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키드' 정선아, 글린다처럼 성장하다 [인터뷰]
OSEN 박현민 기자
발행 2016.08.24 16: 00

대한민국 뮤지컬 관람에 발을 살짝이라도 담궈(?)봤던 이라면, 한 번쯤은 들어봤을 그 이름. 지난 2002년 뮤지컬 '렌트'를 시작으로 현재 공연중인 '위키드'까지, 무려 15년차 탄탄한 뮤지컬 내공을 자랑하는, 필모가 쌓여도 너무 쌓여서 이젠 일일이 나열도 힘든 뮤지컬 배우, 바로 정선아다.
'원작을 뛰어넘는 배우', '월드 베스트 글린다'라는 수식어는 허투루 붙여진 게 아니다. 초연에 이어 거듭 '위키드' 글린다 역을 꿰차며, 무려 180여회를 글린다로서 무대에 올라 '국내 최다 글린다 공연 기록'까지 달성한 그다. 특히 '위키드'는, 여배우를 전면에 내세운 작품이 많지 않은 현 뮤지컬계에서, 누구나 한 번쯤은 탐내봤을 법한 작품이라는 점에서 그 의미가 남다르다.
생애 두 번째 '위키드', 그리고 2연속 글린다를 맡게된 정선아는 "두 번째니까 부담이 컸다"는 심경을 솔직하게 털어놨다. 이어 "잘해야 된다는 부담감보다는 시간이 지난 만큼, 그리고 두 번째로 도전하는 만큼 깊이 있는 글린다의 모습을 관객분들께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 컸다"는 설명을 덧붙이면서.

'위키드'는 소설 '오즈의 마법사'가 시작되기 전의 이야기를 다룬다. 물론 정식 프리퀄이 아닌, 원작을 조금 비틀어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는 콘셉트이며 원작의 '서쪽 마녀'를 엘파바로 명명하고, '착한 마녀' 글린다와의 사랑과 성장 스토리를 섬세하게 매만진다.
'성장'이라는 단어는 이날 정선아와의 인터뷰 도중 반복해 등장했던 단어이기도 했다. 극 중 글린다가 보여주는 그것과 더불어, 정선아가 이번 '위키드'를 통해 일궈낸 성장 이야기는 분명 꽤나 인상적이었다.
"'파퓰러(Popular)'는 글린다의 메인 노래에요. 예전에는 그 곡에 시간을 많이 쏟았다면, 지금은 달라요. 글린다가 변해가는 성장 과정을 관객들에게 더 자세히 보여드리고 싶었거든요. 초연때는 '파퓰러'로 관객분들을 웃기고, 또 박수 받고 싶은 마음이 컸다면, 지금은 오히려 'Thank Goodness(감사해)'에서 진심이 우러나요. 연인에게 버림받고 힘들어하면서도, 나를 바라보는 군중에게 아닌 척 승화시키는 장면…이전 시즌에서는 이를 퍼펙트하게 하지 못했거든요."
이같은 변화는, 뮤지컬 배우로서, 혹은 인간 정선아로서의 '성장'이었다. "내 뮤지컬 인생과 같다"고 빗댄 정선아의 표현은 누구나 쉬이 와닿을 정도로, 탁월했다.
"뮤지컬을 15년쯤 했어요. 처음에는 글린다처럼 철없이 남들과 상처를 주고 받으며 '나만 잘해야지'하는 일차원적 생각을 했죠. 나이를 먹으면서, (내면의) 깊이가 더해졌고, 남들에 대한 생각을 할 수 있게 됐어요. 동료, 선후배들과 함께 가는 마음으로 작품에 임하는 모습, 변해가는 내 모습을 떠올리면서 글린다의 성장에 집중해요. 그 모습을 관객들도 캐치해줬으면 하는 바람이에요."
매 회 무대 위에서 똑같은 모습을 보여줄 수 없다는 것쯤은, 누구나 안다. 다만 "아무리 힘들어도 90% 이상은 꼭 끌어올려서 관객분들에게 드려야겠다는 생각은 지켜냈다"고 말할 수 있는 이는 드물다. 글린다로서 무대에 올라 지나는 한 회, 한 회가 그저 아깝다는 이가 바로 정선아다.
"시간이 그렇게 빨리 지나갈 줄 몰랐어요. 마지막 공연(8월 28일)이 얼마 안 남았거든요. 벌써 아쉽고, 같이 한 동료들에게 참 고맙고, 앞으로 또 할 수 있기를 기대하고 있어요. 이 작품 만은 놓치고 싶지 않아요. 끝나지 않았으면 좋겠고, 끝나더라도 내가 (다음 시즌에도) 다시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어요.(웃음)"
뮤지컬을 모르는 이라도 재작년 11월 방송된 MBC '황금어장-라디오스타'를 통해 정선아를 기억해내는 이들도 있을 터. 정선아 역시 당시의 예능 출연에 대해서 "너무 재미있었다. 신세계"라고 기분 좋게 회상했다. 음악을 주축으로 한 음악 예능이 최근 다양하게 늘어난 만큼, 정선아의 모습을 한 번쯤 더 안방 시청자들도 볼 기회가 생기진 않을까.
"예전에 뮤지컬만 생각하고 뮤지컬만 사랑했어요. 다른 곳에 눈 돌릴 겨를이 없었죠. 하지만 최근 경계를 넘나드는 분들을 보며 '생각했던 것보다 괜찮다'고 느끼고 있어요. 뮤지컬의 대중화에도 분명 보탬이 될 것 같고요. 기회가 된다면 나가보고 싶은데, 그때마다 공연에 집중을 해야했어요. 아직 두 마리 토끼를 잡는 게 제게 쉽지 않고 버거운 일이에요."
'위키드'가 끝나면, 정선아가 할 일은, 이미 정해져 있다. 언제나처럼, 어딘가로 '여행'을 떠나 에너지를 충전하는 것.
"지금까지 했던 것을 털어내고, 새로운 작품에서 새로운 캐릭터를 온전히 받고 싶어요. 여행은 힐링이고, 새로운 작품에 임할 수 있게 하는 원동력이에요. 그냥도 여행을 좋아하지만(웃음), 그런 마음가짐으로, 공연을 하면서 쪼그라든 풍선을 가득 채워서 돌아오고 싶어요." / gato@osen.co.kr
[사진] 박준형 기자 soul1014@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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