC ‘화정’에서 광해군을 연기했고, 영화 ‘혈의 누’와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에서 깊고 무게감 있는 눈빛 연기로 호평받았다. 그 중에서도 ‘화정’은 애초에 팩션을 표방한 작품이었기에, 이번 ‘고산자 : 대동여지도’(이하 고산자)는 차승원이 데뷔 이래 처음으로 실존 인물의 이야기를 밀도있게 표현한 작품이라고 봐도 좋을 듯하다.
사실 김정호에 대한 역사적 기록은 부실한 수준이다. 게다가 21년 전 KBS 1TV에서 방영됐던 3·1절 특집 ‘땅울림’을 제외하고는 극화된 적이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그래서 김정호의 인생은 식민사관의 희생양이 되기도 했다. 이를 연기하게 된 차승원의 깊은 고민이 짐작되는 대목이다.

그 밖에도 우려되는 점이 적지 않았다. 실존 인물, 그것도 칭송받는 위인을 연기한다는 것은 배우에게 득보다 실이 될 공산이 크다. 연기력과는 별개로 해당 인물의 위대함에 지배당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차승원 역시 최근 열린 ‘고산자’ 기자간담회에서 이 같은 걱정을 털어놓기도 했다.
그러나 이러한 차승원의 근심이 엄살로 생각될 정도로, 그는 영화 속에서 지도꾼 김정호로 완벽히 거듭났다. 먼저 차승원은 위인이 아닌 보통 사람으로서의 김정호라는 옷을 입은 채 슬하에 딸 한 명을 둔 아버지, 시종일관 웃음을 매달고 다니는 동네 사람, 지도 하나에 혼을 갈아 넣는 장인의 모습을 전부 표현해냈다. 특히 강우석 감독이 그토록 벼르고 벼른 인간적인 유머가 김정호의 삶에 녹아든다는 것은 기술적 측면에서도 소화하기 몹시 까다로웠을 부분인데, 차승원은 이조차도 노련하게 연기했다.
최근에는 예능 등지에서도 허를 찌르는 입담으로 사랑받고 있는 그에게 애드리브란 무기와도 같았을 터다. 그러나 차승원은 강우석 감독의 대본에 온전히 자신을 맡겼다. 직접 목판을 새기지 않는데도 촬영 몇 달 전부터 판화 연습에 매진했다. 해석의 여지가 아직까지도 남아 있는 다른 부분들은 차치하고, 오로지 지도를 향한 김정호의 열정과 장인으로서의 집착을 구현하는데 매진했다. 주연 배우가 이토록 연기에 열중하다보니, 영화의 완성도가 높을 수밖에 없었다.
차승원은 ‘고산자’를 배우 인생의 터닝 포인트가 될 작품이라고 털어놨다. 조심스럽고 겸손한 말씨에서 김정호를 향한 존경과 연기에 대한 열의가 느껴졌다. 그 결과 ‘최고의 인생’ 독고진도, ‘삼시세끼’ 차줌마도 아닌 ‘고산자’ 김정호가 탄생했다. 그의 배우 경력으로 보든, 인간 차승원의 삶으로 보든 ‘고산자’라는 작품은 중요한 전환점이 될 듯하다. /bestsurplus@osen.co.kr
[사진] ‘고산자 : 대동여지도’ 스틸컷, OSEN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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