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쎈 승부처] 1회 채병룡 승부수, SK는 무슨 생각?
OSEN 김태우 기자
발행 2016.09.02 22: 11

보통 팀에서 가장 뛰어난 불펜 투수는 마무리로 활용한다. 그런데 세이버매트릭스 관점에서는 논쟁이 있다. 3점차로 앞선 9회 이 자원을 마무리로 활용하는 것보다, 그 전의 위기 상황에서 활용하는 것이 팀의 승리 가능성을 높여준다는 것이다.
그 전에 위기 상황에서 앞선 투수가 버티지 못하고 경기가 뒤집어지면 이 최고 불펜 자원을 써보지도 못하니 일리가 있는 셈이다. 그런데 2일 고척스카이돔에서 이런 논쟁을 연상해볼 수 있는 사례가 있었다. 마무리 투수는 아니지만, SK는 팀 내 최고 셋업맨인 채병룡을 1회 투입하는 강수를 썼다.
채병룡은 지난 8월 28일 한화전에서 1이닝, 30일 KIA전에서 1이닝을 던졌다. 최근 투구 이닝이나 투구수에는 여유가 있는 편이었다. 3일을 푹 쉬기도 했다. 다음날 휴식을 취한다고 예정했다면 30개 정도의 투구수는 충분히 가능하고 또 예상 가능한 수치이기도 했다. 이에 SK는 선발 임준혁이 흔들릴 때를 대비해 채병룡을 곧바로 붙이는 초강력 승부수를 준비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3-0으로 앞선 1회 선발 임준혁이 아웃카운트 하나를 잡는 동안 홈런 한 방을 포함해 5실점하자 SK는 곧바로 채병룡을 투입했다. 더 이상 상대의 기를 살려주지 않겠다는 의지였다. 최근 연패에 빠진 SK로서는 고려할 만한 승부수였다. 그리고 이는 일단 성공을 거뒀다. 채병룡은 2회까지 추가 실점을 하지 않고 넥센의 기세를 한풀 꺾었다. 팀 타선도 2회 1점을 만회하며 1점차까지 추격했다.
엔트리 확대로 대기하고 있는 투수들이 많다는 점을 고려하면 SK의 채병룡 강수는 획기적인 성공으로 이어질 수도 있었다. 경기 분위기가 넘어가 추격하기 쉽지 않은 점수차가 되면 채병룡 카드의 활용도는 크게 떨어진다는 점에서 아웃카운트 5개의 가치는 꽤 커 보였다. 그런데 문제는 3회였다. 1회 기민했던 SK 불펜이 무슨 이유인지 무뎌졌다. 그리고 이는 상대에게 전세를 완전히 내주는 빌미로 작용했다. 눈 뜨고 경기가 넘어갔다는 표현이 맞았다.
채병룡은 선발 경험도, 롱릴리프 경험도 풍부한 선수지만 어쨌든 올 시즌은 계속 불펜으로 뛰었다. 투구수는 대부분 15~30개 사이였다. 40개 이상을 던진 날도 있었으나 전체 60경기 중 4경기에 불과했다. 채병룡은 2회까지 28개의 공을 던졌다. 3회까지 막아주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었지만 상황에 따라 어느 시점에서는 교체 타이밍도 대비하고 있을 법했다.
문제는 채병룡이 3회가 시작되자마자 김민성과 대니돈에게 연거푸 2루타를 맞고 1점을 내줬다는 것이다. 이 시점까지의 투구수는 39개였다. 1차 교체 타이밍이었다. 그러나 SK는 채병룡을 밀어붙였다. 결국 1사 후 박동원에게 우중간 2루타를 맞고 또 1점을 내줬다. 투구수가 50개라는 측면에서 임병욱 고종욱으로 이어지는 좌타 라인이 2차 교체 타이밍으로 보였다. 하지만 SK 벤치는 미동이 없었다. 결국 채병룡은 임병욱에게 중월 투런포를 맞으며 3회에만 4실점했다.
데이터를 보면 그 이유를 유추해볼 수는 있다. 채병룡은 올 시즌 넥센전에 강했고(평균자책점 0.84), 박동원 김하성 임병욱 고종욱을 상대로 한 13타석에서 단 한 차례도 출루를 허용하지 않았다. 상대 전적과 상대 타순을 보고 3회까지를 모두 책임지게 하겠다는 전략을 미리 들고 나온 것으로 풀이된다. 납득은 할 수 있다.
하지만 박동원을 상대할 시점 채병룡의 투구수는 이미 40개가 넘은 상황이었다. 이전 데이터가 이처럼 많은 투구수에서 쌓인 것은 아니기 때문에 과거와 같은 힘이 발휘될지는 알 수 없었다. 무엇보다 맞아 나가고 있었다. 그렇게 3회에 2루타 3방, 홈런 한 방이 쏟아진 상황에서도 움직이지 않은 SK는 그대로 무너졌다. 2회까지의 좋은 흐름을 놓치며 끝내 9-10으로 졌고, 53개를 던진 채병룡은 주말 2연전에서도 활용하기가 쉽지 않아졌다. 의도는 좋았지만 후속 조치가 아쉬웠다. /skullboy@osn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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