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h!쎈 초점]故구봉서, 부산국제코미디페스티벌, 웃음이란?
OSEN 손남원 기자
발행 2016.08.28 08: 37

[OSEN=유진모의 취중한담] 지난 26일 부산 해운대구 우동 영화의 전당에서는 제 4회 부산국제코미디페스티벌 개막식이 열렸다. 그 열기가 공연으로 이어져 9일간의 대장정에 대한 기대감을 증폭시킬 즈음인 이튿날 오전 1시께 원로 코미디언 구봉서가 90번째 생일을 2달여 남기고 노환으로 세상을 떠났다.
2012년 부산 바다축제의 한 코너로 시작돼 이듬해 아시아 최초의 코미디 페스티벌이라는 명분으로 정식 출범했지만 한 달여 뒤 열리는 부산국제영화제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의 소규모로 시작된 부산코미디페스티벌이다. 초기엔 KBS2 ‘개그콘서트’ 출연진이 주축이었던 국지적인 한계가 있었고, 여기에 더해 주축이 된 김준호 등이 한 기획사를 중심으로 한 소송에 휘말리면서 잠시 주춤했지만, 지난해부턴 확연하게 다른 분위기를 보인다. 이제 명실상부한 ‘한국이 주도하는 아시아의 코미디축제’란 정체성이 확고해 보인다. 당연히 그 밑바탕엔 전쟁 후 척박하고 지난한 삶을 살아온 서민들에게 웃음을 안겨줌으로써 내일을 위해 애써 힘을 내게끔 용기를 북돋워준 구봉서 등 원로 코미디언들이 있었다.
1958년 영화 ‘오부자’에서 막내 역할을 맡아 인기를 얻은 뒤 막둥이라는 별명으로 연예활동을 펼친 구봉서는 영원한 콤비 배삼룡을 비롯해 곽규석 김희갑 서영춘 등과 함께 1960~70년대를 풍미하며 한국 희극계를 이끈 대표주자다.

그는 각종 공연을 비롯해 라디오 TV를 오가는 가운데 400여 편의 영화에 출연하는 등 한국 희극배우의 대명사라는 수사가 전혀 어색하지 않을 만큼 맹활약을 했다.
4회째 맞는 부산코미디페스티벌은 행사 기간을 9일로 연장할 정도로 자신감을 보인다. 이름에 걸맞게 ‘개그콘서트’ 규모에서 완전히 탈피해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희극인들이 대거 참여하는 가운데 11개국 30개 팀이 무대를 꾸민다. 다 구봉서를 포함한 원로 희극인들의 노력이 밑거름이 된 덕이라 아니할 수 없다.
몽테뉴는 “가장 명백한 지혜와 징표는 항상 유쾌하게 지내는 것”이라고, 패티우텐은 “당신이 웃고 있는 한 위궤양은 악화되지 않는다”고 오래전에 말했다. 우리나라에도 ‘일소일소일노일노(一笑一少一怒一老)’ ‘소문만복래(笑門萬福來)’ 같은 격언이 오랫동안 전해 내려왔다.
이는 오늘날 과학으로도 입증되고 있다. 40년 동안 웃음과 건강의 역학관계를  연구한 스탠퍼드 의대 윌리엄 프라이 박사는 웃으면 자연 진통 효과를 보고 혈액순환이 좋아지며 혈압이 내려간다고 발표했다. 또 스트레스와 분노, 긴장 등을 완화시켜 심장마비와 같은 돌연사를 예방하고 감기와 같은 감염질환은 물론 암이나 성인병에 대한 면역력과 저항력을 높인다고 했다. 
한방에서도 감정에 따라 인체 기(氣)의 흐름이 달라지는데 웃음으로 인해서 생기는 즐거운 감정은 기의 흐름을 부드럽게 하니 슬픈 느낌은 즐거움으로 치료할 수 있다고 했다.
