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퍼스타운은 뉴욕 근처에 위치한 작은 마을이다. 자동차로 꼬박 3시간 이상을 달려야 한다. 인구라고 해봐야 2000명 남짓에 불과한 산골마을이다. 사람들의 이목을 끌만한 상업 시설이 있을 리 만무하다. 그런데 이 쿠퍼스타운에는 매년 수많은 인파가 몰린다. 미국야구 명예의 전당(Hall of Fame)과 박물관이 있기 때문이다. 이곳에서 야구의 규정이 만들어진 것으로 알려져 있고 그 덕에 1933년 명예의 전당이 이곳에 자리 잡았다.
명예의 전당과 박물관 관람은 미국 야구팬들의 ‘성지순례’ 코스로 통한다. 특히 명예의 전당 입성식이 있는 날에는 수만 명의 인파가 몰린다. 매년 차이는 있지만 5만 명에서 10만 명 사이의 팬들이 자신이 좋아하는 선수들이 명예의 전당에 오르는 것을 지켜보기 위해 이곳을 찾는다. 메이저리그 사무국도 다양한 행사로 팬들의 발걸음을 불러 모은다.
지역 경제는 이런 팬들로 인해 돌아간다. 통계적으로 쿠퍼스타운에 오는 팬들은 하루에 인당 500달러 이상을 쓴다. 최소 5만 명이 온다고 가정하면, 하루 사이에 팬들이 쿠퍼스타운 및 근교에서 쓰는 돈만 무려 2500만 달러(약 280억 원)라는 이야기다. 연중 찾는 팬들이 쓰는 돈까지 합치면 이 산골마을에는 분이 넘칠 정도의 돈이 돈다. 야구가 지역 경제에 이바지하는 효과를 상징하는 사례다.
프로스포츠가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우리 생각 이상으로 크다. 우선 고용 효과가 만만치 않다. 한 구단을 운영하기 위해 수많은 사람들이 경기장에 동원되기 때문이다. 경기장에서 핫도그를 파는 직원만 쳐도 수십명이니, 수백명의 인력들이 MLB 경기장에 동원된다. 경기장 주위 상권에 주는 효과까지 합치면 풍선은 더 커진다. 여기에 스포츠단을 통해 투영되는 지역에 대한 자부심, 우리보다는 밤에 할 것이 마땅치 않은 미국인들의 여가 생활 보장까지 고려하면 무형적인 효과는 더 크다.
이를 잘 아는 미국은 지방자치단체(이하 지자체)들이 스포츠단을 유치하기 위해 애를 쓴다. 구단도 인프라 구축을 위해 많은 돈을 쓰지만, 지자체들이 내놓는 당근도 만만치 않다. “더 좋은 조건을 제시하는 곳으로 연고지를 옮길 수도 있다”라는 말은 미 4대 프로스포츠에서 심심찮게 들리는 이야기고 실제 그런 경우들이 있다. 실제 뉴욕 주는 MLB 최고 명문인 뉴욕 양키스의 마음을 잡기 위해 엄청난 건설비가 들어간 양키스타디움의 임대료를 40년간 400달러, 연간 10달러만 받고 있다. 대신 주차장 권리를 받아 수익을 창출하고 있다. 이 수익 자체로도 큰 세원 징수원이다.
가까운 일본 역시 프로스포츠를 유치하기 위한 지자체들의 노력이 계속되고 있다. 도쿄에 연고지가 있던 니혼햄은 2003년 연고지를 북동쪽의 삿포로로 옮겼다. 도쿄에서는 요미우리 등에 밀려 큰 인기를 구가하지 못했던 니혼햄이지만, 그래도 도쿄와 삿포로의 상권 자체는 비교가 안 됐다. 그럼에도 월드컵을 위해 지은 삿포로돔의 활용 방안, 그리고 최고 인기 스포츠인 야구단 유치에 고민하던 삿포로는 파격적인 삿포로돔 임대료 등을 내놓으며 마음을 돌려놓는 데 성공했다. 니혼햄도 연고 이전 초기 ‘훗카이도’를 구단명 앞에 붙이며 지역 밀착 마케팅에 애를 쓴 끝에 지금은 완전 정착에 성공했다.
미·일과는 달리 우리는 아직 지자체가 ‘갑’에 가깝다. 이는 숨길 필요도 없는 사안이다. 지금도 ‘갑’인 지자체의 심기를 행여 건드릴까봐 바짝 엎드려있는 구단들의 하소연은 눈물겹다. 당장 지자체가 “경기장에서 방을 빼라”면 경기를 치를 공간조차 없는 구단들이 대부분이다. 일부 지자체에서는 야구단 유치를 희망하고 있지만 정작 경기장 시설 및 지원책 부족으로 물거품이 되는 경우가 많았다. 한 구단 관계자는 “구단으로서는 기존 팬 베이스 때문에 연고 이전은 정말 결정하기 어려운 카드다. 현재 야구단을 품고 있는 지자체들이 큰소리를 치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고 말한다.
이에 야구계에서는 지자체가 당장의 임대 및 부대 수익에 눈이 멀어 큰 그림을 보지 못한다는 비판의 목소리로 가득하다. 잠실의 경우는 LG와 두산이 부담하는 임대료가 3년 단위로 치솟는 추세다. 롯데가 위치한 사직구장도 크게 다르지 않다. 일부는 경기장 개·보수나 관중 편의 시설 개선에 쓰이기도 하지만 상당수는 지자체의 배를 채운다. 심지어 구단이 경기장 건설비를 댄 광주와 대구조차도 임대를 둘러싼 불협화음이 불거졌다. 완공된 지 채 1년도 지나지 않아서다. 결국 구단의 연고지 투자 개념은 희미해질 수밖에 없다. 바뀌지 않는 현실, 혹은 역으로 지자체의 목소리가 커지는 현실에 몇몇 구단들은 투자 의지마저 꺾이고 있다. 장기적으로 볼 때 지자체의 손해다.
반면 긍정적인 사례도 나오고 있다. 인천문학경기장을 위수탁하기로 한 SK의 경우다. SK는 문학야구장을 포함, 박태환 수영장을 제외한 문학경기장 모두를 운영하고 있다. 시에서는 가이드라인만 정해줄 뿐 운영에 대한 자율성을 보장한다. 구단의 사활이 달린 문제인 만큼 온갖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다 나오고 있다. 그 결과 관중들의 편익은 증대됐다는 평가다. SK는 이렇게 얻은 수익의 일부를 연고지인 인천광역시에 사용료로 낸다. 인천광역시에서도 긍정적인 평가가 잇따른다.
어차피 지자체나 구단이나 궁극적인 목적은 팬들의 만족이다. 아무래도 전문 인력이 집중될 수밖에 없는 구단의 자율성을 보장할 때, 구단과 지자체가 충분히 윈윈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직접적인 사례다. 이제는 지자체들이 좀 더 전향적으로 나설 때가 됐다. ‘시민들의 위한 행정’이라는 구호는 상생으로 충분히 이뤄질 수 있다. ‘한집에서 함께 살면서 끼니를 같이 하는 사람’이라는 식구라는 단어로 뭉쳐야 진정한 스포츠 산업 발전도 가능하다. /skullboy@osen.co.kr
[사진] SK 와이번스의 홈구장인 문학구장(위)과 미국 메이저리그 피츠버그 파이리츠 홈구장인 피츠버그 PNC 파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