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타니 쇼에히(22·니혼햄)가 타격왕에 도전한다? 투수가 본업이라는 점에서 말도 안 되는 이야기처럼 들린다. 그러나 결코 꿈과 같은 이야기는 아니라는 지적도 있다. 올해와 같은 수치를 낸다는 가정이라면, 내년에는 도전할 만한 수치다.
오타니는 올 시즌 투수보다는 타자로서 더 큰 화제를 모으고 있다. 물집 증세로 인한 투구 밸런스 붕괴로 아직 선발 복귀를 하지 못하고 있는 탓이다. 그래도 연봉값은 톡톡히 한다. 타석에서 맹활약이다. 오타니는 1일까지 올 시즌 85경기에서 타율 3할3푼, 20홈런, 54타점을 기록했다. 전문 타자들에 비해 많은 경기에 나서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홈런은 퍼시픽리그 7위다. 타석당 홈런 개수로 보면 단연 최고다.
이런 오타니는 규정타석에 미달이다. 니혼햄은 1일까지 121경기를 치렀고 규정타석은 375타석이다. 오타니는 311타석을 소화 중이다. 60타석 이상이 모자라는 셈. 남은 경기에서 모두 타자로 출전해 하루에 네 타석 정도를 들어선다고 가정하면 최종적으로 400타석을 조금 상회할 것으로 예상된다. 역시 규정타석(443타석)에는 미달이다. 정상적인 상황이라면 타격 순위표에 들어갈 가능성은 거의 없다.
이제는 본업이 헷갈릴 정도지만 어쨌든 투수인 오타니가 내년에도 규정타석을 채울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다만 구멍은 있다. 한·미·일 모두 규정타석을 채우지 못한 선수라고 하더라도 타격왕을 따낼 수 있는 길이 있다. ‘필요 타석수에 미달한 타자가 그 부족분을 타수로 가산하고도 최고의 타율, 장타율 및 출루율을 나타냈을 경우에는 그 타자에게 상을 수여한다’라는 조항이 있어서다. MLB에는 1996년 토니 그윈이 이 조항에 힘입어 타격왕을 수상했다.
현재 오타니의 페이스를 고려, 모자랄 것으로 예상되는 약 40타석을 무안타로 치면 타율은 3할1푼 정도가 된다. 이는 퍼시픽리그 2위에 해당된다. 11일까지 퍼시픽리그 타율 1위는 카쿠나카 카츠야(지바 롯데)로 3할4푼2리, 2위는 니시카와 하루키(니혼햄)로 3할7리다. 오타니는 그 사이에 있다. 막판 타격 페이스를 좀 더 끌어올린다면 이 수치는 좀 더 올라갈 수도 있다.
물론 이 예외조항은 오타니가 모자란 타석을 제하고도 리그 1위 타율이라는 것을 가정하기에 2위는 인정되지 않는다. 사실상 카쿠나카가 타격왕을 예약한 만큼 올 시즌에는 큰 의미가 없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오타니의 타격왕 도전이 결코 망상만은 아님을 보여주는 수치이기도 하다. 오타니가 내년에 타자로 더 발전하고, 어쩌다 경쟁자들이 집단 부진(?)에 빠지면 도전이 현실화될 수도 있어서다.
오타니는 올 시즌 타자로서도 리그 정상급의 확실한 실적을 보여줬다. 때문에 니혼햄도 오타니의 타격 재능을 최대한 활용하기 위해 머리를 짜내고 있다. 올 시즌에도 한 경기에 투수와 타자로 모두 나서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최근에는 선발 지명타자로 출전한 뒤 마무리로 뛰는 방안도 거론된다. 오타니 또한 투·타 겸업을 희망하는 만큼 올해보다 더 많은 타석에 들어설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다승왕과 타격왕의 동시 도전. 만화 같은 이야기지만, 오타니가 이 만화의 마지막 도전자가 될 것은 분명해 보인다. /skullboy@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