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3일 오후 2시께, 잠실구장에서 만난 김태형(49) 두산 베어스 감독과 얘기를 나누던 중 감독실로 “홍상삼이 피칭에 들어갔어요.”라는 전갈이 들어왔다. 공교롭게도 그날 두산은 3-2로 앞섰던 경기를 마무리 이현승의 블론 세이브로 삼성 라이온즈에 넘겨주고 말았다.(3-5 패)
두산은 이현승의 부진으로 인해 뒷문이 헐거워져 올 시즌 내내 불안감을 지우지 못했던 터. 내심 대안 찾기에 골몰하고 있던 김태형 감독이 경찰야구단에서 군복무를 마치고 돌아온 홍상삼이 눈에 들어온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홍상삼은 이튿날 마무리로 나서 7-5 승리를 지켜냈다.
위기에 부닥치면 대체 세력의 분발로 용케도 고비를 잘 넘겨온 두산은 올해, ‘잘 되는 집안’의 흐름을 위 사례가 그대로 보여준다. 굳이 ‘대체 세력’이라고 표현 한 것은 양의지, 정재훈, 오재일 등이 부상으로 이탈했을 때마다 흔히 ‘화수분 야구’라고 일컬었던 대체 요원들이 훌륭하게 그 공백을 메워준 것을 ‘세력’이라고 지칭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기 때문이다.
지난해 한국시리즈에서 2001년 이후 14년 만에 삼성을 꺾고 정상에 올랐던 두산은 4일 삼성전 승리로 한 차례의 고비를 더 넘기고 2016년 프로야구 정규리그 우승을 향해 한 발 더 내디뎠다. 2위 NC 다이노스와의 거리는 7게임차. 이제 저만치 고지가 보인다.
꼼수를 부리지 않는 정공법으로 올해 정규리그를 관통해온 김태형 감독의 지도력은 2015년 한국시리즈 우승이 단순한 우연이 아니었음을 입증하고도 남는다. 일각에서는 김 감독을 두고 ‘무색(無色)’이라고도 하지만, 그는 “선수들의 능력치를 최대한 이끌어내도록 순리대로 운영한다.”는 자세를 흐트러뜨리지 않고 있다. 어찌 보면, 고작 2년차에 지나지 않는 김 감독의 수완은 고수의 ‘무심(無心)’과도 닮았다. 오히려 능수능란(能手能爛)이라고 수식해도 되겠다. 하지만 그라고 어찌 애타는 마음과 속 끓는 순간들이 없겠는가.
김태형 감독은 “(정규리그 우승에) 8부 능선을 넘어섰다”는 말에 손사래를 치며 “끝까지 가봐야 알 수 있다”고 여전히 조심스러워 했다. 그러다가 얘기 도중에는 “추석 연휴(9월 14~16일)를 지나면 알 수 있을 것이다”고 확신에 찬 어투로 바뀌었다.
-8부 능선을 넘어선 듯하다. 1승1패면 (정규리그 우승이) 가능하지 않겠나.
“글쎄요. (웃음) 시즌이 다 끝나야지 알 수 있을 것 같다. 끝까지 가봐야 한다. 여전히 변수는 있을 수 있다. 연패는 하지 말아야한다. 타격은 사이클이 있고, 다만 우리 선발들이 잘 해주고 있다.”
-당초 올해 해설위원 등 이른바 전문가들 예상은 두산을 최강으로 지목하지는 않았다. 4강에는 넣었지만. NC와 삼성, 두산, 한화를 4강에, 롯데, SK, KIA, LG를 5강 다툼 권에 분류했다.
“저는 롯데를 4강권으로 봤고, 한화와 NC는 우승 후보, kt는 유한준 등 선수보강이 많아서 잘하면 5강 승부를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봤는데. 넥센은 염경엽 감독이 팀을 잘 만들었다.”
-올해 고비, 위기는. 불펜 핵심이었던 정재훈 이탈로 위기를 느끼지 않았나.
“특별히 위기라고 꼽기보다 7월부터 8월초까지 한 팀에 특별한 연승이 없었다. 그 시기가 고비라면 고비였다. 정재훈이 빠진 것은 고비라고 보지 않았다. (정재훈이) 전반기 후반에 몸이 무거워 대안을 준비했다. 김성배를 트레이드 해온 것도 그 일환이었다. 하지만 그 시기에는 팀이 뭔가 쫒기는 듯 전체적으로 안 풀렸다. NC에 두 번이나 순위 역전을 당했고.”
-주전들, 정재훈을 비롯해 오재일, 양의지, 에반스 등의 이탈로 고심했을 듯하다.
“그렇다. 양의지 등이 빠지는 바람에 시즌 들어 거의 베스트 멤버로 하지 못했다.”
-그런데도 견뎌냈다. 대체 요원들이 잘 해준 것 아닌가.
“백업도 잘해 주었지만 선발투수들이 너무 잘해줬다. 니퍼트가 한 번 (선발을) 건너뛰긴 했지만. 에반스가 없을 때 국해성이 잘 해줬다.”
