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프로스포츠산업이 지금까지 기업들의 '얼굴 마담'이었다면, 이제는 지역사회에 뿌리를 둔 '풀뿌리 지역스포츠'로의 변모를 꾀한다.
대부분의 한국 프로스포츠는 대기업을 선봉으로 한 기업들의 투자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가장 규모가 큰 야구와 축구는 물론이고 배구, 농구, 골프 등 프로스포츠 대부분이 기업들의 지원 없이는 정상적인 운영이 어려운 형태로 돼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기장은 지방자치단체(이하 지자체)에 소속돼야 하는 법률 때문에 구단들의 지원이 한정적이고 소극적일 수밖에 없다. 다른 입장에 있는 연고 지역 지자체 역시 기업 위주의 프로스포츠 환경에 적극적으로 대처하지 않아 구단들과 마찰을 빚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그런데 조금씩 스포츠산업 환경이 바뀌고 있다. 가장 대중적인 인기를 얻고 있는 '매일 스포츠'인 야구부터 야구장이 신설되고 구단들의 적극적인 투자로 야구장이 개선되고 있다. 그리고 문화체육관광부가 스포츠산업의 자생력을 높이기 위해 공포한 '스포츠산업 진행법 개정안'이 8월 4일부터 시행되면서 지자체의 스포츠산업 참여 활성화 역시 기대를 모으고 있다.
▲ 야구장 신설 등 인프라 대폭 개선
지난 2012년 3월 당시 문학구장에서 시범경기를 치르며 한국 프로야구 무대를 처음 밟은 박찬호(당시 한화 이글스)는 등판 후 소감을 묻는 질문에 "한국 야구 시설이 이렇게 낙후된지 몰랐다"고 답해 주위를 당황하게 했다. 관계자들이 실소를 지을 수밖에 없었던 것은 문학구장이 당시 8개 구단의 7개 구장 중 가장 최근인 2002년에 지어진 건물이었기 때문이다. 당시만 해도 삼성 라이온즈는 1948년 개장한 대구시민야구장을 쓰고 있었고 KIA 타이거즈도 1965년 완공된 무등야구장을 사용하고 있었다.
건물의 낙후 정도를 넘어 안전성까지 위협받고 있던 야구장이 하나씩 바뀌고 있다. KIA가 2014년 새로 완공된 광주기아챔피언스필드로 인사했고 삼성과 넥센 히어로즈는 올해 나란히 새 야구장인 대구삼성라이온즈파크와 국내 최초의 돔구장인 고척스카이돔으로 둥지를 옮겼다. 그리고 인천SK행복드림구장으로 이름이 바뀐 문학구장도 리모델링을 거쳤고 수원야구장은 kt wiz의 입성과 함께 새단장을 하면서 수원케이티위즈파크라는 이름을 갖게 됐다.
여전히 2만 명 이상을 수용할 수 있는 야구장이 적고 새 구장들 역시 선수단과 관중들의 편의에 대한 불만의 목소리가 많이 나오고 있지만 조금씩 환경이 바뀌어가는 것은 긍정적인 일이다. 시설의 주인인 지자체들이 그동안의 소극적인 자세를 벗고 주민들의 문화 생활을 위한 새 구장 건립의 필요성을 느낀다는 것 자체도 큰 발전이다. 새 구장을 짓고 시설을 리모델링하는 과정에서 지자체와 프로구단들 간의 소통이 많아질 수록 한국 프로스포츠 산업에는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관중들 역시 더 나은 환경에서 스포츠를 관람할 수 있어 스포츠산업의 이미지 개선에도 효과가 있다.
▲ 바뀐 스포츠산업 진흥법과 향후 기대효과
그리고 시설 문제를 떠나 프로스포츠 운영 전반이 바뀔 수 있는 새 법률 개정안이 마련됐다. 지난달부터 시행되는 법률 개정안은 프로구단이 지자체 소유의 연고 경기장에 대해 수의계약으로 최대 25년에 한해 장기 임대할 수 있고, 시설이 낙후된 경기장은 프로구단이 직접 개·보수를 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 또한 시·도민구단에 대해 지자체 등이 사업비를 지원할 수 있는 근거를 신설했고, 프로 경기장이 스포츠산업진흥시설로 지정되면 시설 설치비 지원을 가능하게끔 정했다.
이에 따라 지자체 또는 공공기관이 프로스포츠단 창단에 출자·출연할 수 있도록 하고, 프로스포츠단 사업 추진에 지원할 수 있는 경비의 범위를 정하게 하는 한편 지자체의 장이 프로스포츠단에게 공유재산을 사용·수익하게 하는 경우 공유재산의 사용료와 납부 방법, 감면·감액 등에 관한 사항을 조례로 정할 수 있게 했다. 즉 지자체의 프로스포츠단 창단을 독려해 지역 스포츠 활성화 기반을 탄탄하게 만들겠다는 정책이다.
지금까지는 시·도 소유의 시설인 경기장을 임대 형식으로 사용하고 있는 구단이 시설을 개선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1군이든 2군이든 시설이 낙후되거나 고장나도 지자체의 예산이 별도로 편성되기만을 바라며 손을 놓고 있어야 했다. 그러나 이번 진흥법 개정안으로 구단들이 직접 개·보수를 할 수 있게 되면서 좀 더 관중들이 관람하기 편하고 선수들의 경기력에 도움이 될 수 있는 방향으로 경기장이 개선돼 스포츠산업 환경을 발전시킬 수 있는 방법이 생겼다. 장기임대가 가능해지면서 구단들도 책임감을 갖고 경기장을 운영하게 됐다.
당장 법률이 바뀐다고 해서 지자체들과 프로구단들간의 해묵은 갈등이 모두 사라지기는 어렵다. 서울시는 잠실구장의 임대료를 턱없이 높게 올리며 두 구단에 압박을 가하고 있고 광고료를 모두 회수하는 초강수를 둬 많은 비판을 받기도 했다. 구단과 지자체가 공동 투자한 광주와 대구도 다시 구단이 시설을 개조하는 과정에서 갈등을 빚었다. 반면 SK는 문학야구장을 포함한 문학경기장 전체를 위탁해 운영하고 있는데 마케팅, 홍보, 운영 면에서 다른 지자체, 구단들이 본받아야 할 다양한 예시들을 많이 만들고 있다. SK 같은 선례가 많이 나와야 지역스포츠가 탄탄하게 자리잡을 수 있다.
이제는 지자체가 지역 프로스포츠를 구단의 것으로 방치시킬 수 있는 때가 지났다. 프로스포츠 시설의 소유권을 주장하기 위해서는 지자체들도 책임을 지고 스포츠문화 발전에 도움이 돼야 한다. 프로구단들 역시 기업 홍보와 이미지 제고를 위한 수단을 넘어 지역 주민들을 생각하는 '풀뿌리 문화'로서의 스포츠사업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 이번 법률 개정안이 스포츠산업 발전에 기여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autumnbb@osen.co.kr
[사진] 넥센 히어로즈의 홈구장인 고척돔구장(위)과 피츠버그 파이어리츠의 홈구장 PNC 파크 전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