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 외국인 타자 헥터 고메즈(28)는 올해 20-20클럽 가입에 도전하고 있다. 이미 20개의 홈런을 쳤고 16개의 도루를 성공했다. 도루 4개만 채우면 20-20이다.
부침이 있기는 했으나 타율도 2할8푼1리다. 물론 타고투저의 시대에서 아쉬운 성적이기도 하다. 그래도 고메즈의 포지션이 수비 부담이 매우 큰 유격수라는 점을 고려할 때 나쁜 성적도 아니다. 당초 SK는 고메즈를 영입할 당시 “타율 2할8푼에 20개 이상의 홈런, 20개 정도의 도루면 공격에서는 충분히 괜찮다”라고 평가했었다. 5방의 1회 리드오프 홈런이 말해주듯 일발장타력은 분명 매력적이다. 공격 지표는 기대 정도의 수준이다. 문제는 수비다.
고메즈는 올 시즌 벌써 21개의 실책을 기록 중이다. 고메즈는 4월 부상으로 한동안 빠져 있던 시기가 있어 팀의 122경기 중 103경기에만 나섰다. 그럼에도 실책 개수는 리그 전체 1위다. 8월 말 현재 20개 이상의 실책을 기록한 선수는 고메즈가 유일하다. 수비율도 0.957로 유격수 최하위권이다. SK가 재계약을 놓고 고민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구단의 한 고위관계자는 “수비를 보고 데려온 선수다. 시즌 초 선수에게도 이를 직접적으로 이야기하고 또 강조했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고메즈의 실책은 꾸준히 나온다. 여기에 고메즈의 실책이 실점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잦다. 이른바 ‘클러치 실책’이다. 국내 선수라면 모를까, 외국인 선수라는 점에서 허탈감은 더 심하다. 어깨는 최상급이지만 무게 중심이 높아 공을 뒤로 흘리는 경우도 많고, 흔히 야구계에서 말하는 ‘잔발’이 없어 포구도 불안하다. 그나마 송구 정확도가 시즌 초에 비해 많이 나아졌다는 게 위안이다.
SK는 메릴 켈리를 일찌감치 재계약 대상자로 확정지었다. 시즌 뒤 협상에 최선을 다할 생각이다. 브라울리오 라라는 현 시점에서는 계약 연장이 어려운 분위기다. SK는 김광현이 해외 진출을 선택할 경우 전력 손실을 만회하기 위해 거물급 외국인 투수 영입을 추진하고 있다. 이처럼 비교적 전선이 명확한 두 선수와는 달리, 고메즈는 아직도 오리무중이다. 한 관계자는 ‘계륵’이라는 표현으로 고메즈의 현 상황을 설명했다.
외인 유격수는 매물이 많은 외야나 코너 내야를 볼 수 있는 선수보다 희소성이 높다. 그만큼 좋은 선수를 구하기 힘들다. 고메즈와 이별한다고 해도 새 외인 유격수가 고메즈보다 나은 선수일지는 장담하기 어렵다. 외인 유격수를 1년 더 쓴다고 가정하면 차라리 한국 무대에 적응되어 있는 고메즈가 더 나은 선택일 수 있다. 경기장 안팎에서의 인성도 좋은 편이다. 유쾌하고, 융화되려는 노력을 한다. 수비만 잘하면 사실 그렇게 흠잡을 곳이 없다.
SK는 지난해 팀의 주전 유격수를 맡았던 김성현을 2루에 고정시킨다는 계획이다. ‘2루수’ 김성현의 올 시즌 수비율은 0.981로 뛰어난 축에 속한다. 타율도 3할 이상을 기록하는 등 공·수 모두에서 매우 견고한 성적을 내고 있다. 타 팀 2루수들이 별로 부럽지 않다. 잘하는 선수의 포지션을 괜히 다시 바꿀 이유는 없다. 합의판정제도 시행으로 2루수의 어깨 또한 대단히 중요해졌다. 이에 미래 유격수로는 박승욱 최정용 등을 염두에 두고 있다.
언제까지나 내야 수비의 사령탑인 유격수를 외인으로 쓸 수는 없다. 그러나 아직 어리고 경험이 적다는 것이 문제다. 경험이 쌓이고 기량이 성숙해질 때까지 시간이 필요하다. 특히 수비는 그렇다. 오지환(LG)이 그랬고, 김하성(넥센)도 그 단계를 밟고 있다. 쏟아지는 실책은 세금처럼 내야 할 수도 있다. 이를 감수할 수 있느냐도 포인트다. 결국 고메즈에 달렸다. 확실히 달라진 모습을 보여준다면 ‘1년’을 더 갈 수도 있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면 SK의 결단과 모험이 빨라질 수도 있다. /skullboy@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