-선발은 큰 위기가 없었다고 봐야겠다.
“그렇다.”
-초반에 노경은 사태가 불거졌다. 본질은 뭐가. 노경은이 “두산에서 야구하기 싫다.”고도 했다는데. ‘선발로 기회를 충분히 준 것 아닌가’하는 시각이 우세한데.
“선수는 절대로 그렇게 생각 안할 것이다. 이를테면, 나이 쉰 살 먹은 선수가 있는데 감독이 기용을 안 해 준다면 서운하게 생각할 것이다. 선수들의 마음이 그렇다는 얘기다. 노경은은 안 쓰려고 한 게 아니었다. 중간에 쓰려고 구상했다. 선수가 서운해 할까봐 2군에서 좀 추스르고 올라오게 하려고 했는데, 전달 과정이 매끄럽지 못한 부분도 있었고…. 나는 선수가 되고 안 되고를 떠나 그 선수를 기용했을 때 팀에 끼치는 영향을 우선적으로 본다.”(김태형 감독은 이 대목에서 많은 얘기를 했지만 생략한다. 공개하기 어려운 문제들이 있었다는 것 정도로만 해두겠다.)
-지난해에는 아예 외국인 타자 덕을 보지 못했다. 올해 에반스는 복덩이 같다. 비록 초반에는 죽을 쒔지만.
“에반스가 펀치력을 갖추고 있다는 느낌은 들었다. 하지만 미야자키 캠프 때부터 2군 내려갈 때까지 공을 제대로 맞히지 못했다. 저 자세로는 어렵겠다고 생각했다. (미국에서의) 애버리지를 봤는데 기복은 없었다. 한상 꾸준했다. 그래서 다시 한 번 올려 보고 안 되면 정리할 생각이었다. 그 때 터졌다. 제가 운이 좋은 것이다. 사실 에반스는 쉬운 타격 폼은 아니다. 다만 본인만의 확고한 존, 확실한 스윙이 있으니까. 그걸로 이겨내니까 성공하는 것이다.”
-흔히 구단들이 시즌 중에도 코치를 교체한 일이 잦다.
“코치에 손을 대고 안대고는 감독 고유권한이지만 팀이 잘 나가고 있는데 굳이 문제를 일으킬 필요가 없다. 팀이 잘 나가고 있으면 코치도 잘하고 있는 것이다.”
-어느 구단이나 세대교체는 껄끄러운 부분이다. 잘 못되면 뒤죽박죽되기 쉬운데. 두산은 홍성흔 문제가 있다.
“베테랑은 감독하고 구단에 초점을 맞추면 안 된다. 팀을 위한 큰 그림을 봐야한다. 주전으로 포지션이 있으면 모르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옷을 벗는 게 순리다. 다만 가슴에 응어리가 남지 않도록 해줄 필요는 있다.”
-김인식, 김성근 감독 같은 원로격 지도자들은 “토종투수가 없다”고 입버릇처럼 말한다. 현장에서 어떻게 느끼는가.
“우리나라 현실에서 토종투수가 성공하기 쉽지는 않다. 게임 수가 많고 스트라이크존은 좁고, 못 버텨낸다. 특별히 우리가 (스트라이크존이)좁다는 것 보다 넓힐 필요가 있다. 존은 맞지만 그 기준에서 보면 투수들이 버텨내기 힘들다. 중, 고교 때 에이스들은 많이 던지고 오는데, 프로에서 10명 중 한 명 성공할까, 어렵다. 사실 2군(퓨처스리그)이 한해 100경기를 하는데 이해할 수 없다. 2군 투수들 중 아픈 선수들이 반이다. 2군을 거치면 오히려 볼 스피드가 4, 5km 더 떨어진다. 게임을 소화하기 위해 억지로 나가야 된다. 너무 벅차다.
-구단이 엔트리를 늘려야하는 게 아닌가. 2차 드래프트 응시자가 1000명에 육박하는데 900명은 실업자가 되는 게 현실 아닌가.
“함부로 얘기할 수 있는 부분은 아니지만 2차 드래프트 4순위 넘어가면 캐치볼도 못하는 선수가 수두룩하다. 개인생각이지만, 2군 경기 수는 1주일에 4게임 정도가 적당하다. 한창 더울 때는 보름 정도 쉬어야 한다. 실전 감각? 나도 2군에서 선수생활 코치 다 해봤지만 그건 전혀 상관없다. 이런 식으로 하면 투수들이 못견뎌낸다. 그 영향은 크다.
-두산으로 돌아와서, 두산의 강점은 역시 수비로 봐야겠다. 내야는 탄탄하고, 외야도 우려했던 김현수의 공백이 전혀 없는 듯하다. 박건우가 의외로 잘해주고 있다.
“김재환과 박건우가 홈런 40개 이상 때리고 있고, 타율도 3할 4푼대다. 공백은 없다.”
-오재일은 넥센에서 트레이드해 올 때부터 미래 두산의 4번 타자 재목으로 점찍은 것으로 안다. 그 동안 두각을 못 나타냈는데 오재일, 김재환의 성장이 올해 두산의 큰 힘이겠다.