억지로라도 쾌활하게 웃으면 몸속 650개 근육 중 231개가 움직임으로써 자연스러운 웃음과 동일한 효과를 볼 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현대인의 얼굴엔 웃음이 점점 사라진다. 특히 요즘 한국인에게서는 더욱 그렇다. 13년전 모 한방병원장의 보고에 의하면 6살 아이는 하루에 300번 웃지만 성인은 겨우 7번 웃는다고 했다. 하지만 현재 보통 성인들이 하루에 ‘무려’ 7번이나 웃을 일이 있을까?
그래서 부산코미디페스티벌의 의의는 각별하다.
동서고금을 통틀어 코미디의 황제는 아직도 찰리 채플린이다. 그의 영화는 모두 걸작이지만 그중에서도 특히 노동자들의 감동을 자아내게 한 ‘모던 타임즈’는 그 스스로 뿜어내면서도 정작 관객들에게 그가 갖는 감정인 짙은 페이소스와 유머를 버무린 수작이다.
영국 산업혁명을 소재로 미국의 급변하는 산업화와 인격의 가치의 상실을 그린 그는 그야말로 관객을 웃겼다 울렸다하며 쥐락펴락하는 천재적인 재능을 보인 바 있다.
코미디란 그런 것이다. 이런 영화를 보고 공장장부터 시작해 재벌총수나 집권자 등 ‘있는 자’들은 절대 웃지 않는다. ‘저게 뭐지?’ ‘의미는 뭐지?’라는 의문을 품거나 저의를 의심할 뿐 노동자의 애환 따윈 애당초 관심이 없다. 그들에게 영화 속 돌아가는 시계나 노동자를 옭아매는 자동 컨베어벨트 등과 노동자는 동격이기 때문이다.
‘웃는 얼굴에 침 뱉으랴?’는 속담이 있다. 그건 곧 ‘말 한 마디에 1000냥 빚을  갚는다’는 속담과 궤를 같이 한다.
세상에서 가장 오래됐고, 가장 많은 종을 가진 과중의 하나인 개미과의 개미는 언어가 없다. 포유류처럼 울지도 않는다. 그럼에도 그들은 페로몬을 통해 소통을 한다. 문명이 낳은 문자와 언어로 사회와 국가를 구성한 인간에게 소통은 당연히 중요하다. 웃음제조란 직업을 가진 코미디언이 세월이 흐를수록 연예계의 핵심에 가까워지는 이유다.
할리우드 영화 ‘왓치맨’은 은퇴한 영웅 자경단을 소재로 한다. 사건은 그 자경단 중 원로인 코미디언이 살해당함으로써 시작된다. 2m 가까운 키에 130kg 정도의 거구인 그의 별명이 코미디언이고 트레이드마크는 귀여운 스마일 펜던트다. 그는 케네디 암살자다. 모든 자경단원들이 스스로 움직인 것과 달리 ‘보이지 않는 힘’의 조정을 받았던 것이다. 게다가 그는 경찰이 파업한 상황에서 시위대를 무력으로 강제 진압하며 약자를 향한 폭력을 서슴지 않았다.
이건 반어법이다. 이 어두운, 암울한 세상에서 서민들의 정서를 위무함으로써 팍팍한 삶에 그나마 여유를 갖고 내일을 꿈꾸도록 만들어야 할 진정한 ‘코미디언’들이 그 반대의 만행을 저지르고 있다는 교묘한 은유다.
현재 개그맨으로 통칭되는 희극인들의 위상은 구봉서나 임하룡의 전성기와는 사뭇 다른 게 사실이다. 그건 역으로 그만큼 서민이 웃을 일이 희박해져 웃고 싶은 욕구와 갈구가 절박하단 얘기다.
코미디계의 ‘거성’(거성은 이럴 때 붙이는 것이다) 구봉서가 떠나기 직전 부산코미디페스티벌은 힘찬 팡파레를 울렸다. 그 화려한 조명이 짓눌리고 억압됐으며 희망의 빛이 희미해져가는 서민들의 뇌에서 엔도르핀이 힘차게 샘솟도록 골고루 비칠 때 페스티벌의 의의는 더욱 숭고해질 것이다./osenstar@osen.co.kr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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