“지난해에는 허경민이 나타났고, 올해 3명의 새 인물이 잘해 주고 있다. 박건우는 백업으로 지난해에도 잘했지만 김재환, 오재일, 에반스는 없었던 선수들이다. 원래 박건우는 장타력도 있다. 무조건 홈런 20개 칠 수 있는 타자다.”
-포수 양의지 대체 요원으로 나온 박세혁의 성장도 눈여겨 볼 부분이다.
“양의지는 올해 몸 상태가 너무 안 좋다. 초반에 좀 하다가 몸이 아프고 머리에 공을 두 번 맞고는 거의 경기에 못나가고 있어 아쉽다. 박세혁은 포수출신인 감독 욕심이지만 투수리드나 블로킹, 캐칭 다 좋은데, 포수는 나가면 어떤 상황이든지 간에 자기 것(투수 리드의 노하우, 기술을 일컫는 것)이 있어야 한다. 무엇보다 강단이 있어야 한다. (투수한테)사인을 낼 때 강단 없는 게 눈에 보인다. 포수는 상대 팀, 선수들에게 데이터를 주면 안 된다. 아직은 도망간다.
-두산의 불안은 불펜이다. 흔히 말하는 ‘확실한 필승조’가 구축 안 돼 있다는 시각이 많다. 마무리 이현승도 예전 같지 않다. 이현승의 대안 발굴이 과제가 아닌가.
“우선은 김강률을 많이 생각한다. 이용찬, 홍상삼 얘기도 나오고 있지만. 김강률은 아직 제구력이 미흡하고 기복이 있다. 상황 상황을 봐야 한다. 제구력과 배짱이 있어야하는데, 누구라고 꼭 집어서 말하기 어렵다.”
-이현승도 그렇고 올해 다른 구단들도 손승락이나 박희수를 봐도 마무리 투수들이 믿음을 못주고 있다.
“요즘 타자들은 마무리 투수를 의식하지 않는다. 다 같은 투수일 뿐이다. 예전엔 마무리라면 접고 들어갔는데. 우리 타자들이 성장을 많이 해 웬만해선 안 밀린다. 외국에 나가서 어떨 것이라는 식의 평가는 필요 없다고 본다. 우리나라에서 잘 하면 되지. 우리 투수들의 현실이 그렇다는 얘기다.”
-두산의 남은 불안은 역시 불펜과 마무리인가.
“각 팀마다 뒤쪽 불안은 별로 다르지 않다. 우리는 나름대로 나가면 막을 때는 막아주고. 블론 세이브는 그래도 우리 팀이 제일 적지 않나. 그렇게 생각하면 마음 편하다. 없니, 있니 한다고 하늘에서 투수가 떨어질 것도 아니고.”(웃음)
-김 감독이 추구하는 야구 스타일이 좀체 번트를 대지 않고 적극적인 공격 야구, 정공법을 선호한다는 평가에 대한 생각은.
“지금은 웨이팅이 없다. (볼카운트가) 3볼이라면 모르지만 8번 타자나 대타라도 적극적으로 치라고 한다. 그래야 애버리지가 올라간다. 구태여 번트로 아까운 아웃카운트를 버리고 싶지 않다. 물론 우리 중간 투수들을 보고, 경기 후반에는 상황에 따라서 하긴 하지만. 노아웃 1, 2루에서 번트를 대는 것은 아깝다 후반에 한 점이 꼭 필요한 상황이라면 모르지만.”
-스스로 돌아보는 김 감독의 야구 색깔은.
“김인식, 김경문 감독 밑에서 꼼수 안 부리고 무리수를 두지 않고 깨끗하게, 상대방을 자극하지 않는 야구를 배웠다. 주위에서 ‘무색’하다는 소리도 듣고 있지만 사실 야구는 선수들이 하는 것이다. ‘아무것도 안하는 것이 아니라 순리대로 선수들이 능력치를 최대한 발휘할 수 있도록’ 하는 게 감독이다. 나도 게임을 지면 밤잠 못자고, 오더를 짜느라 밤샘하는 게 하루 이틀 아니지만, 그건 다 감독 몫, 책임져야할 일이다. 타자에게 웨이팅 사인을 냈는데도 볼을 쳐서 결과가 안 좋으면 속이 부글부글 끓지만 다 감독 몫, 감독이 감당해야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초보감독으로 지난해 초반엔 시행착오도 많았고 제 색깔을 내보려고 했지만 굳이 무리수를 둘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다. 선수 능력 안에서 순리대로 하려고 한다.
김태형 감독이 지난해 부임한 이후 두산의 한결같은 강세는 상투적이지만, 그의 선수에 대한 신뢰와 일관성 있는 선수단 운영의 힘일 것이다. 이제 두산은 2016년 프로야구 정규리그 우승은 물론 앞에 놓여 있는 더 큰 산, 한국시리즈 연패를 향해 뚜벅뚜벅 걸어가고 있다.
/홍윤표 OSEN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